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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世紀 Enlightener
창문 밖 저녁 하늘이 빨갛게 익는다. 서서히 뚜렷해지는 기억들에 감정들이 문득 어우러진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웃는 얼굴과 그 소리. 귀여운 코에서 흘러나와 점점 얼굴로 퍼져가던 웃음. 콧노래 같은 그 소리. 아마 오랫동안 잊지 못하겠지. 지금까지 가장 행복했던 시절. 사는 게 귀찮은 것인지, 귀찮은 게 사는 것인지, 온몸에서 느껴지는 삶의 무게는 잘게 스며든 고통. 이 고통이 계속되는 한,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도 계속된다. 눈치 볼 사람도, 비교할 사람도, 지켜볼 사람도, 없다. 惡을 惡으로 갚고 싶진 않다. 교활하고 돼먹지 못한 사람이지만, 어딘가 불쌍하고 가엾다.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지 못했고, 아마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를 것이다. 거짓말과 위선을 일삼는 졸보에게 기력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는데, 그날이 오니 기분은 구름처럼 둥실둥실. 애써 또렷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의연하게 이 교회에서의 마지막 사역을 했다. 예배는 평상시와 같았고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준비한 송별. 편지들을 읽어주었고 편지들과 선물들을 주었다. 감정이 격해지지 않게, 먼저 웃으며 감사와 작별을 표했다. 은사님과 사형들이 사역한 교회에서,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3년 한 달 동안 사역하였다. 처음 사람들 앞에서 했던 말. "정직하고 성실하겠습니다." 이것 외에 다른 어떤 말들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신의 도구이고, 도구는 그 역할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드러내야 한다. 3년 한 달 동안 이 교회에서 내가 얻고 이룬 공로는 없다. 모두 신의 계획이자 신이 걸은 길이었다. 비록 그것이 인간의 불..
서른여덟 번째 생일을 Barcelona에서 맞았다. 아침에 일어나 평소처럼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었다. 자고 있는 동안 메신저에 한국에서 온 축하 문자들이 도착해 있었다. 하나씩 읽으며 회신을 했다. 독일에서도 축하 문자들이 왔고 역시 회신을 했다. 유독 올해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았다. 메신저에 등록된 개인정보가 부담스러운 배려가 된 것일까? 나 역시 그 배려로 기억에 없는 그들의 생일에 축하 인사를 한다. 한국에서 수진이가 가장 먼저 축하인사를 했다. 거기는 자정이 지나 30일이 되었지만 여기는 오후라 아직 29일이다. 지난봄에 퇴사를 한 후에 개인 차로 이곳저곳을 다녔다고 한다. 서로 짧게 오고 가는 이야기들이 쌓이면, 감춰있던 이야기가 드러난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효성이가 가장 먼저 ..
10년이 다 되었다. 한 때 입버릇처럼 "독일에서 10년 동안 공부하고 싶다."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 말을 직접 들은 사람들은 몇 사람 되지 않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아서 어딘가 싸늘해진다. 은사님들 중에 한 분은 "40세까지 공부하고 와."라고 하셨는데, 한번 들은 말들은 한동안 잊은 듯 하나, 어느 순간에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새 여권과 함께 구 여권을 본다. 공백 많은 사증들 사이로 군데군데 찍힌 도장들은 오래된 기억들. 뒤로 물러나 있는 것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의지의 장애물이자 연료이다. 머무를 수 있지만 아주 그럴 수 없고, 새 여권의 사증들에 도장이 찍힐 때마다 새로운 일들이 있을 것이다. 공부하듯 여행하고, 여행하듯 공부하려 한다. 책상 앞과 밖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
7년 만에 새로운 안경과 선글라스.이번에는 안경테까지 새로 구입했다.장시간 노트북을 보기에 블루필터가 든 렌즈가 장착됐다. 650€가 넘는 금액.다음에는 이렇게까지 비싸지 않았으면 한다. 안경을 찾으러 갈 때 비가 왔었다. 요새 걷고 뛰는 것이 좋아서 중앙역까지 걷고 가볍게 뛰었다. 비가 와서 우산을 펼쳤다. 점점 빗방울 굵어지니 우산 없이 걷던 사람들도 비를 피한다.우산을 든 나의 걸음은 목적지까지 멈추지 않았다. 안경점 출입문에 서 있던 남점원에게 용무를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서 여점원으로부터 안경과 선글라스를 받았다.Münster 음악학원에서 만났던 여자와 어딘가 닮았다. 안경을 착용한 내 옆을 수시로 지나면서 편안한지 아닌지 묻는다. 그녀의 친절한 목소리는 대화를 정갈하게 만들었다. 안경점을 나오..
봄의 길목에서 눈이 내렸다. 창문을 열고 한동안 밖을 바라보았다. 눈바람에 푸른 솔잎들이 흔들거린다. 싸라기눈들이 바람을 타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잠시 눈을 감고 바람소리를 들었다. 창문을 닫고 책을 읽을 때, 싸라기눈은 함박눈으로 바뀌었다. 다른 쪽 창문으로 가서 밖을 보았다. 개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과 아이들이 보였다. 이것과 저것의 경계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뚜렷하지만, 쌓이는 눈들이 그 경계를 흐릿하게 한다. 아이들과 개들의 발걸음이 자유롭다. 내리는 눈은 그들을 흥분시킨다. 쌓인 눈은 언젠가 녹겠지만, 마음에 쌓여있는 근심들은 언제 없어질 것인가? 쓰레기 더미가 눈에 덮였다고 없는 것이 아니듯이, 아직 해결되지 않는 것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무엇을 하더라도 근심이 있고, 무엇을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