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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코X길소뜸] 임권택 감독의 플래시백(Flashback)

EAST-TIGER 2021. 1. 12. 11:02

오래전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을 들을 때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고정 패널로 나와, 임권택 감독의 영화들을 소개하며 "가장 한국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고 찬사를 했었다. 우리나라 영화평론가들 중에 누가 임권택 감독과 그의 영화들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있겠냐만은, 그때 정성일의 말들을 내 기억에 오래 남았고, 임권택 감독의 영화들을 보며 점점 그의 말들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2015년에 개봉한 102번째 영화 <화장>을 끝으로 임권택 감독은 은퇴를 선언했고 더 이상의 신작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2000년대 이후 개봉한 그의 영화들 중 <취화선>을 제외하면 특별히 인상적이지 않았다. 거장의 은퇴도 뒤늦게 밝혀진 여배우의 폭로로 아주 아름답지는 않다. 102편의 영화들을 만든 감독이자 국내외 영화사에 빠질 수 없는 이름이 되었기에, 감독으로서 임권택은 위대했다. 이외 더 이상의 찬사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몇 년 전 자기 전이나 무료한 시간에, 좋아했던 그의 영화들을 부분적으로 또 전체적으로 다시 보았었다. 그것도 익숙하고 지루해져서 한동안 그의 영화들을 보지 않은지 오래다. 매달 전 세계적으로 많은 영화들이 개봉하고 한국 영화의 위상도 그 어느 때보다 높은 2021년 이 시기에, 왜 갑자기 임권택 감독의 영화들이 새삼 그리워지는 것일까? 오랜 타국 생활로 정성일 평론가 말대로 그의 영화들을 보며 한국적인 감성들을 느끼고 싶어서였을까?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들을 한국 영상자료원의 제공으로 Youtube에서 보았다. 주로 1990년대 이후에 개봉한 그의 영화들을 보았기에, 그 이전의 영화들을 본다는 것은 내가 모르는 새로운 그의 영역에 들어서는 것과 같다. 1980년작 <짝코>와 1985년작 <길소뜸>을 연이어 보았고 글로 남겨야 할 정도로 큰 감상이 있었다. 두 영화들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들 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들 중에서도 명작들이다.   

"어쩔거여? 아내한테 가서 나가 무고하다는 걸 해명을 허고 사죄를 할거여, 아니면 여기서 죽을거여?

 

1980년작 <짝코>는 지리산 빨치산과 전투경찰 간의 질긴 악연이 주 내용인 영화다. 전투경찰 송기열 경사가 일명 "짝코"로 불리던 지리산 빨치산 대장 백공산을 체포하고 연행하던 중, 방심한 사이에 놓치게 된다. 그 일로 송기열은 강제적으로 경찰을 그만두어야 했다. 한순간에 무장공비 잡는 애국자에서 협력자로 오해를 받게 된 송기열. 폐인이 된 기열 때문에 화목했던 그의 가정은 아내와 아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지리산에서 겨우 빠져나간 백공산은 이름을 "김삼수"로 개명하여 살아가지만, 신분이 탄로 날까 주민등록증을 만들지도 못해 연고 없는 사람이 되었다. 송기열에게 백공산은 복수의 대상이었고, 30년간 그를 찾아 전국을 떠돌아다닌다. 마침내 둘은 50대가 되어 갱생원에서 다시 만났다. 연고자가 없다면 절대 나갈 수 없는 곳에서 만난 두 무연고자들. 서로 완치될 수 없는 지병들을 가진 채 죽는 날만 기다린다. 송기열의 집요한 추궁과 사연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백공산은 그에게 말한다. "나가 거그한테 못 할 일을 너무 많이 했구먼. 거기가 시기키는 디는 뭣이든 다 하제. 그 거이 내가 죽기 전에 할 일이라면 말이시."              

 

영화를 보는 동안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봤던 장면들과 대사들이 생각났다. 뭣도 모른 채 어디선가 "빨갱이"를 만났다면 반미 친공 주의자가 되었고, "미제 앞잡이"들을 만났다면 친미 반공주의자가 되었던 1945년 이후 해방정국. 모두의 꿈은 전쟁 없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념이 무엇이었길래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도 없었던 것일까? "산에서 내려가면 여기서 죽일끼고, 내려간다 해도 사람들이 나를 가만히 둔단 가요?"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지리산에 모여든 공비들은 섬처럼 고립되어 죽거나 투항했고, 그들을 죽이고 살아남은 전투경찰들은 동네 "양반"들이 되었다. 그 와중에 살아남은 공비들은 어둠 같은 그늘 속에 살면서 그때 일들을 증언하거나 증언 같은 삶을 살았다. 그렇게 들려지고 읽히던 이야기들정지영 감독의 <남부군>, 임권택 감독의 <태백산맥>, 김종학 PD의 <여명의 눈동자> 등, 검열의 시대를 지나 1990년대 들어서자 영화와 드라마가 되어 드디어 빛을 보았다.

 

감당할 수 없는 차별과 배고픔 속에 살았던 사람들은 뭐라도 되어 세상을 바꾸거나 연명해야 했다. 비록 "야 이놈아, 저놈은! 저놈은! 빨갱이여! 빨갱이여!"라고 소리를 들었겠지만, 친일파들이 미군의 비호를 받으며 또다시 나라를 통째로 미국에 넘겨주었으니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빨갱이가 되어 지주들에게서 땅을 빼앗고 반미를 외치며, "주체"와 "민주"를 위해 싸우고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런 빨갱이들을 "자유"와 "통일"을 외치며 말살했던 극우들은, 독재를 지지하며 전후 몇십 년간 전작권 없는 병영국가와 이름 없는 노동자들의 피로 경제발전을 이끌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 두 집단의 몽니가 대한민국의 적폐들 중에 적폐다. 1980년에 임권택 감독은 영화 <짝코>에서 쉽게 화해할 수 없는 이 두 집단의 화해를 "반공"의 탈을 쓰고 서로에게 권한다. 병든 몸으로 갱생원에서 다시 만난 기열과 공산 간의 대립이 최고조에 오른 순간, 그들을 지켜보던 같은 방 갱생원생들이 말한다.  

 

갱생원생 1: "피차 죽어가는 마당에, 이제 와서 새삼스레 빨갱이면 뭘 할 것이며, 망실 공비면 어쩔 테야."

갱생원생 2: "허기야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그런 건 따져서 뭘 해?"  

 

이 말을 듣던 송기열의 눈빛이 흔들린다. 백공산을 잡아서 고향에 묻힌 처자식들에게 사죄시키고, 당시 자신을 파면한 지휘관에게 찾아가 무죄를 증명하고 싶었던 송기열. 사회와 유리된 백공산은 갱생원생이라면 모두가 똑같은 대우를 받는 갱생원에서 생을 다하고 싶었다. 두 사람이 협력해야만 갱생원을 나갈 수 있는 상황. 이 두 사람의 이런 속사정들을 밝히기 위해 임권택 감독은 플래시백(Flashback)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영화에서 플래시백은 문학에서 액자식 구조 그 자체이고, 시간 차이를 둔 신(Scene)과 시퀀스(Sequence)들의 결합 때문에 자칫 영화가 지루해지거나 산만해질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연출은, 갱생원생들 간의 화합을 위한 자리에서 나오는 플래시백이다. 기열과 공산의 과거와 그 아픔들을 바로 알 수 있고, 둘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켜 이념의 시대가 만든 피해자들임을 깨닫게 한다. 여기서 다시 한번 임권택 감독은 둘에게 화해를 권한다. 지리산에서 헤어진 공산과 점순이 극적으로 다시 만나 함께 살지만, 수십 년이 지나도 음지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지리산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점순은 다시 자살을 시도하고, 공산은 그런 점순의 마음을 돌리려 한다. 우연히 여인숙에서 벽 하나를 두고 둘의 대화를 듣게 된 기열. 

 

백공산: "뭔 소리여? 개똥밭에 궁글어도 이승이 좋다는디, 하루만 더 생각해보더라고."             

점순: "우리 같은 사람은 그날이 그날이어요." 

 

가혹하게 죽는 것보다 사선에서 살아남아 가혹하게 살아가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 살아있으니 뭐라도 할 수 있고 어떤 날들이 올 텐데, 그날이 그날 같은 날들을 사는 사람들. 앞서간 이들보다 좀 더 살아있을 뿐, 공산, 점순, 기열 모두 산 송장들이었다. 따로 돌던 플래시백들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마치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의 최대치와 장하림처럼, 공산과 기열은 한 시대의 두 얼굴들이 된다. 그 얼굴들에서는 이념에서 비롯된 강단과 스마트함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죽음을 앞둔 공산과 기열들을 위해 플래시백들은 공허하게 돌뿐이다. 

 

공산과 기열이 함께 갱생원을 나올 때부터 반강제적 화해가 시작된다. 칼로 위협하며 기열을 보며 공산은 "거시기, 그 칼 좀 치우더라고. 나가 이렇게 순순히 따라가고 있잖여."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기열은 칼을 등 뒤로 휙 던진다. 복수를 눈앞에 둔 듯 기열의 말과 행동들은 점점 광기가 서려있고, 그런 모습을 본 공산은 "빌어먹을, 어쩌다가 팔자 사납게 태어나 갖고 평생을 그늘 속에서만 살다 끝나누만."라고 중얼거린다. 동이 튼 새벽에 기열과 공산이 비틀거리며 차도를 무단 횡단하는 모습에서 그늘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본다. 해가 뜬 아침에 힘을 내어 "걷는" 공산과 기열. 쉬었다가 가자는 공산에게 기열은 "여기가 지리산인 줄 알아?"라며 성질을 낸다. 해가 떴으니 주변에 그늘진 곳들이 점점 줄어든다. 곧이어 아직 어두컴컴하게 그늘진 곳에서 벌어지는 두 남자의 난투극. 그 난투극을 발견하는 방범대원들은 그들을 보며 말한다. "아니, 이 나이 든 분들이 이게 무슨 짓이오? 예?" 그 말에 대답하는 기열의 말은 당당하고 초라하다. "이놈은 망실 공비여, 30년 만에 내가 잡은 망실 공비라고! 망실 공비도 몰라?" 방범대원들이 보기에 기열과 공산은 과거에 갇혀 사는 정신병자들이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걸까? 예전에 자신의 부하였다가 지서장이 된 복만의 얼굴이 생각났던 것일까? 기열은 맥없이 방범대원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방범대원들이 갱생원을 뛰쳐나온 자신들을 봤으니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공산과 기열은 갱생원복 윗옷을 벗고 힘겹게 걷는다. 서울 지리를 모르는 기열에게 "글로 가면 마포여,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야 한담시롱. 일로 가."라고 공산은 말한다. 죽을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안 것인지, 공산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영화가 끝나기 전 10분은 전체가 명장면들이다.

 

천신만고 끝에 기차를 탄 기열과 공산. 여기서 기열의 플래시백이 다시 돈다. 아내와 아들과 함께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는 기열. 마치 그들이 자신을 고향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미소를 짓는다. 그는 그들에게 속죄할 수 없는 죄를 지었다. 그때 기열의 플래시백을 해설하는 듯, 공산의 유언이 들린다. "사람이 태어나서 죄짓고 살 건 못돼야. 죽어서만이라도 고향 땅에 묻히고 싶었는디, 고양이도 낯짝이 있다고 당최 갈 수가 있어야제." 이때 뭔가 어색하게 들렸던 영화 배경음악들이 이해가 되었다. 현대극이지만 기타나 드럼이 아닌 국악으로 한국인의 감성을 자극하며 감독의 의도를 전달한다. 장송곡처럼 들렸던 메인 테마곡은 이념에 갇힌 사람들 간의 화해와 화합을 바라는 의도가 아닐까? 그 시작은 가혹한 이념의 시대에 있었던 허무한 싸움들과 그 기억들과의 작별이다.     

 

약 40년 전 임권택 감독은 "반공영화(反共映畵)"에서 "반공(反空)"을 말했다.     

 

영화 <마부>의 강대진 감독이 제작을 맡았다. 

"태어날 바에는 좋은 땅에 태어날 일이지." 

 

1985년작 <길소뜸>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남녀 관계에서 찾는다. KBS에서 <이산가족 찾기>가 방송되던 1983년. 남북 분단으로 생사조차 모른 채 살았던 사람들이 KBS 공개홀에 모여들어 가족을 찾는다. 단란한 가정의 어머니인 화영은 6.25 전쟁 중 낳은 아들의 생사를 모른 채 살아왔다. "혈육이란 인간에게선 가장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유대야."라는 남편의 말에, 화영은 혹시 장성한 아들이 자신을 찾고 있을지도 몰라 KBS 공개홀로 간다. 거기서 죽은 줄만 알았던 옛 애인 동진을 만나게 된다. 동진 역시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되었다. 둘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영화 <짝코>처럼 두 개의 플래시백들이 돌아간다.  

 

어린 시절에 만난 동진과 화영은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보는 듯 애틋한 사랑을 한다. 둘이 하는 모든 것들이 처음이기에 소중했고 오래 간직되었다. 동진의 아이를 임신한 중학생 화영. 부담을 느낀 동진의 아버지가 화영을 춘천에 있는 친적집으로 보낸다. "기다려, 꼭 데리러 갈게."라는 동진의 말이 영화 내용의 반을 함축한다. 서로 "술래잡기" 하듯 엇갈리는 동진과 화영. 힘겹게 낳은 아들 성운도 화영이 간첩죄로 교도소 수감되었을 때 이웃에게 맡겨져, 어느 날 미국 지프차에 실려갔다는 소문만 있을 뿐 생사를 알 수 없다. 여기까지 진행된 동진과 화영의 플래시백들은 전개를 위한 전형적인 장치로만 쓰여서 평범했다. 중년이 되어 만난 동진에게 "고의든 아니든 자식을 유기했다는 죄책감이 평생 동안 저를 괴롭혀 왔어요."라고 말하는 화영. 둘은 정황상 춘천에 사는 "맹석철"이 아들 성운일지도 몰라 함께 찾아간다.

 

영화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이산가족 관련 방송들 때문에 극적으로 만난 혈육의 정을 나눔으로 영화가 끝날 것 같았는데, 동진과 화영이 석철의 가족을 만나면서부터 점점 긴장감이 고조된다. 가장 큰 이유는 동진의 플래시백이 꺼지고 화영의 플래시백만 계속 도는 것에 있다. 석철의 과거는 플래시백이 아닌 그의 구술로 표현된다. 이 변화와 차이는 세 사람의 관계가 연대될 수 없음을 암시한다.  

 

부모 없이 자란 석철의 거친 말과 행동들에 동진과 화영은 당황한다. 무엇보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석철. 화영은 그런 그를 혈육으로 인정하고 못다 한 정을 나누는 것이 내키지 않다. 아들을 유기한 죄책감은 크지만 모성애를 갖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이 사람새끼로 태어나서 지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살다니, 이런 짐승만도 못한 신세가 어디 있겠습니까?" 석철과 길게 대화를 나누면서 약간의 연민을 가지게 된 동진. 석철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 동진은, 잠든 석철의 발 한쪽에 자신의 같은 발 한쪽을 맞대며 어떤 정을 나눈다. 화영은 아직 그럴 수 없다. "나는 차에서 자겠어요."

세 사람은 병원에서 유전자 검사를 통한 친자 확인 검사를 받았고, 결과가 나오는 사흘 뒤에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다. 헤어지기 전 동진은 화영의 한 손을 잡으며 역시 어떤 정을 표현한다. 순간 클로즈업된 두 손들. 서로 잡은 손들이 놓아질 때 화영의 손은 동진의 손을 놓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동진의 손은 화면에서 사라진다. 만약 동진이 화영에게 좀 더 애정을 표현했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카메라는 홀로 남은 화영의 손을 계속 비춘다. 점점 손이 쥐어져 굳게 오므린 주먹이 된다. 동진과 석철, 두 남자에 대한 일말의 정이 끊어지는 순간이다. 가족에게 전화를 거는 화영. 오랜만에 활짝 웃는 모습으로 자녀들과 안부를 주고받는다. 뒤이어 남편과 대화하는 화영. 

 

남편: 여보, 나요. 거기 어디요?

화영: 여기 설악산이에요. 

남편: 설악산, 거긴 왜?

화영: 옛날 생각이 나서요. 

 

대화가 끝나자마자 등장하는 화영의 플래시백. 이 플래시백은 한편으로 영화 <짝코>에서 송기열의 플래시백들 중 하나와, 다른 한편으로 차기작 <티켓>의 주인공 민 마담을 떠오르게 한다. 속초에서 마담 생활을 하던 화영은,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 영준을 만났다. 그는 속초에서 일생을 쫓던 원수를 마주쳤다고 말한다. "죽였나요?"라는 화영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젓는다. 6.25 전쟁에서 남한군과 북한군의 일진일퇴로 벌어진 가족의 참극을 경험한 영준은 말한다. "죽은 자나 죽인 자나 불행한 것은 양쪽이 다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어." 기열은 속초에서 백공산의 처자를 보며 저 생각을 하지 못했거나 인정하지 않아서 끝내 폐인이 되었다. "우린 다만 강대국들의 대리전쟁을 치른 피에로에 불과했던 거요." 6.25 전쟁, 그 원인과 결과를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사랑하겠다는 영준의 말에, 화영은 자신의 죄책감이 조금 덜어진 듯 웃는다. 이후 화영에게 청혼을 하는 영준. 플래시백은 여기서 끝난다.

 

그 결혼이 지금의 화영이 되게 했다. <티켓>의 민 마담도 미완성으로 끝난 옛사랑의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했다면 삶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혼자서 과거의 일들에서 비롯된 모든 결과들의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화영이 임신 후 춘천으로 떠나기 전, 동진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제발 너무 괴로워하지 마. 오빠 혼자만의 책임은 아니니까." 화영의 마지막 플래시백은 이후에 있을 그녀의 말과 행동들에 공감의 여지를 만들었다. 

 

친자확인 검사가 나온 날 한 자리에 모인 화영, 동진, 석철. 담당의사는 이천만 명 중에 한 명이라는 확률로 친자가 거의 확실하다는 겸사결과를 내놓는다. 의도된 화영의 딴지. "그럼 100% 친자라고 보장하실 수 있나요?" 높은 확률이지만 100%는 아니다는 논리. 질문을 듣고 지은 담당의사의 표정이 대답의 반이다. "부인, 사람은 무생물이 아닙니다. 프로테이지는 무생물에 한에서만 말할 수 있습니다. 정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쯤 되면 화영이 운명 같은 검사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되어야 하는데, 이미 결심이 선 화영은 이 검사 결과를 부정한다. "저는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것보다는 100%의 한 핏줄이기를 바라고 있어요. 저로서는 이 검사 결과에 대해서 믿음도 가지 않을뿐더러, 박사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이후 영화의 명장면이 나온다. "개선장군" 같은 화영의 걸음과 몸짓. 화면에서 화영을 제외한 사람들의 모습은 저마다 참담하다.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는 화영과 석철 사이에 서 있는 동진. 화영처럼 완전히 부정할 수 없지만, 석철을 아들로 받아들일 수도 없는 상황. 그런 동진을 보며 화영이 다가가 명함을 전하며 말한다.

 

화영: "제 주소예요. 필요하시면 연락 주세요." 

동진: "잘 가시오."

화영: "안녕히들 가세요." 

 

화영은 뒤도 안 돌아보고 개인 차를 이끌고 떠난다. "앞으로 종종 만나세." 동진은 석철에게 말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놈이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요?"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석철도 떠난다. 혼자 남은 동진은 화영이 준 명함을 본다. 기업의 대표이사가 된 남편 "박영준" 이름이 적혀있다. 동진은 그 명함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떠난다. 다시 만났지만 또 헤어지는 세 사람. 이제 서로 다시 만나거나 연락할 일도 없다.

 

부모님을 여의고 불우하게 자란 화영. 미혼모였고 간첩죄로 7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었다. 속초에서 마담 생활을 하다가 무일푼 떠돌이 영준을 만나 결혼을 했다. 이후 영준은 기업의 대표이사가 되었고, 화영은 그와 세 자녀를 낳아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넓은 집과 개인 차가 이전과 다른 그녀의 삶을 표현한다. 아버지의 재력으로 부유하게 자란 동진. 6.25 전쟁이 발생하고 몇 년 뒤 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급격히 가세가 기울었고 화영을 찾으러 약장수 패를 따라다니며 전국을 다녔다. 6.25 전쟁 때 도움을 받은 장 씨 아저씨가 죽으면서 자기의 딸과 혼인해 줄 것을 동진에게 부탁한다. 동진은 그녀와 아들만 다섯을 낳는다. "착한 여자였지만 사랑할 수 없었어." 동진의 가정은 근근이 살아간다. 고아원과 소년원에서 자란 석철은 18세 때 해병대에 입대하여 월남 파병을 다녀왔다. 공사현장 근처에서 식사 준비를 하던 여자와 결혼하여 딸과 아들을 낳았지만, 딸은 왠지 자기 자식이 아닌 것 같다며 의심한다. 석철은 돼지 도살을 하거나 시체 염을 하는 등 험한 일을 하는 일용직 노동자다. 차에 치어 죽은 개를 들고 "이 개고기가 얼마나 몸에 좋은 건데 야단이세요?"라며 화영과 다툰다. 세 사람은 각각 동 시대의 사회 계층을 대변하는 듯 보였다. 

 

30년 동안 서로에게 많은 일들이 있었고 시대도 변했다. 화영이 죄책감만으로 저 두 남자를 다시 받아들이기에는 피해가 너무 커 보인다. "거기까지는 생각 안 해봤어요." 지금의 가정과 그 행복이 더 좋기에 포기할 수 없다. 집으로 돌아가는 운전 중에 화영은 담당의사가 했던 말을 상기한다.

 

"심지어 방송으로 친족임을 확인하고도 서로 찾지 않거나, 찾아도 상봉을 피하거나, 재회를 하고도 결합을 원치 않는 예를 보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분단 이후의 장기적인 이질화가 빚어낸 후유증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민족의 동질성만은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한 핏줄을 타고난 단일민족이니까요."  

 

갑자기 급정거를 한 화영. 상행선으로 차를 돌릴 것처럼 보였지만 다시 하행선을 탄다. 부정할 수 없는 것들로부터 도망치는 것일까? 부정할 수 없지만 부정하듯 살고 싶은 것일까? 천천히 멀어지는 차를 뒤쫓는 카메라. 전자음과 해금소리가 구슬프게 들린다.

 

이 영화가 가진 메시지들은 보면 볼수록 깊고 진보적이다. 

 

오래전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에서 정성일 영화평론가는 100번 넘게 본 영화들 중에서 한국 영화로 유일하게 이 영화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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