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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몽] "꿈에 사람 안 죽이는 놈 있어?"

EAST-TIGER 2021. 1. 6. 11:01

김기덕 감독의 15번째 영화. 

 

대한민국 영화계가 영원히 기억해야 할 두 감독이 1996년에 동시에 데뷔한다. 김기덕과 홍상수. 나는 두 감독들을 좋아하고, 2000년대 초중반부터 그들의 영화를 보고 있다. 그 영화들에서 장선우 감독의 냄새를 맡는다. 이제는 잊힌 감독이 되었지만, 2000년에 개봉한 영화 <거짓말>까지, 어느 영화든지 "장선우" 이름이 있는 곳에 보고 싶은 설렘이 있다. 그가 한창 활동했던 시기에는 내가 미성년자였고, 성년이 되었을 때는 더 이상 활동할 수 없게 되었다. 만약 장선우 감독이 계속 작품 활동을 했다면 어땠을까? 같은 주제로 세 감독들이 함께 참여한 옴니부스 영화를 보고 싶었다. 작년 12월 이후 이 소망이 실현될 가능성은 더 이상 없다. 세 사람 중 김기덕 감독이 먼저 어디론가 떠났다. 

 

비보를 처음 접했을 때는 담담했다. 몇 시간 뒤에는 짧은 욕설과 함께 탄식했다. 하루가 지난 뒤에는 아직 보지 못한 그의 영화들 중 한 편을 보고 감상을 글로 써서, 그를 추모를 하자고 생각했다. 영화 <비몽>을 보았다. 데뷔작부터 이 영화까지가, 김기덕 감독의 화양연화(花樣年華)였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 이후 2011년 영화 <아리랑>이 나올 때까지, 처음으로 3년에 가까운 공백기가 있었다.   

 

"당신이 행복하면 이분은 불행합니다." 

 

이 영화의 거의 모든 설정들이 좋다. "그럼 뭐야, 당신은 꿈꾸고, 이 여자는 행동을 했다는 거야?"라는 설정부터 김기덕스럽다. 주인공 남녀가 같은 시기에 각자의 애인과 헤어졌고 비슷한 시각에 잠을 잔다. 남자가 수면 중 헤어진 여자에 대한 꿈을 꾸면, 여자는 몽유(夢遊)하여 현실에서 헤어진 남자에게 꿈과 동일한 말과 행동을 한다. 그런데 헤어진 그 여자와 헤어진 그 남자가 현재 사랑하는 사이다. 4명의 남녀들이 각자가 되었다가, 두 그룹으로 나눠졌다가, 주인공 남녀만 남아 한 사람이 된다. 극 초반에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어 함께 찾아간 정신과 의사는, 그들에게 "꿈은 기억입니다.", "꿈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기도 하죠.", "두 사람은.. 한 사람입니다." , "흰색과 검은색은 같은 색입니다."라고 말한다. 영화를 이해하기가 쉬워진다.

 

영화에서 일본 배우 오다기리 조가 일본어로 말하고 한국 배우들은 한국어로 말한다. 나는 이 설정이 가장 좋았다. 자막이 지원된다면,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의 등장인물들이 서로의 자국어로 의사소통하고 연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설정이 영상 예술에서 언어 때문에 생기는 거의 모든 차별들을 극복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김기덕 감독이 이 영화를 영화 <뫼비우스>처럼 무언극으로 연출했어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을 것 같다. 

 

참 친절한 영화다.

 

"당신도 모르잖아. 내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는지." 

 

뜨겁게 사랑하고 헤어진 것이 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누군가 "아직도 사랑해요?"라고 묻는다면,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대답한다. 다시 서로 사랑할 수 없다. 그렇다고 친구처럼 지낼 수도 없다. 친구가 될 수 없기에 사랑했던 것이니까. 그의 집을 찾아간다거나, 무언가에 취해 그에게 연락을 한다거나, 다시 만나기 위해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 상황들을 만들지도 않는다. 그러나 몸은 아직 그의 온기에 익숙하다. 어떤 정신적 존재가 사라진 마음의 빈 공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사랑이 끝나면 항상 정리하고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회복되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을 맞이할 수는 없다. 

 

영화에서 란과 진이 그런 시간에 있다. 그 시간 속에서 헤어진 애인을 조금씩 자기 안의 어딘가로 밀어내려 한다. 그와 함께 있던 기억들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그 기억들 때문에 계속 힘겨워하며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한다. 하지만 그 헤어진 애인들은 어디선가 만나 연인이 되어 있다. 진은 꿈에서 다른 남자를 만나는 옛 애인을 본다. 그녀가 먼저 진에게 이별 고했기에,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되었다. 자신의 자리에 이미 다른 남자가 앉아있다. 란도 꿈을 꾼다. 진과 달리 말을 할 수 있고 몸도 움직인다. 하지만 기억할 수 없다. 몽유다. 그래서 깨어날 때마다 뭔가 이상하다. 옛 애인이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진은 더욱 옛 애인을 그리워한다. 그 그리움은 꿈에 반영되어 그녀와 입을 맞추고 섹스를 한다. 서로 아직 사랑한다. 그러나 현재 그녀의 남자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꿈의 끝에서 진과 여자는 도망친다. 란도 꿈에서 옛 애인을 찾아가 입을 맞추고 섹스를 한다. 하지만 불안은 없다. 란이 원했던 이별이었다. 그래서 천천히 집으로 돌아와 다시 침대에 누워 남은 잠을 잔다. 

 

란은 진에게 꿈을 꾸지 말 것을 요구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졸음을 떨칠 수 없는 것처럼 기억도 지울 수 없다. 란의 집에서 잠이 든 진. 란은 진을 시험한다. 진이 덮고 있던 이불에 물을 쏟고 옛 애인의 집으로 간다. 잠에서 깬 진은 란이 없는 것을 알고 란을 찾으러 꿈에서 본 그 집으로 간다. 란을 찾은 진. 진은 란에게 "난 아무 꿈도 꾸지 않았어요.", "다시는 그 남자에게 가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란은 처음으로 진의 집으로 간다. 이때부터 둘은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란은 진의 집에서 나비모양 목걸이를 발견했고 진은 그것을 란에게 준다.

 

"혹시 내가 나쁜 꿈을 꾸더라도 날 미워하지 마세요."

 

영화 중반까지는 잘 만든 판타지 로맨스처럼 란과 진의 관계가 애절하다. 이후 전개는 김기덕 감독의 독특하고 익숙한 연출들로 채워진다. 갈대밭에서 네 사람이 만나 서로 관계의 "끝장"을 보는 장면은, 네 사람이 각자의 길로 가는 듯하면서, 두 연인으로 나눠진다. 특히 란과 진이 벗겨진 신발들을 줍고 서로 상대의 옛 애인에게 가서 다시 신겨주는 장면은 이별의식처럼 보였다.

 

이제는 진짜 사랑하게 된 옛 애인들 그리고 란과 진. 그러나 대낮에 절에서 데이트를 하던 중 란이 사라진다. 진은 란을 찾으러 다닌다. 서로 불안하게 쌓아 올린 돌무더기가 진의 움직임에 살짝 쓰러지는 것이 복선이다. 란을 찾지 못한 채 밤이 되었고, 진은 차 안에서 잠이 들었고 꿈을 꾼다. 꿈에서 란은 주차된 진의 차로 걸어왔고, 차 앞에서 진이 되어 앞좌석 옆 유리를 두드린다. 서로가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하나가 되었다는 암시. 차유리를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 진은, 란이 서있는 것을 보았고 차문을 연다. "나비를 따라갔어요."라고 말하는 란. 진은 그런 란과 입을 맞추고 섹스를 한다. 잠들어 있는 란의 손목 한쪽과 자신의 손목 한쪽을 수갑으로 채운 진은 란에게, "걱정하지 말고 자요."라고 말한 후 잠을 자고 꿈을 꾼다. 낮에 사라진 란이 옛 애인처럼 언젠가 자신 곁을 떠날 수도 있다고 진은 생각했던 것일까? 꿈에서 진은 란의 옛 애인을 살해한다.

 

진과 란은 연인이 되었지만 서로의 옛 애인들이 아직 살아있기에, 언제라도 그들과의 접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 접점에서 비롯된 결과들에 대한 물리적 책임은 란의 몫이었다. 진은 경찰관들에게 "내가 미친 게 아니라 내 꿈이 미쳤던 거야!"라고 말하지만 소용없다. 그들은 누구보다 보이는 증거들에만 관심 있다. 자신의 죄를 란이 대신 처벌받다고 생각하는 진. 진은 란과 다른 방식으로 스스로에게 처벌을 가한다. 그것을 통해 자신의 죄에 100%의 책임을 지겠다는 의도. 이 대구(對句)는 김기덕 감독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의 신성(神聖)이다. 참회와 속죄 행위는 인간만 할 수 있다. 이것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에서도 볼 수 있다. 둘의 차이는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눈에 바로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에서는 너무 잘 보인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김기덕 감독이 보기에는 그 이상도 해야 한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그러나 참회와 속죄 행위가 진실하다면 구원에 이른다. 어떠한 장애물들과 그 누구가 방해하더라도, 란과 진은 서로 사랑한다. 몸과 마음의 모든 신경들이 서로를 향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이제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어서 초월적으로 교감한다.  

 

진: "저, 미쳐가고 있는 것 같아요. 지옥에 있는 것 같은."

란: "아직도 남은 꿈이 있나요? 무슨 꿈이든 원망하지 않을게요."

진: "내가 죽는다면, 그 꿈들도 끝나겠죠. 잠을 자는 것이 죽는 것은 아니니까." 

란: "진, 뭐가 보여요?" 

진: "나비가 보여요."

란: "사랑해요. 잘 가요."

     

김기덕 감독에게 남녀 간의 사랑은 자기 자신과 서로에 대한 책임과 교감으로 이루어진다. 자기 스스로 또 서로에게 한 말과 행동들을 책임질 수 없다면 연인이 아니다. 연인이라면 함께 있든 떨어져 있든, 누가 유혹하거나 방해해도 막을 수 없고 멈출 수 없는 교감이 이루어진다. 한강이 얼어붙은 추운 겨울이라도, 나는 나비가 되어 그대에게로 날아가겠다.      

 

한 영화에 이전 영화들이 섞여 있는 느낌이 든다. 사랑하는 남녀 관계에 제삼자가 개입하는 것과, 란이 진과의 마지막 대화에서 진의 이름을 처음으로 부르는 것을 보면 영화 <빈 집>이 생각나고, 서로 다른 공간에서 남녀가 초월적으로 교감하는 것에서 영화 <숨>이 생각난다. 이 영화에서도 음악감독을 맡은 지박의 탁월함을 느낄 수 있다.

 

1996년 데뷔 이후 24년 동안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이 주는 유익이 컸다. 주변 사람들과 영화에 대해 대화할 때면, 자주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과 함께 그의 영화들을 추천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을 연이어 보면 비슷해서 지루한데,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은 비슷하지만 재밌어." 나는 김기덕 감독의 연출을 좋아한다. "흰색과 검은색은 같은 색입니다." 두 감독의 영화들은 표현 방식들에 차이가 있을 뿐, 하고 싶은 말들은 비슷하거나 같다고 생각한다. "네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잖아! 예전의 나는 이러지 않았다고!" 아니다. 원래 사람이 그렇다. 단지 지금 그러고 그때 이러지 않았을 뿐이다.

 

김기덕 감독의 차기작이 궁금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보며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의 관계를 이해했듯이, 차기작을 보았다면 김기덕 감독에 대한 내 생각들이 뭔가 좀 달라졌을까?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남자로서 <악어>, <나쁜 남자>, <활>이었고, 감독으로서 <수취인 불명>과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었다. 

그는 <섬>처럼 죽었다.

 

안녕,

김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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