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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란 무엇인가?

EAST-TIGER 2010. 5. 17. 23:49


  한국 기독교 역사 속에서 신유(神癒)는 교회 부흥과 복음 전파에 있어서 강력한 도구로 사용되었고, 이런 놀라운 기적을 체험함으로써 기독교 공동체의 신앙생활을 더욱 활발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신유는 항상 기독교계에서 민감한 논란 되었고, 일부 이단(異端)들은 신유를 도구 삼아 교세를 확장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기독교계에서 신유집회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현재 고통 받는 병이 신유로 나을 수도 있다는 믿음에 유명한 교회와 기도원에 많은 교인들이 모여 들고 있다.


  나 역시 신유의 능력을 믿고, 그것이 하나님의 권능적인 사역이라 생각한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등장하는 신유사건은 하나님이 인간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간섭하고 있다는 사실과 사랑의 하나님을 드러낸 증거이다. 하지만 신유는 비일비재한 사건이 아니었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그 당시에 고통 받는 병자들을 그들의 믿음에 근거하여 치료하셨지만, 모든 병자들을 치료하시지는 않으셨다. 어디까지나 신유는 예수의 지상사역들 중 일부였고, 더욱이 신유사건 이후 예수는 무리들을 피해 그 자리를 떠나셨다. 이는 바울과 베드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사역 중 신유는 강력한 역할을 했지만, 그것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혼란스럽다. 예수는 복음서에서 우리가 믿고 구하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현실에서 우리는 구한 것을 받기보다는 못 받는 경우가 더 많다. 특히 신유가 더욱 그렇다. 많은 교인들이 신유체험을 위해 병든 몸과 마음을 이끌고 교회에 나와 기도하지만, 신유는 극히 드문 일이다. 마치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수많은 병자들 중 38년 된 병자만이 나음을 입은 것처럼, 하나님의 신유사역은 병자들 모두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 생각해봐야 할 논점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유라는 명목으로 시험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즉 하나님의 능력을 도구삼아 우리의 소망과 바람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이는 교인들에게 극단적인 믿음을 가지게 만들었고, 그 믿음이 성취되지 않으면 신앙을 버리거나 위태로운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하나님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가 전지전능하고, 시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바라는 것의 결과를 하나님의 뜻에 맡길 수밖에 없다. 진정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는 것일까? 


  한 가지 예를 들면, 일부 기독교인들은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아프게 되면 고민하게 된다. 한쪽은 병원에 가서 치료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른 한쪽은 기독교인들은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신유의 은사가 있는 사람에게 기도 안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바탕으로 전자는 믿음이 없는 행동이고 후자는 믿음이 좋은 행동이라고 생각하면서, 의료기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더 옳다고 판단하는 사람도 있다. 과연 우리는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어떤 것이 믿음에 대한 올바른 반응일까?


  나는 두 가지 행동 모두 병이 치료될 수 있다는 순수한 믿음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병원에 가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만이 순수한 믿음의 증거라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분명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지만, 불완전한 인간을 통해서도 그 일을 담당하게 하신다. 만약 하나님께 기도하여 병이 낫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면 우리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유를 그의 계획과 목적 속에서 사용하셨고, 인간들이 주도하는 의료기술에 의한 치료도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선택은 전적으로 개인의 의지에 있고, 그것에 따른 결과도 개인에게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들이 바라는 모든 것들을 들으시지만, 오직 자신의 계획과 목적에 합당할 때만 행하신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신뢰한다면, 그 결과 역시 신뢰해야 하는 것이고, 인간의 자유의지는 적절한 선택 속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 역시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지만, 의지는 어디까지나 의지일 뿐, 결과는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다만 우리가 원하는 것이 하나님께 합당했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드릴 뿐이다. 


  병은 죄의 결과이고, 유전이라 말하지만 나는 그렇다고 보지 않는다. 예수가 말한 것처럼 병과 장애는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하여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나타내는 것이다(요 9:3). 병자에게 낫는 것만큼 축복도 없지만, 낫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그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이 분명히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았고, 신체적으로 정상적인 사람보다 더 나은 삶을 산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유에 대해서 폭넓은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신유는 오직 하나님의 의지 속에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병과 장애에 의한 고통을 함께 하시고 아파하시지만, 우리가 그것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과 믿음으로 극복하는 것을 원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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