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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금자씨] "예뻐야 돼, 뭐든지 예쁜 게 좋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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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금자씨] "예뻐야 돼, 뭐든지 예쁜 게 좋아."

EAST-TIGER 2021. 1. 8. 00:12

박찬욱 감독의 6번째 장편 영화. 

 

계절이 겨울이라서 그런 건지, 최근 복수의 의미에 대해 짧게 생각해봐서 그런 건지, 홍상수 감독의 영화 <도망친 여자>와 김기덕 감독의 <비몽>을 연이어 봐서 그런 건지, 박찬욱 감독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다시 보았다. 2005년 7월 29일에 개봉했는데, 당시 나는 군 복무 중이라 개봉 첫날 보지 못하고 휴가 때 보았다.

 

영화 <올드보이> 이후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은 내용과 함께 영화 포스터, 미장센, 미술, 사운드 트랙 등 감각적으로 즐길 것들이 많다. 종합 선물세트 같은 느낌이랄까? 영화를 보는 동안 어디서 본 듯 여러 영화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고, 마치 Canon 카메라가 찍은 사진들을 보는 것처럼, 미술과 영상의 색들이 화려하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볼 때는 예상할 수 없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 중 가장 재밌게 본 영화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다.

 

"그럼 죽어. 그리고 새로 태어나. 필요하면 몇 번이고. 기도는 이태리타월이야. 껍질이 벗겨지도록 박박 밀어서 죄를 벗겨내. 그럼 애기속살로 변해. 알았지? "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중 마지막. 영화를 보는 동안 Jean-Pierre Jeunet 감독의 영화들이 겹쳐졌다. 특히 <델리카트슨 사람들>과 <아멜리에>. 실내 공간들에서 구성된 미장센들이 많기 때문에, 영화와 연극이 섞여있는 느낌이다. 만화 같은 장면들도 있다. 박찬욱 감독의 다른 영화들보다 극단 출신 배우들이 많이 보인다.

 

20살 때 박원모 어린이 유괴 살인사건 진범이 된 이금자. 13년 동안 수감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여자들과 남자들에게 예수와 같았다. "화평을 이루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마 5:9)처럼, 금자 스스로 "내 안에 천사는 오직 내가 부를 때만 자기의 존재를 드러낸다는 것을요."라고 말했듯이, 자기 주변에 누군가 "에이.. 차라리 내가 죽을걸." 같은 부정적인 말들과 그렇게 느껴지는 행동들에 응답하여, 그곳에 천사로서 금자가 나타난다.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며 화평케 하는 금자. 수고와 헌신 그리고 살인은, 부활을 위한, 복수를 위한 계획된 준비였다. 이런 이금자가 "이우진"이나 "박동진"이 될 수는 없었다. 둘에 비해 너무 예쁘고 가련하며 냉정하다. 금자의 얼굴을 TV로 본 여자들은 그녀가 입은 옷을 구입했다. "그해 가을에, 물방울무늬 원피스가 유행했다." 출소 후 만난 양희에게 했던 금자의 첫마디는, "근데.. 힐은 없니?" 금자가 새끼손가락을 자르고 붕대를 한 장면은, 조성모의 <가시나무> 뮤직비디오에서 이영애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베이커리 "나루세"의 사장 장 씨가 금자를 처음 보고 반한 근식에게, "내가 이쁘다고 그랬잖아." Vivaldi의 곡들이 그녀를 위해 연주되는 듯하다. 이 예쁨과 함께 자신이 죄가 없음을, 그렇기 때문에 복수를 해야 한다는 정당성을, 사람들에게 행동으로 먼저 보이고 그다음 말로 믿게 한다. 그녀는 누군가 자신을 "친절하다"거나 "섹시하다"라고 표현해주면 좋아한다. "그러니까, 유괴범이 유괴범 아이를 유괴한 거야. 재밌지? 재밌잖아." 영화 <복수는 나의 것>에서 나온 "착한 유괴론"이 다시 설파된다. 그녀가 사람을 죽이는 것에는 다 정당한 이유가 있다. 복수가 원래 그렇다.

 

금자가 출소하던 날, "두부처럼 하얗게 살라고, 다시는 죄짓지 말라는 뜻으로 먹는 겁니다."라고 말한 전도사에게, "너나 잘하세요."라고 대답한다. 그 전도사가 "가룟 유다"처럼 보였다. 이 대화는 예수가 최후의 만찬 때, 유다의 마음과 그 계획을 알고 나눈 대화와 유사하다. 금자는 그 전도사가 복수의 대상 "백한상"의 수하였던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백한상과 결혼한 수감 동료 박이정은, 금자와 백한상을 납치할 계획을 세운다. 전도사는 그들의 만남을 백한상에게 밀고했고, "주님의 사업에 유용하게 쓰겠습니다."라고 말하며 한상으로부터 돈을 받는다. 전도사는 차갑게 변해버린 금자를 배신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친절한 금자와 함께 여러 교회들을 돌면서 간증집회를 열고 돈을 벌지 않았을까?

 

범죄에 대해 높은 수준의 죄책감을 가져야 할 사람들이 전혀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다.  

 

""미안하다"고 한 번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해. 적어도 세 번 이상은 "미안하다"고 해. 관대하지 않은 당신의 딸, 제니."

 

영화에서 "Costume"처럼 교복 입은 이영애를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여고생 이금자가 혼전 임신을 하고 의지할 사람을 찾기 위해 교생 백한상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은, 이금자와 백한상 간의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함이라지만 좀 관대했다. 여고생 때도 예쁘고 영리한 느낌이 드는데, 현관에서 반 나체로 나타난 한상의 집 안으로 들어간다? 그럼 백한상의 집에서 보낸 1년과, 13년 동안 수감생활에서 보여준 이금자의 모습들은 무엇이 달랐을까? 수감 전 금자가 최 반장과 하는 대화를 들으면, 금자는 언제라도 백한상을 죽이거나 그의 집에서 뛰쳐나올 수 있어 보인다. 아니면 죄책감에 경찰서로 가서 자수를 하고, 한상과 함께 죗값을 받을 수도 있었다. <완전한 사육>을 당했던 것일까? 이것은 시중에 판매되는 각본집을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금자는 해외로 입양된 자신의 딸 제니를 찾아 한국으로 데려와서 함께 생활한다. 소중한 것을 다시 잃지 않겠다는 것과, 금자가 제니를 대하는 모습들은 "아저씨"스럽다. 백한상이 폐교로 잡혀 온 이후 점점 영화가 쉬워지고 가벼워진다. 금자가 한상을 죽였다면 "아저씨"처럼 제니를 두고 혼자 수감되었겠지만, 이 영화에서 박찬욱 감독의 복수 방식은 이전 영화들과 다르다. 개인과 개인이 아닌 개인과 다자 간의 복수다. "아무리 짐승만 못한 놈이어도 살 권리는 있는 거 아닌가요?" 이 영화에서는 없다. 금자는 최 반장의 도움으로 백한상에게 아이를 유괴당하여 잃은 유가족들을 폐교로 모은다. 거기서 최 반장과 유가족들의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들춰지고 모두 금자의 복수에 동참한다.

 

"잘 들어둬. 사람들은 누구나 실수를 해. 하지만 죄를 지었으면 속죄해야 되는 거야. 속죄 알아?"  

 

"아사셀(Azazel)"과 "망신 칼(Pillory)"이 연상되는 금자의 복수. 최 반장이 그 복수를 도움으로써 합법적이고 유가족들도 동참하니 정의로워 보인다. 그렇게 보이는 동안 놓치지 말아야 한다. 13년 전 금자를 진범으로 몰아 진짜 진범인 백한상이 더 많은 살인들을 하게 한 최 반장의 죄. 자신의 자녀를 지키지 못한 유가족들의 죄. 백한상과 유괴를 공모했고, 복수를 위해 교도소에서도 사람을 죽였으며, 그동안 자신의 딸을 지키지 못한 이금자의 죄. 각각의 죄들에 대한 책임을 당사자가 아닌 백한상이 진다. 이 모든 게 백한상 때문이다. 근데 왜 백한상만? 금자와 그녀의 복수가 가진 예쁨과 정당성에 취하거나, 백한상의 극악무도함에 분노한다면, 이 물음을 잊는다. 금자도 친절하게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백한상은 억울하다.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이란 없는 거예요. 사모님." 하지만 이금자, 최 반장, 유가족들은 각자의 죄책감을 가진채 오랫동안 형벌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백한상은 요트를 사기 위해 유가족들로부터 받은 돈을 모았고, 잘 나가는 영어학원 원장님으로 아주 평안히 살았다. "행복했어. 죄지은 사람이 그래서는 안될 만큼." 이금자, 최 반장, 유가족들은 그런 백한상에게서 <악마를 보았다>. 살려둘 수 없다. 백한상의 피가 묻을까 봐, 우비를 입은 유가족들. 칼 쓰는 법을 알려주는 최 반장. 야만스럽게 단체로 한꺼번에 달려들어 복수할 수 없다. 복수의 기회는 번호 순서대로 한 가족에 한 번씩만 주어진다. "변소 간다고 생각해. 어차피 혼자 볼일이야." 그렇게 백한상을 만날 수 있지만 뒷사람들을 위해 목숨은 살려둬야 한다. 마지막 번호였던 은주 할머니가 백한상을 죽였다. 자신과 모두의 죄를 진 백한상은 화목 제물이 되었다. 이후 복수 행위가 인멸되고 그 행위가 보전된다.   

 

백한상을 땅에 묻기 전에 울리는 두 번의 총성. 금자는 백한상을 죽음으로 몰았지만 직접 죽이진 않았다. 자신이 죽이지 못해 아쉽고, 더 고통스럽게 죽여서 기쁘고, 그렇게 복수가 끝나서 슬프다. 엄숙한 장례식 같은 암매장. 그날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백한상"이 되어 백한상을 죽였다. 죄가 죄로 덮혀진다.  

 

복수가 끝난 뒤에 찾아온 허기진 배는 케이크로 채우고, 협상을 위해 백한상에게 준 "버린 돈"은 유가족들의 계좌로 이체될 예정이다. "불란서에서는, 이렇게 말이 끊어질 때는, 천사가 지나가는 거라고 그러던데." 정열이 사라진 자리는 점점 차가워지고, 창밖에 눈이 내리는 것을 보며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한 편의 연극 같았다. 누구도 영혼의 구원을 얻지 못했다. 돈은 돌아오겠지만 아이들은 돌아올 수 없다. 백한상을 죽였지만 "기억"과 "죄책감"을 죽일 수 없다. 마중 나온 제니에게 금자는 말한다. "Be white, live White. like This.” 눈이 내리는 밤에 금자는 흰 케이크를 두부처럼 먹는다.

 

누구나 죄를 짓는다. 남에게 너무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죄를 짓자. 예쁘게.  

 

복수가 치러진 후 울리는 방울소리. 송별과 안식. 어떤 시작을 의미하는 것 같다. 이 방울소리는 영화 <올드보이>에서 처음 들렸고 영화 <아가씨>에서 다시 들린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은 앞으로도 죄인의 불가능한 속죄 행위를 복수와 구원으로 표현할 것 같다.

 

내용보다 멋진 색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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