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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世紀 Enlightener
가을이 일찍 온 듯 일주일 가까이 서늘한 바람과 비가 내렸고, 아직 여름이라며 뜨거운 햇살이 창문을 너머 방 안 가득히 내리쬐었다. 여기가 비가 오면 거기도 비가 왔고, 거기에 해가 뜨면 여기도 해가 떴다. 아침과 저녁에 서늘한 바람이 불고, 하늘에 얽힌 구름의 모양들을 보니, 이제 가을이다. 7월 초에 있었던 논문 발제는 유익했다. 약 1시간 30분 정도 질의응답이 오갔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말했고, 다음에 발제할 부분들도 말했다. 오랜만에 교수님과 반응이 빠른 대화를 나눴다. 참여한 학생들도 활발하게 참여했다. 앞으로 몇 번을 더 해야 하는 것일까? 6년이 다 되어도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고 있다. 두 번 이상은 하지 않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윤석열의 대한민국을 만들었고, 이재명 당 ..
봄에서 여름으로. 봄이 되었다고 느끼는 몇 가지 있는데, 거리에 노란 수선화와 목련이 피고, 차가웠던 빗소리가 따뜻해지며, 밤에 더 이상 난방을 하지 않는다. 5월이 되어서야 봄을 느꼈다. 6월이 되니 방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여름이 있다. 그날들 속에서 이 글을 쓴다. 물가가 올랐다는 것이 이상하게 낯설다. 코로나 대유행 전까지는 50유로면 일주일을 살았다. 대유행 이후에는 70유로가 필요하다. 사람 사는 것이 왜 이렇게 험난한가? 한국은 더 올랐다고 하더라. 한번 오른 물가는 내려오지 않으니, 개인의 삶이 위태로워진다. 검소한 삶은 이럴 때 유익하다. 얼마나 언제까지 유익할까? 전쟁과 전염병이 또 다른 전쟁과 전염병을 낳았다. 살아남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낯설다. 사는 것이.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
춥고 축축한 1월이었다. 밤에 롤 블라인드 너머로 비가 내리는지 눈이 내리는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듣다가, 아침이 되면 올라가는 롤 블라인드 너머로 창백한 풍경들을 보았다. 어떤 날은 눈이 쌓여 있었고, 어떤 날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공통적으로 추웠다. "특별할 거 없는 겨울 끝이죠." 음.. 끝은 특별할 거 없는 겨울. 가족 외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묘한 편안함을 느낀다. 의무가 사라진 사람에게 남은 것은 의지에 따른 결정들이다. 이전 사람들에게 그 사람은 잊힐 것이고, 잊히고 있으며, 잊혔다. Donald와 Ingrid를 거의 2년 만에 만났다. 서로 멀지 않은 지역에서 살고 있지만, 최근 두 번의 만남은 모두 Musiktheater im Revier였다. 함께 발레 공연..
2022년 12월 마지막 날. 이렇게 또 한 해가 빨리 가고 있다. 독일에서의 최근 5년은 시간의 빠름을 깨닫고 체감하게 한다. 내일이면 유학을 시작한 지 10년이 된다. 정말 말은 씨가 되려는 건가? 그 씨에서 무엇이라도 나와야 했고, 그럭저럭 성장하여 이제 어떤 것이 되려고 한다. "지금 운다고 뭐가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야!" 울지도 않고 울 필요도 없다. 나를 위한 눈물은 아주 오래전에 말랐다. 필요한 근육과 근력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한다. 맨손운동을 하고 일정 거리를 달린다. 배에 문신 같은 "王"을 새길 이유가 없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열정은 상상만 해도 부담된다. 프로 운동선수들이 대략 30세 전후로 은퇴 또는 기량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몸은 쓸수록 망가지고 그 쓸모를 다하면..
뜨거운 여름이 일주일 전이었는데, 지금은 차가운 늦가을이다. 작년부터 시작된 이상기후는 여전하다. 옷장을 정리하다가 작년에 사서 입지 못한 코트가 눈에 들어왔다. "미안,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네." 두꺼운 이불을 꺼냈고 겨울용 슬리퍼를 신었다. 생강과 꿀을 넣고 마실 차를 끓였다. 겨울을 준비한다. 하루 동안 비는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한다. 햇빛이 들지 않은 주방에서 늘 먹는 음식을 만들고 식탁 앞에 앉아 조금씩 먹는다. 팟캐스트를 통해 세상에 무슨 일들이 있었고 있는지 듣는다. 식사를 하고 난 후 책상 앞에 앉는다. 엉덩이가 아프면 잠시 일어나 방 이쪽에서 저쪽으로 몸을 움직이거나 침대에 눕는다. 해가 지면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먹는다. 오늘의 뉴스를 듣고 설거지를 한 후 몸을 씻는..
봄과 여름이 뒤섞인 5월이다. 한낮의 뜨거움이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해도, 이른 새벽에 잠깐 동안 내리는 소낙비 소리는 정겹다. 4월에 며칠 동안 급성 두드러기와 치은염에서 비롯된 치통으로 괴로웠다. 정 안수집사님의 도움으로 두드러기는 약으로 치료되었고, 오랜만에 Herr Grüter를 만나 치은염을 치료했다. 치아 스케일링도 받았다. "아프면 예약 없이 오세요." 과분한 "슈퍼 패스"를 받았다. 악기 연주를 하지 않은지 2년이 넘었다. 이제 누구한테 악기를 연주한다고 말할 수 없다. 다시 연주를 하면 이전보다 잘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예전에는 손이 생각보다 더 빨랐다면, 이제는 생각이 손을 움직일 것이다. 음악은 매일 하고 있다. 서로 "있음"에서 비롯되는 고마움과, 비싸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감사한 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