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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마음의 통함에서 이루어진다

EAST-TIGER 2017. 10. 3. 04:19

삼천포에 다녀왔다. 


주일 아침부터 분주하게 준비해서 식사를 하고 집을 나서 

남부 터미널에서 정확히 정오에 떠나는 고속버스를 탈 때까지, 

나는 꽤나 급한 마음으로 뛰고 빨리 걸었다. 

내가 차에 탔을 때가 오전 11시 55분 쯤 되었다. 

버스는 정오에 떠났고 가다 서는 것이 반복되는 귀성길이 될 줄 알았지만 

버스 전용 차선은 막힘 없이 바람과 비를 뚫고 목적지로 달렸다. 

내 옆에는 거친 피부를 감추려는 듯 짙게 화장한 어린 경상도 여자가 탔고, 

가끔 가져온 젤리를 먹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졸고 깨는 것을 반복했다. 

나는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의 <인간실격>을 읽었다. 

오스트리아 미술가 Egon Schiele의 그림이 표지에 있었다. 

아아.. 다자이와 Egon은 둘 다 단명(短命)했구나..

우리는 몇 마디 대화를 나눴고 내릴 때 눈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버스는 예상 시간대로 오후 4시 쯤 도착했다. 


삼천포는 비가 오고 있었다. 

주변에는 이마트와 홈플러스가 보였지만 

삼천포 터미널은 아직 그것들에 비해 아주 "옛 것" 이었다. 

나는 화장실을 다녀오고 공용 Wifi를 통해 삼은이와 연락을 취했다. 

30분 뒤에 양복을 입고 나를 보며 손짓하는 삼은이를 보았다. 

거의 5년만이었다. 

나는 그의 차를 탔고 그를 어루만지며 반가움을 표했다. 

우리는 어느 카페에 앉아 1시간 반 정도 대화를 했다. 

지난 일들과 현재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김해 장유에서 사역하는 준영이 형을 기다렸다. 

비는 계속 내렸고 굵었다. 

우리는 오후 6시 30분 쯤 카페에서 나왔다. 


저녁 7시 쯤 삼은이와 함께 교회 앞에 도착해서 준영이 형을 기다렸다. 

30분 정도 기다리니 준영이 형이 개인 차를 몰고 도착했다. 

차분한 상태에서 우리는 만났다. 

예전과 달리 제법 목사님 풍채가 보였다. 

우리는 근처 해물집에서 해물탕을 먹었다. 

살아있는 낙지들이 뜨거운 대접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을 

나와 삼은이가 집게로 잡아 도로 대접 중앙으로 옮기기를 반복했다.

우리 남자 셋은 식당 주인과 종업원들이 보기에 아주 착한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 후 우리는 삼은이 사택으로 이동했고 방 두개 달린 아파트 집에 도착했다. 

이미 옆 방은 삼은이 자식들과 아내가 잠들어 있었고, 

다른 한 방에 우리 셋은 빗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셨다. 


참 묘한 세 남자의 인연이다. 

나와 준영이 형은 1학년 신학과 모꼬지에서 만났고, 

어느 날 내가 기숙사에 사는 준영이 형을 찾아갔을 때, 

형은 그때까지 내 동기인지도 몰랐던 삼은이를 내게 소개시켜줬다.  

오늘에서야 말하지만 삼은이는 자기 눈에 내가 별로였다고 한다. 

나도 그때 하얀 피부에 하얀 야구모자를 쓴 그가 그렇게 특별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준영이 형보다 더 친하고, 

내가 독일 유학 가기 전에 그의 자취방에서 석별의 정을 나눴으며, 

동기들 중에 지방에서 사역하는 동기들이 있지만 

내가 직접 찾아가서 만나고 싶은 동기들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으레 그랬듯이 준영이 형은 열심히 자신의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 이야기를 받고 내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준영이 형도 나 못지 않게 많은 생각들을 말로 풀어내는 사람이라, 

대화가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둘 중의 한 명이 넉넉한 마음으로 발언권을 양보해야 한다. 

그는 글보다 말을 더 잘하는 사람이라.. 가끔 그의 말 습관에는 어떤 "열등감" 도 느껴진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준영이 형 말에 맞장구 치며 들었고 삼은이도 가끔 자기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새벽 1시까지 대화를 나눴다.

우리는 간단히 씻고 새벽 예배를 맡은 삼은이를 위해 거실에 예정되었던 내 잠자리를 양보했다.

준영이 형과 삼은이는 거실에 누워 더 대화를 했고  

나는 삼은이 방에 혼자 그의 책장에 있는 책들을 보다가,

쿠션에 머리를 맡기고 작은 덮는 이불 하나로 잠을 청했다.

창문 밖의 굵게 내리는 빗소리를 듣는 것이.. 꽤 운치가 있었다. 


새벽에 삼은이는 내가 자고 있는 방에 들어와 자신의 양복을 꺼내어 교회로 갈 준비를 했고, 

나는 그에게 위로의 말을 하며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오전 9시가 다 되었다. 

방 문을 여니 밖에 삼은이의 자식들이 먼저 깨어 놀고 있었고, 

준영이 형과 삼은이는 피곤한 듯 아랑곳 하지 않고 자고 있다.

건넛방에 제수씨는 등을 돌린 채 아직 더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양손을 흔들며 익살스럽게 인사했고 

화장실로 가서 머리를 감고 세수를 했다. 

그리고 다시 방에 들어와 책을 읽었다. 


몇 분 후 나를 제외한 세 어른들이 일어난 듯 한 소리를 들었고, 

그 중에 누군가는 화장실에 들어가는 소리도 들었다.     

삼은이가 방으로 들어오자 그제서야 방 밖을 나가서 제수씨에게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삼은이 보다 3살 연상인 제수씨는 내가 삼은이와 친해진 이후로 말로만 들었던 여자였다. 

20대 중반에 삼은이의 사역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급하게 결혼하고 나서,

벌서 10살 은휼이 7살 지휼이 5살 민휼이를 낳았다. 

그녀의 얼굴에 세월의 흔적과 세 아이의 엄마, 한 목사의 사모로서의 흔적들도 있다. 

그녀는 젊었을 적에 글을 쓰기 원했고 나처럼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을 읽었단다. 

그러나 그녀는 가족들 위해 간호원 일을 했었고 여러 일들을 했어야 했다. 

그래서 그녀의 꿈들은 책장 속에 "화석" 처럼 남아 있다. 

다시 글을 쓰라고 권했지만 진심인 듯 아닌 듯 세월을 탓하며 웃어 넘긴다. 

벌써 결혼한 지 11년이 되어간다.


준영이 형과 삼은이는 아이들과 재밌게 놀았고, 

제수씨는 아침 식사 준비를 했다. 

나는 삼은이 방에서 책을 보았다. 

갑자기 은휼이와 지휼이가 내 곁으로 왔다. 

자세히 보니 은휼이는 소녀 티가 나고 

지휼이는 삼은이를 무척 닮았다. 

은휼이는 장래희망이 간호사란다. 

엄마가 간호원으로 일하는 것을 보고 정했다고 한다. 

지휼이는 장래희망이 엄마였다. 

그러나 아플까봐 아기는 낳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은휼이는 그런 지휼이를 보며 소리쳤다. 

"엄마가 왜 아이 낳기를 싫어해?!" 

박사 과정을 마치면 이 애들이 초등학생 그리고 중학생이겠구나..


그러다가 PS4 Pro를 구입한 삼은이와 준영이 형, 나는, 

짧게 PES2018 데모버전을 함께 했다.

정말 오래간만에 한 것 같은데.. FIFA만 하던 나로서는 키가 달라 불편했다. 

갑자기 PES를 했던 효성이가 생각났다. 

아침 식사는 백반에 반찬들로 간소했지만 먹을수록 지역색이 느껴지는 맛이 있었다. 

짜지만 분명한 맛 그리고 어떤 따뜻함이 음식들에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남자 셋은 옷을 입고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이제 또 언제 볼 지 모르는 인사를 먼저 제수씨와 아이들에게 했다. 

아파트 복도는 지난 밤 비로 인하여 물이 고여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준영이 형은 먼저 차를 몰고 고향인 인천으로 향했다. 

나와 삼은이는 배웅을 하고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서 우리 둘은 차를 타고 삼천포 앞바다를 향했다. 

내가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더니 삼은이가 시간을 내어 나를 데려다 준 것이다. 

삼천포는 이제서야 개발의 손길이 닿은 듯 했다. 

오래된 초등학교들은 그 전통과 명성에 비해 학년 당 한 학급만 있을 정도로 초라해졌다. 

교회들은 저마다 성전 건축을 하며 새 건물을 지었거나 짓고 있고,

삼은이도 그것 때문에 고민이 있다. 

청년들은 대학에 들어가면 지역을 떠나 새 지역으로 거처를 옮겼고, 

교회에서는 그런 청년들에게 교통비를 주면서까지 주일 예배에 참석하기를 원한다.  

바다 근처 언덕에는 잘 꾸며진 집들이 있고 아파트들도 많아 단지가 되었다. 

자갈로 된 해안가를 보며 나와 삼은이는 대화하며 짧게 걸었다. 

지금은 예정보다 안정된 생활을 하며 목회를 하고 있지만 언제 어려움이 닥칠지 모른다. 

올 여름에 삼은이 가족들은 괌으로 첫 해외 여행을 갔다왔다.    

돈이 빠듯했지만 자식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단다. 

그런 그를 위로하고 동기이자 친구로서 용기를 주고 싶어 

이것 저것 말했고 조건이 붙은 약속을 했다. 


나는 5-6년만에 바다를 보았고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싶어 바다를 향해 자가를 밟으며 달렸다. 

손에 미지근한 감촉을 주는 바닷물 그리고 가볍게 찰랑거림이 마치 어떤 "그리움" 을 느끼게 했다. 

나와 삼은이는 바다 앞에서 사진을 찍었고 나 역시 몇 장의 사진들을 핸드폰에 담았다.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삼은이는 나를 우리가 만났던 삼천포 터미널로 데려다 주었다. 

우리는 차 안에서 손을 맞잡고 헤어졌다. 

또 언제 볼 것인가..? 

멀어지는 그의 차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진주에 사는 은진이는 나를 만날 듯 말하고 정말 만날 줄 알았는데.. 

갑작스런 그녀의 개인 사정으로 볼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다. 

둘 중에 하나가 볼 수 없으면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만큼 인간과 인간의 만남은 단지 말과 글자를 통해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서로 마음의 통함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오후에 예정된 차표를 환불하고 오후 12시 30분 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차 안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다 읽었고 철학 관련 책을 읽었다. 

추석 분위기가 제법 나는 서울 풍경이다.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에 있던 남은 피자 조각들을 먹었고, 

사람들에게 추석 인사를 문자로 보냈다. 

저녁에는 일터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사온 피자 몇 조각 더 먹었다. 

아버지도 일터에서 돌아와 우리 셋은 오랜만에 이른 시간 함께 집에 있었다. 

나는 또 어떤 막연한 "그리움" 속에 저녁을 보냈고 밤을 보낸다. 

음악을 듣다가 잠들었고 다시 깨어 일기를 썼다. 


5년만에 한국에서 추석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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