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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목회자들을 위한 교회성장론 본문
얼마 전 신문을 보니 총회 주관으로 '농어촌 교역자 수양회 참가자 설문조사'(응답자 80명)가 발표된 기사를 읽었다.(기독신문 제1726호) 기성 농어촌 교회 전부를 대변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설문조사에 따르면, 농어촌목회에 있어서 가장 큰 고민은 교인 감소와 인력난으로 조사되었다. 그에 따른 문제로는 일꾼부족, 전도의 어려움, 자녀교육, 낮은 사례비, 목표상실 등이 뒤를 이었다. 그것에 대한 해결책으로 농어촌 교역자들은 '교단과 노회 차원의 대책마련'(42.5%)와 '스스로 자생노력'(26.3%)을 들어, 외부적인 대책마련과 내부적인 자립방안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것에 뜻을 같이 했다. 흥미로운 설문으로는 친환경농법 개발 등 농어촌 소득증대에 앞장서는 교회들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시각이 60%로 부정적인 시각보다는 높았다. 그러나 연령별로는 40대 목회자들 중 61.5%가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지만 60대 이상 목회자들은 80%가 긍정적인 시각으로 큰 대조를 보였다.
농어촌 교회에서 목회를 하기란 쉽지 않다. 어디인들 쉬운 목회가 있겠냐만은 농어촌이라는 불리한 환경 조건은 목회자로 하여금 체감적으로 작은 일에도 큰 상실과 좌절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농어촌 목회가 도시 목회보다는 상대적으로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농어촌이든 도시든 교회가 세워졌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님이 주신 많은 사역들을 감당해야 한다. 언제부턴가 한국기성교회들의 목회의 대부분의 슬로건이 전도를 통한 교인수 증가와 교회의 대형화를 통한 교단 내 인지도 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것은 비단 한국기성교회만이 아니다. 미국기성교회들도 마찬가지다. 같은 신문에 실린 미국 기독교 설문조사기구인 '라이프웨이 리서치'(LifeWay Reserch)가 '목회 공간과 지국 확장의 효과'(Effects of Ministry Space and Outlet Expansion)라는 주제로 미국 전역 개신교회 목회자 1000명을 무작위로 선정하여 전화 인터뷰를 한 설문을 5월 28일 발표했는데, 응답자의 65%가 지난 5년간 최소 1회 이상 교회 및 사역을 확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예로, 응답자의 1/4이상이 예배 횟수를 늘리거나, 현재 교회가 위치한 같은 지역에 교회 신축 혹은 증축하여 자교회의 부흥을 꾀했다고 응답했다. 세부적으로는 인터넷을 통한 예배 실황, 녹화중계나 실시간 설교 스트리밍 서비스, 사역 시설 신축, 타 교회 합병 등을 들어, 지역과 세대를 초월한 폭넓은 교회부흥전략으로 대부분의 미국 교회가 물량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결과는 의도와 다르게 나타났다. 응답자의 3/4 이상이 위에서 언급한 교회 공간 및 사역확장을 통해 교회가 성장했다고 답변했지만, 교회 성장의 대표적인 지표라고 볼 수 있는 교인 수 증가의 절반 이상이 불신자들이 전도되어 점진적 증가가 아니라, 다른 교회에서 이동해 온 수평 이동의 결과라고 밝혔다.
위의 두 설문조사를 종합하여 볼 때, 대부분의 개신교 교회 목회자들이 착각하는 것은 교회의 대형화와 교인수 증가가 교회부흥과 성공적 목회의 최종 목표점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상당히 잘못된 생각이다. 목회자들은 현실이 낳는 문제와 자격지심 내지 열등의식으로 스스로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상과 멀어지게 한다.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고, 예수는 두, 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내가 거기에 있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교회의 성장은 그리스도의 몸이 성장한다는 의미이고, 그 장소는 한정된 곳이 아니다. 만일 지금의 기성 교회들의 목회가 '그리스도의 향기' 가 나는 목회였다면 불신자들이 그 향기를 맡고 교회에 자발적으로 찾아나왔을 것이다. 한 가지 예로 인도의 사상가 간디는 "만약 내게 예수의 산상수훈 대로 사는, 살려고 노력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나는 단연코 그를 봐서라도 기독교를 믿을 것이다." 라고 그의 지인들에게 말했었다. 그렇다면 교회의 양적성장은 더이상 현대 목회에 있어서 큰 문제거리가 아니다. 지금의 문제는 목회자들이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무한한 갈급함의 회복과 기독교 교리에 대한 바른 이해인 것이다.
그러므로 설문조사에서 드러난 기성 목회자들이 어려움을 느끼는 요소들은 양적성장에서 나온 불평에 불과하다. 내일 굶어 죽을지언정, 잃어버린 영혼을 한 명이라도 더 찾겠다는 심정이 없는 한 교회의 대형화와 교인수 증가를 위한 전도는 계속 될 것이다. 진정한 목회는 목회자가 마냥 교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직접 교인들의 삶의 현장에 들어가서 그들과 대화하고 교감해야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중세 수도원이나 일부 불교에서는 성직자들이 직접 논과 밭을 일구면서 스스로 자급자족을 하는 생활을 하여 교인들 삶에 밀접하게 다가갔고 그런 성직자들을 보면서 교인들은 더욱 자신들의 종교에 애착을 가졌다. 그러나 지금의 목회자들은 그와 반대로 교회의 양적인 성장과 목회자 개인의 경제적 부를 축적하려 한다면 그것은 기독교 스스로를 부패한 종교로 만드는 일과 같다.
이런 의미에서 기성교회는 지역사회의 특성을 목회에 적용할 필요하다고 본다. 교회가 지역발전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사회 속에서 환영받을 수 없다. 교회와 사회는 분리된 관계가 아니다. 지역사회가 요구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교회가 들어주고 채워준다면, 지역사회 내에서 교회의 영향력은 커질 수 밖에 없다. 항간에 지역주민들을 위한 공부방과 문화센터 개설은 이미 지역주민들에게 호감을 갖는 계기가 되었고 당연히 교회성장에 도움이 되었다. 또한 목회자가 기독교 교리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해서, 교인들에게 보이지 않는 강요나 부담스러운 신앙생활이 아닌, 자발적인 신앙생활로 유도해야 할 것이다. 예수는 그의 공생애 기간동안 제자들과 함께 이스라엘 지역을 다니면서 많은 가르침과 사역을 했지만 정작 십자가에 달리기 직전에 그를 따랐던 제자들과 추종자들은 떠나고 말았다. 그것에 대해 예수는 진노하지 않았고 모든 것을 용서하셨다. 마치 천국이 예수를 통해 이 땅에 왔지만, 그것을 아는 사람이 있고 모르는 사람이 있었듯이, 신앙적 자유와 성장에 있어서 개인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훗날 그로 인해 제자들이 큰 깨달음을 얻어 자신들의 죄를 뉘우쳐 변화되고, 그런 제자들의 간증을 통하여 예수께 나온 자들이 그 얼마인가. 그러므로 목회자는 교리를 올바르게 가르치고 양육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 교인 스스로가 주체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이 중요하다. 몇몇 목회자들이 안식일을 강조하고, 다수의 예배 참여와 헌금 내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행위이다. 기억해보라.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이라고 했던 자들이 바로 그런 말로 미혹시켰던 유대인들이다. 이것은 복음서에서 예수와 유대인들의 논쟁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기독교는 현대 사회가 형성되기까지 많은 공헌과 역할을 감당해왔고 그 공헌과 역할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가 양적 교회성장에 혈안이 되어 쇠퇴의 길을 걷는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도 없다. 이를 위해 목회자들은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영성과 지성의 민첩함으로 교인들을 돌보고, 지역특성과 요구에 맞는 목회사역을 시도한다면, 교회성장에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비유로 꽃이 그 향기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듯이,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가진 '예수의 향기' 로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과 교회에 자발적으로 나올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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