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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의 경제 유감(有感) 본문
세계 경제공황이 극으로 치닫고 이제는 회복을 기대하고 있는 2009년. 각국 대통령과 수상들은 자국의 경제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일념 하에 대안들을 마련하고 신년사에서 그것에 대한 구체적이든, 추상적이든 의지와 계획을 말했다. 그들의 말을 신뢰하기 힘들지만 한편으로는 그들 스스로도 이번 해(年)가 곤혹스럽고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것 같아 측은한 마음이 든다.
국내·외적으로 경제공황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점차 커지고 있고 세계 유명 기업들의 자금난이 심한 지금, 나는 지금 침묵해야할지 분개해야할지 모르는 애매모호한 상황에 있다. 다만, 이러한 시점에서 나는 문득 세계 경제공황의 시작이었던 2008년도를 회상해본다. 왜냐하면 이번 경제공황의 해결책이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신학생으로서 경제공황을 보며 유감(有感)이 생겼기 때문이다.
2008년 경제공황의 전초로 중동 유가(油價)가 서서히 올라갔다. 사실 유가의 가격변동은 유동적이라 막연한 안정을 기대했던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유가는 100달러를 넘어 150달러까지 이르렀고 200달러까지 가능하다고 몇몇 전문가들은 예측했다. 안타깝게도 석유 매장지는 한정적이고 집중적이라 세계 나라들은 높은 유가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석유를 매입했다. 사실 그들에게 석유 값보다 자신들의 기반시설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고 국가와 자신들의 수익을 올려주길 바랬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대기업들은 기뻤을지도 모른다. 유가 급등으로 인해 자금이 약한 경쟁기업들은 자진 도산이 날 것이고 이로 인해 자신들의 기업의 순이익이 상승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최악으로 끝이 났다.
유가는 다행히 2008년 말에 안정되어 예년 수준으로 회복되었지만 회복될 것 같았던 경제는 공황에 이르렀다. 유가가 내려가면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모두 가지고 있었을 텐데, 이상하게도 결과는 최악의 경제공황이 다가온 것이다. 나도 이것에 대해 의문점을 가졌다. 이것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관련 신문기사를 읽고 매일매일 변해가는 경제공황에 대한 전문가들의 시각들을 확인했다. 결국, 내가 찾은 그럴듯한 답은 오바마와 월가가 내린 결론이었다. 즉, ‘인간의 탐욕’ 이다. 나도 이 의견에 동의한다.
중동의 유가가 폭등한 이유를 생각해보자. 왜 폭등했을까? 당시 유가가 그렇게 폭등할 이유는 없었다. 주변 나라에 전쟁이 발발하여 석유가 긴급히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자동차나 조선 산업이 갑자기 활성화되어 석유가 급속히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단순하게 겨울도 아니었다. 하지만 중동의 유가는 폭등했다. 부담을 느끼지만 세계 국가들은 폭등한 석유 값을 지불했다. 그런데 중동의 석유 시장은 어느 순간부터 유가를 내리기 시작했다. 끝없이 오를 것 같았던 석유 값이 내리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회복을 점쳤다. 하지만 리만 브라더스(Lehman Brothers Holdings)의 도산은 세계 경제의 중심지 월가(Wall Street)에게는 충격이었다. 그 이후로 AIG, GM의 도산 위기는 세계 경제계를 더 큰 충격으로 휩싸이게 했고, 아시아권도 예외는 아니었다. 환율은 급등했고 증시는 연일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런 기이한 현상에서 나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물론 확실하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중동은 석유를 통해 유로와 달러 등 외국 자본을 모았던 것이다. 그것이 어떤 이유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비 중동권에 대한 자기 과시일지도, 세계를 향한 외침일지도 모른다. 한편 급등하는 유가를 미국과 유럽, 아시아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매입했고 중동권의 나라들이 자비를 베풀었는지, 목표한 자본을 획득했는지 모르지만 유가는 급등을 멈추고 하향 안정세로 돌아섰다. 그 이후 유가로 인해 막대한 자본이 유출된 관련 기업들은 단숨에 도산의 길을 걸었다. 당연히 돈이 없는데 무슨 수로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고 공장을 운영할 수 있을까? 이에 각 나라 정부는 긴급 경기부양책을 세워 상업투자를 했고 우리나라는 종부세를 중심으로 감세정책으로 경제공황을 극복하려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상업투자를 하면 경기가 활성화되어 소비 활발해야 하는데, 이러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소비가 둔화되고 증시가 개장하면 단 몇 분 만에 경기부양책에 쓰일 자본들이 증발해버려 경제공황은 심해졌다.
월가는 ‘자본주의의 종말’을 선포했고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을 촉구했다. 불안심리로 인해 여기저기 바람 잡는 예언들과 낭설들이 쏟아졌고 경제 전문가들은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했다. 반면, 중동권은 아무런 소식이 없다. 그들은 마치 딴 세계에 살고 있는 듯 조용하다. 나는 평소 EPL(English Premier League)에 관심이 있는데 다른 구단들은 재정문제를 겪고 있지만 맨체스터 시티 구단주 술레이만 알 파힘(Sulaiman Al-Fahim)은 1월 이적 시장에서 스타플레이어들을 모두 영입하려고 한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서일까? 지금 이스라엘의 하마스의 공격이 낯설지 않는 것은 중동을 견제하려는 서구권들의 전초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위기를 겪는 서구 자본주의는 철저히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칼빈(John Calvin)의 신학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그것은 칼빈뿐만 아니라 기독교 전반적으로 가진 사상이다. 그래서 부(富)를 축적하는 것이 성서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부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 그것에 대한 기준은 구약의 모세의 율법과 신약 복음서 전반적으로 나와 있는 사유재산에 대한 예수의 말이다.
예수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눅 18:25)고 했고, 마태복음 19장 16절 이하에서 예수는 부자청년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나를 좇으라.” 고 말한다. 이외에도 예수는 부자의 재물에 대한 경계와 가난한 자들과의 나눔을 강조한다. 어떻게 보면 재물에 대한 예수의 생각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비슷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예수는 ‘달란트 비유’(마 25장)를 통해 정당한 노력으로 인한 사유재산을 인정하셨다. 오히려 일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 자를 꾸짖으셨다. 이것은 모세의 율법에도 찾아 볼 수 있는데, 신명기 24장 19절 이하를 보면 노동의 소산을 인정하되 일부는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을 위해 남겨두라고 하였다.
지금의 경제공황의 원인인 천민자본주의(Pariakapitalismus)의 종말을 보고 자본주의의 종말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이대로 지속된다면 자본주의까지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나는 이것에 대한 해결책으로 ‘십일조의 원리’를 제안하려 한다. 일단 지금의 자본주의 위기를 단순한 경제공황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자업자득임을 알고 기독교계는 공개적으로 세계와 사회에 사과와 유감의 말을 전해야 한다. 지금의 기독교는 자신들이 잘못한 것을 시인하고 인정하는 하는 것에 매우 낯설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계는 그동안의 자신들의 잘못과 과오를 반성하고 성찰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지금의 경제공황의 직·간접적인 문제를 성서에 찾아 해결해야 한다. 답은 성서에 있다. 무엇보다 인간성의 회복이 중요하다. 지금의 경제공황의 원인은 오바마와 월가가 결론을 지은 것처럼 ‘인간의 탐욕’ 이 초래한 최악의 결과이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이것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적인 신학적 사고를 가져서 현실 사회에 올바른 진리를 외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십일조의 원리’ 를 기억해야 한다. 간단하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1/10을 가난한 사람과 불우한 이웃들에게 나누는 것이다. 사실 성서에서 말하는 ‘공식적인 예물’ 은 십일조다. 물론 개별적으로 드리는 예물도 있지만 가장 공식적인 예물은 십일조다. 안타깝게도 세속화된 교회는 천민자본주의 같은 모습으로 물량주의와 대형화를 꿈꾸며 교인들에게 헌금을 강요하거나 은연중에 인식시키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교인들이 십일조만 제대로 낼 수 있다면 교회는 충분히 운영될 수 있다.
이와 같이 북반구에 위치한 세계 나라들이 남반구의 제 3세계 나라들에 대한 경제원조를 1/10만 했더라도 결코 경제공황에 힘들어하지 않을 것이며, 세계화(Globalization)가 비관적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100억 버는 사람이 10억을 사회와 이웃을 위해 기부하고 90억만 쓰는 것이 부족할까? 미국을 비롯한 세계 선진국들이 연 국가 순 이익 중 1/10을 개발도상국과 가난한 나라에 투자하는 것이 어려운 일인가? 사람들은 상식적인 문제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전쟁 없이는 평화가 있을 수 없다는 사람들의 말에 원치 않는 신뢰를 보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제의 해결은 늘 단순하다. 문제는 실천하기 어렵고 손해보거나 양보하고 싶지 않은 이상한 자존심에 문제를 극단으로 몰고 간다.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신24:18~19) 지금의 경제공황은 비록 절망적이지만 언젠가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될 것이다. 사실 단순하게 보면 나는 그렇게 어려운 문제라고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복잡하게 볼수록 문제는 심해질 것이다. 나의 의견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문제들의 해결은 ‘인간회복’ 에 있다는 것 분명하다. 어떤 종교든지 사랑을 외치고 자비를 구하며 서로 행복을 누리는 것을 교리로 삼는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종교의 역할이 중요하고 사회구성원들 간의 이해와 협력, 신뢰를 해야하며 무엇보다 ‘배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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