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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사람들] 그들 모두가 죽어야 했다

EAST-TIGER 2017. 12. 28. 11:12


성탄절 때 외장하드에 있는 영화들을 몇 편 보려고 했으나,

다른 일들로 인하여 볼 수 없었다. 

곧바로 연말이고 연초라 몇 편을 볼 생각었고 오늘 한 편을 보았다.  


<돈의 맛> 이후 오랜만에 임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았다.

생각해보니 그가 감독한 영화들과 그가 참여한 영화들을 꽤 많이 보았고, 

특유의 풍자와 미장센으로 보는 재미가 있다. 

오늘 본 이 영화도 그의 역량이 가득 담겼고,

쟁쟁한 출연진들의 열연도 대단했다.    



"밑에 분들 힘든 거 알아요. 아는데 어쩌겠어요? 그 분 심중을 헤아려 드려야지."


영화는 1979년에 있었던 "10.26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이미 매체나 학교, 강연 등 여러 곳에서 다루어졌고 해석되었기에 소재가 새롭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소재를 "블랙 코미디"(Black Comedy)로 연출하는 것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시도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을 정극에서 다루기도 쉽지 않았는데, 

어느 PD나 영화 감독이 그것을 코미디로 다룰 수 있었을까? 

게다가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에도 과거 독재 정권들의 일원들과 흔적들이 뚜렷하게 남아 있고, 

그 시대의 "유물"들이 2017년 말이 되어서야 조금씩 제거되고 있는 실정이기에, 

이 영화가 2005년도에 개봉될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개봉 전 이 영화는 매체에서 논란과 함께 이슈화되었지만, 

개봉 후 흥행은 약 관객 100만 정도로 평범헀다.       

그 사실이 이 영화를 본 후 느껴진 진한 안타까움이다. 

 


"야 차 실장, 만 명? 너 하나 죽으면 돼!"


백윤식, 김응수, 한석규, 송재호, 조상건, 정원중, 권병길, 윤여정 등 중견, 원로급 배우들이 주축으로, 

가수 김윤아, 임상수 감독의 이전 작 <눈물>에 출연했던 조은지가 출연했다. 

봉태규와 정우, 홍록기가 짧게 출연했고 김상호, 김병옥, 정인기, 권태원 등 명품 조연들도 보인다. 

임상수 감독과 최동훈 감독도 "대사있는" 단역으로 출연했다.    


전체적인 영화 분위기는 송능한 감독의 <넘버3>와 비슷하다. 

두 영화의 장르가 블랙 코미디이기도 하고 두 영화의 주연인 한석규 또한 비슷한 연기를 한다. 

그러나 임상수 감독의 롱테이크 장면들와 미장센은 확실히 세련되고 특별했다. 

또한 음악과 미술, 소품들도 이전 작들에서 볼 수 없었던 깊이가 있었다.       

고증 오류를 지적하기도 하는데 각색된 영화이기에 당연하다. 

임상수 감독은 영화를 만들었지 <역사스페셜>을 만든 것이 아니다. 


이 영화는 임상수 감독의 역량이 집약된 수작이자,

현재까지의 감독 경력에 있어서 정점이 된 영화라고 생각한다. 



"야, 이제 세상 좋아질거야, 알어?"


누군가가 죽으면 세상이 달라질 수 있을까? 

절대 권력을 가진 자, 침략자들, 매국노들.. 

자기 목숨과 맞 바꾸어서 그들을 죽였지만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절대 권력자 뒤에는 또다른 예비 권력자들이 있었고, 

침략자들과 매국노들은 너무 많았다. 

결국 세상이 바뀌기 위해서는 그들 모두가 죽어야 했다. 


우리나라가 조선과 일제 강점기 때의 관료, 사교 문화로부터 겨우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문화들의 뿌리는 너무나 강력했다.

어릴 때부터 국가주의식 공동체 예절과 의식을 배웠고,

나이와 학년, 계급, 서열, 출신을 따지며 살았다.   

대통령을 "국가" 그 자체로 보거나 관료들이 서열을 정해 권력다툼을 하는 것도, 

최근까지 특히 지난 10년간 볼 수 있었던 정치권 풍경들이었고, 

재벌 일가들의 추잡한 행태들과 기업이나 조직 내 비열한 행태들도 여전히 흔하다.    

겉으로는 "의회 민주주의"니 "소극적 민주주의"니 하며 국민들을 속였지만,

실제로는 입헌 군주제를 바탕으로 "민본주의"를 위시한 정권들이었다.    

그러나 2017년을 기점으로 국민들은 점차 진짜 "민주주의"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가고 있다.   

이제서야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보폭 큰 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즉 누군가가 죽어서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시민들이 스스로 달라져야 세상이 달라진다. 

이제서야 일제 강점기 때와 군부 독재 때의 ""적폐"들이 청산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실제 있었던 사실을 각색하여 영화로 제작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이 왜곡될 수 있고 그 사실로 인하여 사회적 파장도 생길 수 있다. 

특히 현대사와 관련된 극들은 제작진과 유족들, 관련자들 간의 법적 소송도 일어날 수 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있었던 사실들이 감추어져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용감하고 호기심 많은 영화 감독들과 드라마 PD들은, 

그 사실들을 각색하거나 작품 곳곳에 비유해서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2005년에 개봉에 했지만 안타깝게도 극장에서는 완전판을 상영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박정희 대통령 장남 박지만씨가 소송을 걸어 일부 장면들이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완전판이 따로 발매되었고 어떤 장면들인지도 확인되었지만, 

2005년에 영화에서 이 문구를 본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 장면은 2005년 1월 31일 대한민국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0민사부의 결정에 따라 삭제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약간 시대를 앞섰다. 

만약 지금 개봉했거나 5년이나 10년 뒤에 개봉했다면 어땠을까? 

충분히 500만 이상의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았을 것이다.

이 영화는 지금 보아도 어색한 장면들이나 연출은 없다. 

당연히 한국영화사에 "명작"들 중 하나로 회자되어야 하고,

2005년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작품상을 수여한 것은 

심사위원들의 탁월한 평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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