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바톤 핑크] "작가는 줏대를 가지고 글을 씁니다." 본문

內 世 上 /Cinemacus

[바톤 핑크] "작가는 줏대를 가지고 글을 씁니다."

EAST-TIGER 2021. 1. 22. 02:36

1991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Coen Brothers의 영화 <바톤 핑크>. 이 영화 포스터를 어릴 때 비디오 대여점 옆을 지나다가 자주 보았다. 그때 집에 비디오 플레이어는 없었고 영화를 볼 기회도 거의 없었다. "영화를 본다"라는 느낌으로 보게 된 시기는, 고등학생 때 학교 방송국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거기서 만난 선배들 중에 Coen Brothers를 아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이름을 들었던 기억은 없다. 대학생 때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고 Coen Brothers를 처음으로 알았다. 

 

Hitchcock 감독의 영화들에서 보았던 서스펜스 연출들을 Coen Brothers의 영화들에서 본다. 영화 <바톤 핑크>를 보면서 "Hitchcock 감독이 살아있었다면 이런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현장음들로 극 분위기를 형성하고 등장인물의 심리 변화를 표현한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용수철 침대가 눌리는 소리, 모기가 날아다니는 소리, 옆방이나 가까운 공간에서 들리는 소리, 방 벽지가 떨어지는 소리,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 타자기 치는 소리 등, 현장음들이 뚜렷하고 크게 들린다. 맥거핀으로 불안감을 실체화한다. 찰리가 바톤에게 준 상자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내가 준 저 상자 말이야. 거짓말이야. 그거 내 거 아니야." 찰리는 자기 것이 아닌 것을 바톤에게 주었다. 바톤은 그 상자를 열어보지 않는다. 형사들이 바톤의 집을 수색할 때도 상자는 열리지 않는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상자는 열리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만 속은 알 수 없는 상자. 이 상자는 찰리가 사는 방, 갑자기 떨어지는 벽지와 함께, 알 수 없고 숨겨진 것들에서 비롯된 막연한 불안 그 자체를 표현한다. 

 

Coen Brothers의 영화들이 Hitchcock의 영화들보다 진일보한 점은 해학과 풍자다. 한 인물이 공감의 대상과 비판의 대상이 된다. 진지한 분위기에서 인물들 간의 대화가 이루어지지만, 듣고 있으면 가끔 웃음이 나온다. 영화 <애리조나 유괴사건>과 <위대한 레보스키>를 보면, 코미디 장르에 대한 Coen Brothers의 이해와 독특한 연출을 볼 수 있다. 정도의 지나침에서 오는 코미디. 이 코미디가 서스펜스 스릴러와 엮어지면 영화 <바톤 핑크>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된다. 공감할 수 없고 비판할 수 없는 캐릭터가 Coen Brothers의 영화들에서는 별로 없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살인마 안톤 쉬거가 팔이 부러지는 중상을 당했을 때, "괜찮으세요? 뼈가 팔에서 튀어나왔어요."라고 말하는 소년에게 "입고 있는 그 셔츠 얼마니?"라고 묻는다. 셔츠로 응급처치를 한 후 "이 돈 받고 나 봤다는 말 하지 마라. 난 진작에 간 거야."라고 말한 뒤, 조금 절뚝거리다가 점점 차분히 걸어간다. 그는 정말 미쳤고 정말 살인마다. 쉬거의 등 뒤에서는 두 소년들이 그가 준 돈 때문에 다툰다. 영화의 내용을 함축하는 장면이다. 이런 상황이 Coen Brothers의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들에서 등장하는 코미디다.  

 

"진정한 성공을 원해요. 우리가 꿈꾸던 성공이요. 보통사람들을 위한 새롭고 살아있는 연극을 만들고 싶어요."

 

영화 <바톤 핑크>는 창작의 고통을 겪는 극작가의 심리 변화를 표현한다. 장르는 블랙코미디라 생각한다. 뉴욕에서 극작가로 성공한 바톤은, 할리우드의 영화제작사 "캐피털"에 스카우트되어 LA로 가게 된다. 얼 호텔 621호에 머물게 된 바톤. 밤이 되고 피곤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방에 모기가 있다. 다음날 캐피털 대표 잭 립닉을 만난 바톤. "원하는 것은 뭐든 지 말하게, 바톤." 동시에 립닉은 바톤에게 레슬링  영화 각본을 부탁한다. 바톤은 레슬링을 본 적도 없다.

 

1940년대 초반 할리우드 영화 제작 환경이 눈에 들어온다. 제작자들과 투자자들은 인기 감독들과 작가들을 불러 모아 원하는 것은 다 들어주겠다고 말하면서, 돈이 되는 영화를 부탁한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제작사 대표 립닉이 바톤을 만나기 전에 그가 연출한 연극들 중 한 편이라도 직접 보았다면, 바톤은 계속 뉴욕에 남아 있지 않았을까? 바톤 역시 립닉이 제작한 영화들을 보았다면, LA로 가지 않았을 것 같다. 립닉은 명성만 듣고 바톤을 불렀고, 소신을 가진 바톤이지만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 LA로 왔다. 개인 성향과 작품 세계에 대해서는 서로 잘 모른다. 그럼에도 갑을관계는 확실하다.    

 

돈이 되는 각본을 써준다면 작가 앞에 무릎을 꿇고 그의 신발에 키스를 하는 립닉. "중요한 것은 바톤 핑크다운 감성이 있어야 합니다." 각본이 마음에 안 들면 불같이 화를 내며 작가를 모욕한다. "당신은 작가가 아니야, 핑크 씨. 완전 허접이지." 바톤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당장 레슬링 영화 각본을 써야 한다. 돌아오는 일요일에 중간 점검을 위해 립닉을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당신의 위대한 작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일주일 만에? 바톤은 점점 불안하다. 

 

"새로운 연극이라고 말하지 말고, 진정한 연극이라고 말해주세요, 찰리. 우리의 연극이라고 말해요!"

 

623호에 사는 찰리. 그의 울음소리를 들고 바톤은 호텔 직원에게 전화를 건다. "시끄러워요." 전화를 끊고 몇 분 뒤 찰리가 찾아오고, 허락 없이 바톤의 방으로 들어와 술을 권한다. "제가 당황하게 했나요?" 찰리의 친화력에 소심한 바톤도 점점 말이 많아진다. "몇몇 소박한 진실들을 바탕으로 대중은 위한 연극을 만들어야 합니다." 어느새 립닉처럼 자신의 말만 늘어놓는 바톤. "저도 말하고 싶은 얘기들이 있어요." 바톤은 찰리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바톤이 진짜 보통사람들의 삶에 관한 각본들을 썼을까? 바톤의 말과 행동들은 어딘가 립닉과 닮았다. 권위의식을 바탕으로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 작가다. 평소 존경하던 작가 W. P. 메이휴를 만났지만 그의 기행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혐오한다. 그의 개인 비서이자 애인인 오드리에게는 관대하다. 바톤이 LA에서 유일하게 좋아하는 사람이다. 찰리는 바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지만 바톤은 그런 찰리가 부담스럽다. 바톤은 찰리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한다. 레슬링에 대해 전혀 모르는데 타자기 앞에만 앉아있다. 립닉을 만나기 하루 전에서야 처음으로 레슬링 영화를 보았다. 전혀 관심이 없다.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내게 피해 주지 마세요, 핑크 씨!" 무엇을 써야 할지 막막하다. 바톤이 말하는 보통 사람들 중에 생선장수는 있어도 레슬링 선수는 없다. 그가 연출한 연극을 보러 온 관객들 중에 생선장수가 있었을까? 1940년대 뉴욕에서 바톤의 연극을 볼만큼 여유 있는 생선장수는 없었을 것 같다. 돈이 있다면 연극을 보러 극장에 오기보다, 메이휴처럼 술을 마시며 주정을 부렸겠지. 바톤은 그동안 보통사람들에 대한 이해 없이, 추측과 상상만으로 그들의 삶에 관한 각본들을 썼던 것은 아닐까?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인물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가능한 인물은 오드리뿐이다. "바톤, 감정 이입을 하려면 이해가 필요해요." 그녀는 불평을 늘어놓는 메이휴와 징징대는 바톤을 다독인다. 바톤은 메이휴가 쓴 영화 각본들을 읽어 본 그녀에게 도움을 부탁하고, 그녀는 한밤중에 바톤이 있는 호텔방으로 찾아온다. "바튼, 그건 단지 공식이에요. 영혼을 담아 대본을 쓸 필요는 없어요." 오드리는 어떻게 레슬링 영화의 각본을 써야 할지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녀가 메이휴가 낸 아이디어들로 여러 번 영화 각본들을 써봤기 때문이다. 오드리도 순수 창작보다는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들의 요구들에 부합하는 전형적인 각본을 추구한다. "우리는 모두 이해가 필요해요. 오늘 당신도 그렇고. 그것이 정말로 필요한 전부예요." 

 

오드리의 "머리"가 바톤에게 있어서 유일한 "희망"이다.  

 

오드리와 하룻밤을 보낸 바톤. 아침에 눈을 뜨니 오드리 몸에 모기가 앉아있다. 잠깐 고민을 하다가 손을 뻗어 모기를 잡았고 피가 흘렀다.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오드리. 그녀도 피를 흘린 채 죽어 있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때부터 영화가 불친절하다.  

 

바톤은 처음으로 찰리의 방 앞까지 간다. 

 

찰리: "괜찮아요?" 

바톤: "아니요, 들어가도 돼요?"

찰리: "당신 방으로 가죠. 무슨 일이죠?"

바톤: "찰리, 문제가 생겼어요. 도와줘요."

    

평소 찰리는 자신의 방에서 나와 바톤의 방으로 간다. 카메라는 벽 너머에서 진행되는 찰리의 이동을 역동적으로 보여준다. 찰리는 자신의 방을 바톤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누구도 찰리의 방을 볼 수 없다. 바톤의 방에서 오드리의 시체를 본 찰리는 구토를 한다. "자, 화장실에서 기다려요." 바톤을 진정시킨 후 찰리는 오드리의 시체를 어디론가 가져간다. 이때 오드리의 머리가 서랍장에 살짝 부딪힌다. 그것을 본 찰리는 정신을 잃는다. 여기서 찰리와 바톤이 이전에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찰리: "이 지저분한 호텔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귀에 들려요. 파이프 때문인지." 

바톤: "모든 일들이요?"

찰리: "당신은 괜찮겠죠. 머리가 있으니까. 뭐라더라, '머리가 있는 곳에 희망이 있다.'라는 말처럼요."

바톤: "'생명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다.'"

찰리: "그거 봐요, 당신은 작가가 맞아요."

 

이미 찰리는 바톤과 오드리의 전화 통화부터 함께 밤을 보낸 것까지 모두 알고 있다. 찰리에게 머리는 희망이다. 오드리의 머리를 자름으로써 바톤의 희망을 없앴다. 오드리가 죽음으로써 찰리에게 희망이 사라졌다. 립닉에게 레슬링 영화 각본에 대해서 할 말이 없다. 희망이 없기에 바톤도 정신을 잃는다. 그런 바톤의 머리를 찰리는 세게 때리며 깨운다. "힘들겠지만 평상시처럼 일을 계속해요."

 

"세상이 당신을 중심으로 당신 머릿속에서 웅웅 거리며 돌아간다고 생각하지?"

 

바톤은 약속시간에 맞춰 립닉의 저택으로 향한다. 바톤의 공간과 립닉의 공간은 어둠과 빛처럼 대조적이다. 진한 다크서클, 정리 안된 수염. 일주일만에 바톤의 얼굴은 초췌하다. 육체노동자의 얼굴이다. 립닉은 여전히 말이 많고 여유롭다. 개인 수영장이 있는 정원에서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바톤을 맞이한다. 아직까진 바톤을 철저히 신뢰한다. 감독 가이슬러로부터 영화 준비과정이 순조롭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귀에 들리는 말들이 좋으면 그냥 좋은 거다. "우린 진정한 작가를 얻었습니다. 당신을 믿어요." 바톤은 영화 줄거리를 말할 수 없다. "지금 당신 머릿속에 있는 내용은 캐피털 영화사의 재산이야!" 개인 비서 루가 바톤에게 하는 말을 듣고 립닉은 불같이 화를 낸다. "이분은 지금 생계를 위해서 창작을 하고 있다고! 어서 고맙다고 해, 아니면 해고야!" 립닉의 말을 거절한 루는 그 자리에서 해고당한다. "캐피털 영화사 경영진, 주주들을 대신해서 사과와 존경의 표시로 이것을 받아주십시오." 립닉이 대신 무릎을 꿇고 바톤의 구두에 키스를 한다. 바톤에게 자본의 힘은 엄청난 압박이다. 영화사와 노동 계약을 맺고 급료를 받았으니 바톤은 기한 내로 대본을 써야 한다. 루처럼 굴욕적으로 해고당할 수 있다.   

 

바톤은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정신적 압박과 두려움에 직면했다. 

 

"바톤, 들어가도 돼요?" 찰리가 찾아왔다. 찰리는 잠시 뉴욕 본사로 출장을 가야 한다고 말한다. 찰리에게 울듯이 말하는 바톤. "찰리, 여기에는 아무도 없어요. LA에서 내가 아는 사람은, 내가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 말고는 없어요." 찰리가 바톤에게 하는 말이 웃겼다. "정신 차려야 해요.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잘 견뎌요. 문 잘 잠그고 여기 있어요. 살아있어야 누가 죽였는지 알 수 있죠." 이 말은 데뷔작 <블러드 심플>에서 마티가 했던 말을 생각나게 한다. "문단속을 잘했어야지." 바톤은 문단속을 못해서 오드리와 희망을 잃었다. 살아있으니 정신 차리고 각본을 써야 하는데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 각본을 쓸 영감도 필요하다. 찰리는 바톤에게 상자 하나를 맡기며 말한다. "혹시 이게 행운을 가져다 줄지도 몰라요. 각본을 다 쓰게 할 거예요. 나를 그 각본 속의 레슬러로 만들어요. 그러면 그 일을 잊을 거예요."

 

밤을 새웠지만 각본을 전혀 쓰지 못했다. 문득 성경을 읽는 바톤. 다니엘 2장은 네부카드네자르 왕의 꿈에 대한 이야기다. 왕은 꿈을 꾸었지만 무슨 꿈을 꾸었는지 모른다. 신하들은 왕이 무슨 꿈을 꾸었는지 먼저 알아야 하고 그다음 그 꿈에 대한 해석을 해야 한다. 창세기 1장은 천지창조에 관련된 이야기다. 1절의 내용이 다르다. "밝아옴. 맨해튼 남동쪽에 낡은 주택가 희미하게 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바톤이 쓸 각본의 첫 문장이 창세기 1장 1절이다. 네부카드네자르 왕은 립닉을 상징한다. 그는 바톤에게 레슬링 각본을 원한다. 쓰지 못하면 해고다. 머리와 생명이 있는 바톤이 스스로 희망이 되어 각본을 써야 한다.

 

호텔 로비에 손님들이 왔다는 말을 듣고 바톤은 엘리베이터를 탄다. 엘리베이터 안내원 피터에게 말을 건다. "성경을 읽나요? 피터." 피터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정확히는 "어쨌든 들어는 봤어요." 호텔 로비에는 LA 경찰서 소속 두 형사들이 바톤을 기다린다. 그 형사들은 바톤에게 옆방에 사는 찰리의 본명이 칼 문트, 일명 "미친 문트"로 불리는 연쇄 살인범으로서 잔인하게 사람을 죽인 후 머리를 자른다고 말한다. 오드리가 죽었던 어제, 머리 없는 30대 초반 여자 시신이 할리우드 지역에서 발견됐기에 그 형사들은 바톤을 탐문 수사한다. 바톤은 찰리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하지만, 형사들이 원하는 정보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핑크"라는 유대인 성을 가진 바톤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다. "이 호텔은 출입제한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두 형사의 이름들은 각각, "마스트린노티"와 "도이치". 즉 이탈리아와 독일 이름이다.

 

찰리가 준 상자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오드리의 머리가 들어있을 것 같다면 문단속을 잘해야 한다. 상자가 열리면 경찰에 체포될 것이다. 상자를 보고 있으면 LA에서 일주일 넘게 지냈던 날들이 생각난다. 이 상자는 바톤에게 불안감과 영감을 동시에 준다. 도망칠 수도 없는 상황. 창작을 위한 준비가 다 끝났다. LA에서 만난 사람들이 "보통사람들"로서 바톤의 각본에 등장할 것이다.

 

바톤은 집필을 시작했고 순식간에 각본 "벌리맨"을 완성했다. "아마 가장 훌륭한 작품이 될 것 같아요." 필생의 역작이라고 생각하는 바톤.  말끔하게 단장을 하고 각본의 완성을 자축하며 이름 모를 여자와 춤을 춘다. 갑자기 바톤의 어깨를 잡으며 내일 출항을 앞둔 해군 병사가 말한다. "실례하지만 대신 춰도 될까요?" 바톤은 거절한다. 그때 주변에 있던 해군 장병들이 바톤을 조롱한다. 바톤은 소리친다. "난 작가야, 이 괴물들아!"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이게 내 제복이라고! 이것이 내가 보통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방식이야!" 각본을 완성한 후 바톤은 다시 권위의식을 바탕으로 자기중심적인 말과 행동들을 한다. 그 순간 해군 병사가 바톤을 때려눕히고, 동시에 해군 장병들이 서로 뒤엉켜 싸운다.

 

바톤은 여전히 타인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방으로 돌아오니 문이 열려있다. 두 형사들이 바톤이 쓴 각본을 읽으며 말한다. "마음에 들어."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좋아하는 각본? 바톤의 각본이 편협한 관점에서 집필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형사들은 바톤에게 신문을 던졌고, 바톤은 메이휴가 살해당했다는 기사를 본다. 방에 난로가 피워져 있다. 왜 형사들은 책상 위에 있는 상자를 열어보지 않았을까? 문트를 계속 추적했다면서 왜 이제야 나타나 바톤을 탐문하는 것일까? 왜 그들은 문트의 방이 아닌 바톤의 방을 수색하는 것일까? 이 두 형사들은 바톤의 현재 모습들을 대변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없다. 무례하다.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자기 멋대로 결론을 내려 아는 척한다. 문제의 원인을 탐구하거나 제거하지 않고 그 결과들에 집중한다. 상대방의 말을 듣지만 집중하지 않는다. 권위의식에서 비롯된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두 형사들은 현재 바톤 그 자체다.

 

아까 방에 난로가 피워져 있는 것을 본 바톤은 찰리가 돌아왔다는 것을 직감한다. "찰리가 돌아왔어요. 더운걸 보니 찰리가 돌아온 거예요" 순간 엘리베이터 벨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내린다. 마스트린노티 형사가 먼저 방 밖으로 나가고, 도이치 형사는 바톤의 손목 한쪽과 침대 기둥 한쪽을 수갑으로 채우고 방 밖으로 나간다. 서서히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찰리. 더블 배럴 샷건을 들고 한 발을 쏜다. 마스트린노티 형사가 맞고 쓰러진다. "나를 봐! 내 정신생활을 보여줄 테니까!" 찰리의 등 뒤로 불길이 치솟고, 샷건을 든 찰리는 도이치 형사에게 달려든다. 불은 빠르게 퍼져나간다. 도망치는 도이치 형사의 발을 맞춘 찰리. 바톤이 보는 앞에서 재장전을 하고 "히틀러 만세"라고 말하며 도이치 형사를 죽인다.

 

"왜 그렇게 봐? 난 그냥 찰리야." 바톤의 방으로 들어온 찰리. "문트, 미친 문트라고 하던데?" 바톤의 말을 들은 찰리는 "젠장, 사람들은 참 잔인해. 늘 내 외모 아니면 성격으로 별명을 만들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쌍해". 찰리가 볼 때 사람들은 함정에 빠지듯 어려운 일을 겪는다. 단지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살인을 한 것뿐이다. 찰리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작가 인생이 끝났을 것이다. 그러니까, 각본을 쓰기 위해 오드리나 메이휴의 도움을 받아서는 안된다. 바톤 스스로 창작의 고통을 겪으며 각본을 완성해야 한다. "하지만 찰리, 왜 나지? 왜?" 바톤의 질문에 찰리는 "왜냐하면 넌 내 말을 안 들으니까!"라고 소리친다. 찰리는 묻는다. "넌 네가 고통을 안다고 생각하지? 내가 네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해? 이 호텔을 봐, 넌 타자기를 들고 나타난 관광객이고, 난 이곳에 살아. 아직도 이해가 안 돼?" 순간 바톤은 뭔가 깨닫는다. 

 

찰리: "내 집에 와서 내가 시끄럽다고 불평을 했어."

바톤: "미안해."

찰리: "그럴 필요 없어."

 

찰리는 두 손으로 침대 기둥을 붙잡고 힘을 주어 수갑의 한쪽을 푼다. 순간 동그란 공 모양의 침대 이음새가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간다. 찰리가 바톤이 가진 무언가를 죽였다는 암시다. "필요하면 이웃이 돼줄게."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고 일어선 찰리는, 바톤이 지난번 대화에서 뉴욕에 친척들이 산다며 주소를 알려준 것을 상기시킨다. "뉴욕에서 네 친적집에 들렀어. 모리 삼촌도 만났고. 좋은 사람들이야." 찰리는 그들을 모두 죽였다. 바톤 역시 찰리처럼 혼자가 되었다. 찰리가 방을 나가자, 상자와 각본을 들고 자신도 방을 나간다. 복도의 벽면이 불타는 중에 찰리는 열쇠를 꺼내 자기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자신의 세계 속에 사는 찰리. 그 모습을 보고 바톤은 호텔을 떠난다.   

 

완성된 각본을 귀로 들은 립닉이 바톤을 불렀고, 둘은 다시 만난다. 당국의 승인 없이 예비군 대령 복장을 한 립닉. 제멋대로다. "각본이 안 좋아." 립닉의 그 말에 바톤은 피곤한 듯 말한다. "죄송하지만 지금까지 제 작품들 중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자세히 보니 바톤의 얼굴이 초췌하다. 아직 상자는 개봉되지 않은 채 바톤의 손에 있다. "무엇보다도, 이건 레슬링 영화야. 당신의 관객들은 역동적인 레슬링 경기를 많이 보고 싶어 한다고! 영혼과 레슬링 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아! 당신은 본말이 전도된 각본을 썼으니 영화를 보던 관객들이 극장 밖으로 나갈 거라고!." 한마디로 "그 링 안에는 시적 요소가 많아!" 해고되었던 루가 복직했고 그는 립닉의 말들에 적절히 "featuring"한다. 영화는 엎어졌다. 바톤이 해고되어야 하는데 계약기간이 아직 남았다. 가이슬러 감독이 모든 책임을 지고 해고되었다. "계약이 유효하니까, 당신의 작품은 모두 캐피털 영화사 소유입니다. 그러나 캐피털 영화사는 당신의 각본으로 영화를 만들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좀 더 성장하기 전까지 말이죠." 립닉 역시 바톤처럼 유대인이다. 

 

필생의 역작으로 쓴 바톤의 각본은 연극으로도 공연될 수 없다. 바톤이 아닌 캐피털 영화사가 소유권을 가졌다. 계약기간이 남았으나 LA에 있더라도 바톤은 더 이상 립닉을 만날 수 없다. LA로 올 때 바톤이 이런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바톤의 영화 작가 커리어는 거의 끝났다.  

 

각본 내용에 있어서 전형적인 공식은 없다. 제작자들과 감독들, 작가들은 공식들이 있다고 믿는다. 바라는 내용들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가 가진 공식들은 차이가 있다. 이 차이가 갈등의 원인이다. 영화사의 급료를 받고 쓴 작가의 각본은 영화사의 것이다. 각본이 마음에 안 들면 영화사는 선임된 감독을 해고한다. 그 각본을 쓴 작가는 계약기간 동안 영화사가 길들여 보겠지만, 영화사에 고용된 작가들은 많다. 할리우드 영화계가 어떻게 자본주의를 실현하는지 알 수 있다.   

 

영화 초반에 등장했던 바위에 파도가 부서지는 장면이 종반에 다시 등장한다. 바위 같은 줏대를 가진 작가 바톤은 계속 할리우드에 남아 각본을 쓸 수 있을까? 돈과 결정권을 가진 영화 제작사들이 바톤의 줏대를 마냥 인정할 수 없다. 밀려오는 파도처럼 계속 바톤을 자신들의 시스템 안에서 길들일 것이다. 바톤도 메이휴처럼 방파제를 만들어야 한다. 오드리처럼 어떤 공식들을 염두하고 일주일 안에 각본을 집필해야 한다. 저항할 것인가? 적응할 것인가? 파도는 끊임없이 바위를 깎는다. 아이디어들이 소진되면 작가는 불구가 된다. 영화 제작사들은 새로운 작가를 채용할 것이다.  

 

한 손에 상자를 들고 해변가를 걷는 바톤. 반대편에서 아름다운 여자가 걸어온다. 서로 가까운 거리를 두고 모래사장에 앉는다. 

 

여자: "상자에 무엇이 들어있어요?"

바톤: "모르겠어요."

여자: "당신 거 아닌가요?"

바톤: "모르겠어요. 당신은 아름다워요. 혹시 영화배우세요?"

여자: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여자가 바다를 보기 위해 돌아앉았다. 순간 호텔방에서 보았던 그림과 비슷한 풍경이 바톤의 눈에 보인다. 아름다운 여자지만 영화배우는 아닌 것같이, 비슷하지만 같지 않다. "그럴 것이다"와 "틀림없다"는 추측과 확신에서 비롯된 착각이다.

 

Coen Brothers의 거의 모든 영화들은 데뷔작 <블러드 심플>에서 천명한 명제를 따른다. "세상은 불만으로 가득해.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 Coen Brothers는 영화에서 불만과 불안에서 비롯된 말과 행동들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난 불만을 가진 채로 살 거야. 누군가에게 도움을 부탁해도 소용없거든."으로 결론짓는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