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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내 배는 불어간다

EAST-TIGER 2017. 10. 13. 04:09

한국의 가을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겹겹이 옷을 입어야 하고 그게 번거로우면 외투를 입는다. 

길을 걸을 때나 버스나 전철을 탈 때 사람들의 표정과 움직임을 본다. 

나는 이동 할 때는 책을 읽거나 팟캐스트를 듣는다. 

가끔은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점점 발전시킨다. 

언제 내가 하는 생각들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생각들은 시간에 흐름 속에서 더욱 날카롭고 강력해질 것이고, 

어떤 생각들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나의 삶을 어지럽힐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생각들은 오직 "나"로부터 만들어지고 "나"로 인하여 종결되어야 한다. 


화요일에 한가로이 낮잠을 자고 있을 때, 

은해와 경원이 형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은해는 목요일이나 금요일 쯤 보기를 원했고 경원이 형은 오늘 보길 원했다. 

형수님이 아기와 함께 친정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기에 

며칠동안 홀로 집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고민할 것 없이 저녁 식사 약속을 잡았고 

오후 6시쯤 사역하는 교회 교역자 사무실에서 만났다.

두번째 만남이었고 그동안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 형과 친분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안부도 전할 좋은 기회였다.  

형의 차를 타고 노량진 근처로 이동했다. 


정확히 어디라고 말할 수 없지만 노량진 어느 골목이었다. 

2차선 도로 양 옆으로 음식점과 카페, 주점이 늘어서 있다. 

우리는 실외로 개방된 어느 고깃집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했다. 

준영이 형, 석원이 형, 삼은이 안부를 전했고 짧게 만남의 느낌들을 말했다. 

이전 만남에서는 말하지 못했던 개인적인 생각들을 말했고, 

요새 거의 모든 만남에서 빠지지 않고 다루어지는 "결혼"에 대해서도 말했다. 

대화의 주제들은 많지 않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깊이가 있었다. 

경원이 형은 내 말을 잘 들어주었고 자신의 생각들도 말했다. 

우리는 장소를 옮겨 대화를 계속했다. 

배스킨라빈스 31을 귀국 후 처음으로 갔다. 


모든 대화가 끝나자 형은 나를 집까지 태워준다고 했다. 

나는 몇 번을 사양했지만 형의 의지는 변함없었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기약없는 말들이 서로의 입에서 나올까 조심스러웠다. 

대신 나는 형의 왼손에 내 왼손을 올려 놓았다. 

집 근처에 도착한 후 우리는 다시 볼 것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가을 바람이 세게 불고 빗방울이 조금 떨어졌다. 


수요일에는 영등포 시티은행에 들러 국제체크카드를 갱신하고 

해외송금시 유학생 송금 권한을 쓸 수 있도록 신청했다. 

코에서 말이 나오는 듯한 밝은 음색을 가진 여직원이 나를 상대했다. 

왼손에 반지가 없는 것을 보니 아직 미혼인 것 같았다. 

얼굴은 하얗고 길었으며 펌이 된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주임 같은 여자와 부점장 같은 남자가 그녀의 뒤에서 돕는 듯 감시했고 조언했다. 

가끔은 내게 말을 걸었고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오후 4시가 넘어서 내가 부탁한 업무는 어느 정도 끝이 났다. 

나는 앞문이 아닌 옆문으로 나갔다. 


나는 걸어서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있는 교보문고에 도착했다. 

철학 분야에서 읽을만한 책들을 찾아보았다. 

다른 문고들에 비해 좀 더 다양하고 많은 양의 책들이 있었지만, 

흥미로운 책들을 발견할 수 없었다. 

서점에 올때마다 느끼지만 한국에서 출판된 책들은 

읽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제목과 디자인을 잘 뽑는다. 

그러나 읽어보면 그런 겉치레에 비해 내용이 특별한 책들은 많이 발견하지 못했다.

어떤 책도 사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밤에 어머니는 시티은행 통장이 두개에서 하나로 준 것에 대해 내게 물으셨고, 

나는 이전 통장에 출입금 내역 이미 다 기록되고 새로운 통장에 계속 기록되고 있기에, 

이전 통장을 폐기해달라고 직원에게 부탁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그것에 큰 상심을 하셨고 기록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내일 당장 그 통장을 돌려 받으라고 하셨다. 

약간의 소동이 있었고 나는 어머니가 달라지셨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가족을 위한 어쩔 수 없는 "달라짐"이었다. 

아버지와 나는 이것 때문에 잠시 대화를 했다. 

새벽에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아침에 다 되어서 잠이 들었다. 


목요일 아침부터 시끄러운 굉음이 들려 잠에서 깼다. 

커널형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러자 얼마 후 초인종 소리가 들려 다시 일어나 현관문을 열었다. 

중년 남자가 국민은행 체크카드를 배송하러 왔다며 신원확인을 했다. 

목소리는 할아버지가 손자 대하듯 한 느낌이었다. 

다시 잠들려고 했으나 거의 정오가 다 되어서 간단하게 식사를 한 후 집을 나섰다. 


영등포 시티은행에 다시 들렀다. 

어제 만난 여직원에게 크게 세가지 일을 부탁했다. 

이번에도 그녀는 열심히 나를 도왔고 그것에 감사했다. 

통장은 회수할 수 없어 증빙서류로 대신해야 했다. 

모든 업무가 마쳤을 때 시계를 보니 오후 4시가 넘었다. 

그녀는 내게 다른 사람의 명함과 자신의 이메일을 적어 내게 주었다. 

아마 이번 한국 방문 동안에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전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갔다. 


유학가기 전에 만나려고 했으나 

시간이 서로 맞지 않고 부담스러워서 만나지 못했던 인화 누나를 만났다. 

독일에서 오르간을 공부했고 귀국 후 연주자와 대학 강사로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유학가기 전에는 미혼이었으나 

4년 8개월이 지난 지금은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다.

시간의 빠름을 여기서 느낀다.  

인화 누나는 내가 쓰는 글들을 좋아했고 여전히 그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카페에서 1시간 반 정도 대화를 했다. 

KTX 출발시간에 맞춰서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 기다림 속에 만났지만 역시.. 금방 헤어져야 했다. 

고마운 만남이었다. 


집에 와서 저녁 식사를 혼자 하려는 도중 어머니가 오셨다. 

어머니가 고기를 굽고 나는 먹었는데 배가 꽉 찼다. 

어머니가 주는 음식들을 잘 먹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효도"이다.

덕분에 내 배는 불어간다. 

괜찮다.

이것이 "사랑"이다.


성준이 형과 잠시 통화했고, 

효성이와 수정, 춘하 누나, 석원이 형, 남태욱 교수님, 은결과 문자로 대화를 했다.

잠시 저녁 잠을 자고 일어나 독일에 가져갈 책을 주문했다. 

그리고 나서 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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