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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이 언제일지 서로 모른다

EAST-TIGER 2017. 10. 20. 06:11

만나고자 했던 사람들을 다 만나지 못했고, 

만났으나 마음에 들지 않거나 아직 서로의 삶을 나눌 수 없어, 

언제일지 모르나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행히도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만났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여전히 내 사람들이었고 변함없이 자신들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금요일에는 오랜만에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책을 읽었고, 

저녁에는 고척 도서관으로 가서 빌린 책들을 반납하고 새로운 책들을 빌렸다. 

저녁 식사 후 잠이 들었고 자정 전후로 깨어 할 일들을 했다. 

나는 새벽 5시쯤 에 잠들었고 아침 7시 30분쯤 일어났다.  

토요일 아침은 분주했다. 논산에서 종인, 은실이 결혼식을 하기 때문에 버스를 예매하려 했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영등포역에서 기차로 논산까지 갈 수 있는 표를 검색했고, 

가고 싶은 시간 대의 기차들은 매진되었지만 

이후 시간 대들은 있는 것들을 보고 영등포로 이동했다.  

영등포역에 도착하여 무인발급기에서 검색하는 도중, 

누군가 예매를 취소했는지 가고 싶은 시간 대의 표가 남아서 발권했다.

또한 논산역에서 영등포역으로 돌아오는 오후 4시 5분 표를 발권했다. 

무궁화 열차로 오전 9시 3분에 논산으로 출발했다. 

중년 여자와 함께 좌석에 앉았다. 

가는 동안 나는 책을 읽었다. 

오랜만에 탄 무궁화 열차는 여전한 느낌이었다.

어릴 때 전북 남원에 있는 외할아버지 집으로 갈 때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열차는 여러 역에 정차를 하였고 논산역에 오전 11시 40분쯤 도착했다. 

2004년 12월에 논산 훈련소에 입대를 했으니 

거의 13년만에 논산역에 왔고 도로가 정비된 것 외에는 논산만의 풍경들이 여전했다. 

하지만 여러 아파트들이 지어졌거나 지어지고 있었다. 

여기도 서서히 개발되고 있다.  

나는 걸어서 정오쯤 예식장에 도착했다. 

 

예식장 앞에는 카센터들이 예식장 주변에는 논들이 있었다. 

작은 성처럼 생긴 예식장은 그런 배경에 있어서 충분히 이질적이었다.

축의금을 하고 독일에서 오신 목사님과 사모님께 인사를 드렸다. 

은실 그리고 종인이 형에게 인사를 했고 뒤이어 슬기, Andreas, 동준 송 집사님을 만났다. 

다들 아직 내가 한국에 남아 있음에 놀라워 했고 한편으로는 오랜만에 만나 반가워 했다.

결혼식은 오후 12시 30분에 시작되었고 사회자가 없이 주례자가 겸하여 진행되었다. 

종인이 형은 유난히 기뻐한 듯 했고 은실이도 침착했다. 

특별한 내용 없는 주례사가 끝나자 은실의 친구가 축가를 불렀고,

연이어 송 집사님의 부군인 하 집사님이 축가를 불렀다.

말로만 듣던 하 집사님을 보니 과연 멋진 목소리와 쇼맨십을 가지고 있었다. 

 

예식이 끝나자 순서에 따라 단체 사진을 찍었고 식사를 하러 1층으로 내려갔다.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고 맛도 좋았다. 

그러나 많이 먹기 보다는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더 많이 했다. 

먼저 송 집사 부부와 대화를 나눴고, 

그 다음은 호림이 가족들과 대화를 나눴다. 

호림이는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M.Div에 진학하는 것을 결정했다. 

이미 예전부터 내게 그것에 대한 관심을 표했고,

이번 만남에서도 그가 물어보는 것들에 대해 나는 아는 만큼 알려주었다. 

딸 사랑이는 여전히 아름답고 귀여웠다. 

이후 동준, 세령, 종환, 민정, 진민이와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눴다. 

동준이는 독일에서 완전 귀국을 했고, 

먼저 귀국한 세령이는 가수가 되기 위해 오디션을 볼 예정이다. 

종환, 민정은 신혼의 즐거움을 누리는 듯 했다. 

과할정도로 결혼식 장면들을 촬영했던 진민이는 취업을 잘 한 듯 하다. 

중간에 자리를 이동하여 곧 아기를 볼 시오를 만나 대화했고, 

모세, 지연이와 대화를 나눴다. 

어느 정도 시간이 되자 종인이 형과 은실이가 내려와 하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고, 

모여 있는 자리에 함께 앉아 식사를 했다. 

오후 3시 30분쯤 예식장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동준과 함께 논산역까지 걸어서 이동했고,

내가 영등포행 기차를 탈 때까지 대화를 나눴다. 

저녁 6시 40분쯤 도착했다. 

 

주일 예배에 늦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났고 버스도 느렸다. 

설교가 막 시작했을 때쯤 도착했고 뒤이어 김 집사님도 오셨다. 

예배 후 오랜만에 만난 김 집사님과 대화를 나눴지만 예전같지 않았다. 

이미 다른 교회를 출석하고 있었고 교회 근처에 사는 친구와 함께 제주도에서 막 돌아온 후였다.

어린이집 원장이 되었고 그 때문인지 약간 어설픈 무게감이 느껴져 조금 기분이 이상했다. 

강 집사님, 김 집사님, 목사님, 사모님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고 내가 계산을 했다. 

식사 후 강 집사님, 김 집사님과 함께 교회를 나섰다. 

조금 걷다가 김 집사님은 파리바게뜨에서 헤어졌고, 

강 집사님과 버스 정류장 근처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했다. 

약간 두서없는 대화였고 1시간도 안되어 일어섰다. 

김 집사님의 전화가 강 집사님을 압박했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했고 강 집사님은 내가 버스를 탈 때까지 기다려줬다.

강 집사님은 변한 것이 별로 없어 좋았다. 

 

김포 공항에 도착하여 제주도 행 발권을 했다. 

보안 검색대에서 필기구 주머니에 있던 커터칼이 걸려서 제출했다. 

오랜만에 제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렸고 Youtube를 통해 음악을 들었다. 

기분이 좋아졌고 마음이 평온해졌다. 

원래는 창가에 앉아서 가야했지만, 

내 옆에 앉아야 할 중년 부부 중 남자가 창가에 앉고 싶다고 해서 자리를 양보했다.

나의 불필요한 말 때문에 깔끔하지 않은 양보였다.  

가는 동안 책을 읽었고 비행기가 제주 근처에 이르렀을 때 흐리고 비가 왔다. 

약간 착륙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무사히 도착했다. 

승현이 형과 통화 후에 600번 공항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비가 왔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승현이 형은 서귀포에 있는 동홍동 근처에 살았고,

나는 제주 월드컵 경기장에 내려 근처 이마트에 들어가 기다렸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마치 태풍이 오는 듯 했다. 

 

우리는 저녁 7시가 넘어서 만났다. 

승현이 형은 교회 차인 카니발에 형수와 두 자녀를 태우고 왔다. 

딸 이름은 은비 그리고 이제 태어난 지 40일 된 아들 이름은 은율이었다. 

근처에서 초밥과 국을 먹으며 저녁 식사를 했다. 

식당에서는 김광석의 노래들이 계속 흘러 나왔고 밖에는 비가 왔다. 

형에게 두 아이가 있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했다. 

식사 후 마트에 들려서 우유와 은비가 먹을 아이스크림을 샀고,

형의 사택인 아파트로 가서 옷을 갈아 입고 집을 둘러 보았다. 

방이 두개였고 거실과 주방이 있다. 

거의 삼은이가 사는 사택과 비슷했다. 

비바람이 계속 되었고 승현이 형은 새벽 예배 설교를 준비했다. 

아이들은 형수와 함께 놀았고 나는 형의 책장에 있는 파스칼의 <팡세>를 읽었다. 

밤 12시가 넘자 형이 거실에 있는 소파에 누워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나는 일본에서 유학 중인 미영과 통화를 했다. 

그 통화는 승현이 형이 깨어 새벽 예배를 가고 나서까지 계속되었다. 

승현이 형이 예배를 마치고 돌아왔고 우리는 각자의 방에서 잠이 들었다. 

 

일어나보니 오전 11시가 다 되었다. 

함께 커피에 빵을 먹으며 아침 식사를 했고 대화를 나눴다. 

형수는 40일된 아이를 계속 돌봤다. 

오후 2시가 다 되어서 점심을 먹으러 서귀포 앞바다 근처로 이동했고, 

식당을 찾아 한치 물회를 시켜 먹었다. 

거친 바람으로 인하여 바다의 파도는 높았고 날씨는 흐리고 간간히 비가 내렸다. 

식사 후 차를 마시며 또 대화를 나눴다. 

이후 집 근처 시장에 들러 집에 있는 형수와 함께 먹을 고기를 두 근 정도 구입했다. 

차에 타서 주차장을 나오며 주차비를 계산하려는데, 

500원이라고 말하는 프론트 직원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직원은 현찰이 없냐고 물었고 형은 카드로 해달라고 말했다. 

나는 얼른 지갑에서 천원을 꺼내어 형에게 주었다. 

나는 형이 미친 줄 알고 그 연유를 물었다. 

"카드로 다 되는 줄 알았어.."  

이 양반.. 여전하다. 

 

집에 돌아와 함께 고기를 굽고 온 가족이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 후 형은 설거지를 했고 나는 그 형 주변을 돌아다녔다.

이후 소파에 앉아 대화를 나눴고 서로 피곤해서 일찍 잠들었다. 

다음날 일어나 오전 9시쯤 집을 나섰고 형이 사역하는 교회에 들렀다. 

예배당에서 기도를 하고 교회를 둘러 보았다. 

교회의 모든 문이 열려 있었으나,

이 땅에 "갑"으로 오신 담임 목사님실만 문이 잠겨 있었다. 

나도 모르게 주먹으로 철문을 때렸다.

형과 오전 10시쯤 제주 김만복 서귀포점으로 이동하여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한 음식들을 구입했다. 

바람은 여전히 거세게 불었으나 날씨는 맑았다. 

줄을 서서 구입해서 바다 근처 간이 테이블에 앉아 포장해 온 음식들을 먹었다.

바람이 거세어 흔들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흔들렸다. 

우리는 계속 우리가 먹는 음식들의 포장을 붙잡아야 했다. 

기억에 남을 만한 식사였다. 

식사 후 바다로 가까이 다가가 함께 사진을 찍었고,

나는 손으로 바닷물을 만져 보았고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바닷물 속에 있는 돌 네개를 꺼내어 

하나는 승현이 형에게 주고 세개는 내가 챙겼다. 

바다를 보며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야, 김성민 이새끼야!"

 

승현이 형은 근처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었고 

오전 11시 10분에 공항버스가 오자 우리는 헤어졌다. 

이제 또 언제 볼 것인가..? 

공항버스는 승현이 형을 뒤로 두고 열심히 달렸다. 

잠이 들어 공항에 바로 내리지 못하고 길을 건너 다시 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발권을 하고 공항 화장실에 갔고 그 곳에서 이번 여정의 의미를 발견했다. 

나는 잘 쉬었고 잘 먹었으며 오랜만에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오후 1시 5분에 김포로 가는 비행기를 탔고 오후 2시 15분쯤 김포에 도착했다. 

햇살이 강렬했고 활주로는 온통 황금빛이었다. 

 

집으로 가는 전철에서 어머니가 신도림으로 나를 불렀다.

신도림에 도착하여 어머니를 만났으나 함께 식사를 할 수 없었다. 

또 식사를 하기에는 아까 승현이 형과 먹은 음식들이 위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남 교수님과 저녁 식사 약속이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집 근처에서 내렸는데 어머니가 어떤 집사님을 만났다. 

대화를 서로 나누면서 어머니가 가방에서 껌을 꺼내어 집사님에게 건넸고,

집사님은 그것을 받아 둘은 함께 껌을 씹었다. 

나는 그 모습이 왠지 슬프게 느껴졌다. 

어머니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것은 나와 비교할 수 없는 어떤 위대함이었다.  

   

동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 예정대로 오후 6시에 남 교수님과 수정 누나를 만났다. 

장충동은 족발로 유명한데 교수님의 이모가 오래 전부터 족발집을 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방문하여 우리는 먹고 마셨다.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은 수정 누나는 고기를 먹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 남 교수님은 불쾌감을 가졌고 만남 분위기는 이전보다 좋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왠지 취하고 싶어서 남 교수님과 함께 여러 병을 비웠다. 

남 교수님은 불필요한 말들을 남발하여 수정 누나를 더욱 부담스럽게 했고, 

나 역시 그 말들을 어느 정도 순화시켜야 했다. 

또한 나와 수정 누나도 서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제를 들어 대화를 했다. 

그 주제에 남 교수님도 합세하여 더욱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밤 11시가 되어 우리는 식당은 나섰고 누나가 먼저 집으로 갔다. 

우리는 근처 호프집에서 한잔 더 하고 헤어졌다. 

남 교수님은 내게 이모로부터 받은 포장된 족발 봉투를 내게 건넸다. 

나는 그 봉투를 받았으나 도저히 들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동대입구역 구파밭 방면 어느 의자에 올려 놓았다. 

나는 용케 을지로 3가역에서 신도림으로 가는 2호선으로 갈아탔으나,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구토 증세를 느껴 내려서 화장실에 가서 구토를 했다. 

정신은 멀쩡했기에 지독한 부끄러움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화장실에서 입과 손을 닦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신도림에서 내렸다. 

버스 정류장에서 600번 버스를 탔고 뒷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간신히 집으로 도착하여 남 교수님과 수정 누나에게 안부 문자를 보냈다. 

그 다음 컨디션 한 병을 마시고 씻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서 다시 몇 번 구토를 했고 정오쯤에 정신이 들었다. 

남 교수님께 문자를 보냈는데 술몸살이 났다고 한다. 

몇 건의 문자가 오고 간 후 대화는 멈췄다. 

남 교수님은 이제 늙었고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이 쇠약해졌다. 

이제 더이상 남 교수님과 어제와 같은 일들은 없을 것이다. 

또한 어느 정도의 학문적 대화도 어렵게 되었다.

원망스러운 얼굴이 떠올랐고 시간의 정직함과 성실함에 탄식을 했다. 

 

그 날 저녁에 효성이를 우리 집 근처에서 만나 저녁 식사를 했고,

만나기 전까지 있었던 일들과 그 느낌들을 말해 주었다. 

식사 후 재즈 음악들이 나오는 카페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개봉역까지 걸어가는 동안 나는 울음이 나올정도로 웃으며 이야기를 했다.     

승현이 형과의 시간들이 너무 강렬하고 유쾌했던 것일까..?

나는 효성이와 헤어진 후에도 웃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목요일에는 예정대로 오후 3시에 합정역에서 현준이를 만났다.

거래처가 그 곳에 있어서 오랜만에 서울에 왔다고 한다. 

함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고 분식집에 가서 식사를 했다. 

짧게 만나고 헤어졌고 다시 볼 것을 알기에 헤어짐은 간결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러서 8만원 정도 책들을 구입했다. 

꽤 많은 양의 책들이었지만 배낭은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저녁 8시에 선릉역 1번 출구에서 진민이를 만났다. 

그리고 송 집사님을 만났고 잠시 문구점에 들러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구입했다. 

셋이서 저녁 식사를 했고 차를 마셨다. 

지난번 논산에서 짧게 만나고 헤어졌던 터라 우리의 대화는 밤 11시 30분까지 이어졌다. 

송 집사님 사무실에서 대화를 하다가 진민와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왔다. 

진민이는 낙성대역 근처에 산다고 해서 함께 전철을 탔다. 

짧은 대화를 했고 내릴 역에서 우리는 다음에 만날 것을 기약했다. 

그 날이 언제일지 서로 모른다. 

 

집에 와서 책을 네 권 더 주문했다. 

그리고 일기를 쓰니 아침 6시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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