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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결국 잃었고 나는 아직 잃지 않았다

EAST-TIGER 2017. 10. 10. 03:47

"사는 것은 무엇일까?"

위대한 사람들부터 이름없이 죽은 사람들까지 

이 질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찾으려고 했고, 

어떤 이들은 이 질문에 자신의 모든 생을 바쳤다.   

나 역시 이 고루하고 낡은 질문에 

늘 새로운 답을 찾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나는 어쨌든 지금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목요일은 다시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잠을 푹자고 일어나 식사를 했으며 이후 책을 읽었다.  

약속한 그 날이 되어서 자민이 형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자민이 형은 개인 사정 때문에 함께 가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저녁 때 혼자서 다시 그 Bar에 갔으나 약속과 달리 영업을 하지 않았다.  

나는 메모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단지 내가 한 말에 대한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자민이 형은 자정이 넘어서 다시 내게 말을 걸었다. 

내가 보았던 그대로 말했다. 


늘 불안했던 사람이었다. 

어떤 말들을 해도 들어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했었다. 

그러나 여기까지인 것 같다. 

나는 더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다.

다행히 한번도 만나지 않은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구나.  

이제 내 마음에 있었던 불안감이 해소되었다. 

최선을 다해 행복해지기를.. 

"나를 더이상 찾지 마세요."


금요일에는 어머니와 함께 기도원을 다녀왔다.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식당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이후 기도원 주변을 돌아보며 어머니와 대화를 나눴다.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 매년 며칠을 이 기도원에 있었다.

건물들 외벽은 리모델링 되었고 새로운 시설들이 생겼지만 나의 기억들은 곳곳에 살아있다. 

나의 어머니는 자신이 죽은 후 화장(火葬)할 것을 당부하시고,

자신의 유해(遺骸)를 기도원 옆 추모공원에 안치하기를 바라신다. 

나는 어머니의 몸이 불에 태워지는 것보다 온전히 보전하여 땅에 묻기를 원한다. 

무거운 마음으로 어머니와 함께 추모공원을 둘러 보았다. 

서울로 돌아가는 기도원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우리는 금촌역까지 일반 버스를 타고 가서 지하철을 이용해 집까지 돌아왔다. 

방송국 저녁 식사 모임은 재영이 형과 자민이 형만 모여 일찍 끝났다고 한다.


토요일 아침에 부모님과 함께 영등포 구청역 근처에서 경남 통영으로 가는 관광버스를 탔다.

오랜만에 가족 여행을 하게 되었고 멀리 있는 동생은 응원 문자로 함께 했다. 

주로 부부,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많았고 가이드는 일본인 같은 귀여운 중년 여성이었다.

부모님은 같은 자리에 앉았지만 나는 75세 된 할아버지와 함께 앉았다. 

아내와 자식들이 있지만 주로 혼자 여행을 다니신다고 한다.

우리 둘은 공통적으로 차 안에서 서로 가져온 책을 읽었는데, 

놀랍게도 할아버지는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었다. 

과연 저 책을 읽은 사람이 내 주변에 몇 명이나 있을까..?

할아버지의 머리는 자신의 나이를 증명하는 듯 멈추지 않고 짧게 좌우로 흔들렸다.

통영까지는 막히지 않았으나 통영 시내부터 좁은 차도로 인하여 막혔다.


1박 2일 여행이기에 일정은 빠르게 실행되었다. 

여행지에 도착하자마자 달아공원을 들러 배를 타고 연대도에 들어갔다.

지난 월요일에 삼천포 앞바다를 보았지만 실로 제대로 된 바다 풍경들을 여기서 보았다. 

바다 위에 멋드러지게 만들어 놓은 "출렁다리" 를 부모님과 함께 건넜고, 

연대도 주변 섬들도 각각 자신들의 위치를 지키며 바다에 박혀있었다. 

이 작은 섬에 절과 성당은 없지만 교회는 있었다.    

저녁이 되자 숙소에 들고온 짐들을 놓고 동피랑 마을을 둘러보았다.

낮에 오면 더 좋았겠지만 밤에 와도 나름 운치 있는 야경들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근처에서 갈치조림을 저녁식사로 먹었다.


다음 날 아침부터 삼덕항에서 욕지도로 가는 배를 탔다. 

아침 6시 45분에 배가 출항했고 나는 갑판 위에 올라 바다를 보았다. 

이름 모를 섬들이 가까워지고 다시 멀어졌다. 

해가 떠올라 바다를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나도 모르게 어떤 경이로움을 느끼며 계속 바다를 바라보았다. 

둥그런 달은 지지 않고 계속 하늘에 떠 있었다. 

50분 정도 되자 욕지도 선착장에 도착했고 아침 식사를 했다. 

이후 열심히 걸으며 바다와 섬의 풍경들을 보았다. 

지대의 높고 낮음이 분명한 섬이었고 날씨는 여름이었다. 

땀은 비오듯 쏟아졌지만 자연이 가진 생명력과 아름다움이 나를 즐겁게 했다. 

과연 내 눈 앞에 작은 돌멩이에도 저 드넓은 바다에도 

Schelling이 말한대로 "정신"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저 돌멩이와도 저 바다와도 동일한 "하나"이다. 


오전 11시 쯤 욕지도에서 통영으로 가는 배를 탔고, 

마지막 관광지인 해저터널을 지나 온 후에 

통영 여객선 터미널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이후 건어물 매장에서 관광객들은 필요한 식품들을 구입하였고, 

나는 굴 양식장이 있는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부모님과 함께 서울역에서 내려 전철을 타고 신도림까지 이동했고

버스를 타고 집 근처에서 내려 자주 가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어 기분이 좋았다. 

집에 도착하고 씻은 후 나는 빨리 잠들었다.


월요일은 한글날이자 긴 연휴의 마지막 날이었다. 

석원이 형을 만나러 남부터미널에서 양지로 가는 버스를 탔다.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도착했고 몇 분 뒤에 작은 차를 몰고 온 형을 보았다. 

4년 9개월만에 만났고 예전과 달리 젊고 생기 있는 느낌이 있었다. 

형은 내게 신대원 캠퍼스를 소개했고 머물고 있는 기숙사 방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오랜만에 나누는 대화에는 그동안의 근황들과 공부하는 것들에 대한 나눔이 있었다. 

학부에서 만나 나는 신대원으로 형은 철학을 대학원에서 공부했고, 

지금은 반대로 형이 신대원으로 내가 철학을 대학원에서 공부 중이다. 

우리는 근처에서 저녁식사를 했고 차를 마셨다.    

형을 통해 세환, 지훈과 짧게 전화 통화를 했다. 

나는 밤 9시 35분에 남부 터미널 행 버스를 탔다. 

헤어지기 전 우리는 서로를 안았고 버스 창문을 사이에 두고 손을 흔들었다. 

이제 또 언제, 어디서 볼 것인가..?

오는 버스와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성민이를 생각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다시 독일로 돌아갈 날이 다가온다. 

나는 조용히 떠날 것이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내가 떠났는 지도 모를 수 있다. 

5년에 가까운 부재의 시간 동안 달라진 사람들의 마음과 언행들을 충분히 보고 느낄 수 있었고, 

도발적이고 그럴 듯한 말들 뒤에 숨겨진 두려움과 어떤 거부와 거절도 확인할 수 있었다. 

"신선도"가 떨어진 관계들은 자연스럽게 종결에 이를 것이고, 

나는 그것들에 어떠한 아쉬움과 후회도 없을 것이다. 

조급함 없이 나는 원래 기다릴 것들을 묵묵히 기다린다. 

비록 그 기다림이 이번 생에 끝나지 않을지라도

나는 그것이 나의 "운명"이라 생각할 것이다. 


지금 나의 몸과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채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 앞에서 열심히 웃고 있다. 

그들은 결국 잃었고 나는 아직 잃지 않았다.    

나는 부끄러울 정도로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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