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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인간의 나약함과 과대 망상 본문
원래는 한국 방문 중 볼 기회가 있었지만 그 기회를 놓쳐서 혼자 보게 되었다.
김훈 작가의 소설 <남한산성>을 원작으로 만들어졌기에,
가끔 듣는 방송에서 김훈 작가의 해설과 평을 들을 수 있었다.
김훈 작가는 역사 소설을 쓰는 것에 탁월함을 가져서 묘사와 표현이 대단하다.
그러나 가끔은 전개가 지루한 면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남한산성>을 책으로 보지 않고 영화로 보고 싶었다.
"어리석은 짓들을 하는구나."
<도가니>의 황동혁 감독은 빠른 전개와 의미있는 각색으로
긴 런닝타임이지만 부담이 느껴지지 않게 영화를 만들었다.
원작이 있는 각본을 영상으로 잘 구현하는 것 같고 소품과 미술도 신경을 잘 쓰는 듯 하다.
음악감독으로 류이치 사카모토가 참여하여 선율이 깊은 음악들을 들을 수 있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모두 인상적이었다.
왕의 의복을 가다듬으며 말없이 표정만으로 연기한 배우 최종렬이나,
사극 연기에 정평이 난 배우 박지일, 송영창, 문창길, 유순웅도 열연했다.
오랜만에 이창동 감독의 <시>에서 본 배우 이다윗을 볼 수 있었다.
이병헌과 김윤석, 박해일은 왜 충무로의 감독들이 그들을 사랑하는 지를 연기로 증명했다.
배우 고수가 맡은 서날쇠 역은 이 영화에서 그 역할이 모호한 캐릭터였다.
"나는 살고자 한다. 그것이 나의 뜻이다."
당연히 소설에서는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 이상의 것을 글로 담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영화는 그 글들을 더보지 않아도 될만큼 핵심적인 장면들을 영상으로 담았다.
어전이지만 왕과 신하들의 대화에서도 보이는 입김과 식량의 부족함으로 인한 수라상의 초라함.
청나라 군대의 위용과 단호함에 비해 점점 전의를 상실하는 조선군의 나약함.
전쟁 중에도 예법과 체면을 지키려는 왕과 신하들과 그것들을 이해할 수 없는 청의 칸과 장군들.
왕과 신하들이 명분의 유무를 위해 상론할 때,
백성들과 군사들은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죽음의 공포로 괴로웠다.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사옵니다."
조선왕조사의 마지막 반정인 "인조반정"은
능양군의 개인적 원한과 서인들의 당리당략적 이유들로 일어났지만,
그 이후가 암담한 시절들이기에 좋아할 수 없는 역사의 순간이다.
게다가 친명사대부들이 자신들의 군주를 "왕"으로 보지 않고
자신들과 같은 명나라의 "신하"로 보았기 때문에,
이를 전후로 당파와 사대부들 간의 논쟁들도 허례허식적이다.
결국 그런 썩은 생각들이 쌓여서 왕조 말에는 왜놈들에게 왕과 나라를 팔아 버렸고,
지금도 그런 자들이 있어 세상을 어지럽게 한다.
임진, 정유 왜란과 달리 병자, 정묘 호란은 의병도 일어나지 않은 전쟁이었다.
백성들이 보기에 왜란 때와 같이 왕이 또 도성을 버리고 파천을 하고,
왜란 때는 적군의 머리를 베면 노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면천법이 있었지만.
호란 때는 그런 것도 없었으니 나라를 위해 싸워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백성들은 나라님이 누구이든 삼시세끼 잘 먹고 세금 덜내고,
제 목숨과 가족 목숨들을 지킬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지금도 허리가 두 동강 난 나라에서는
친미와 반미로,
친중과 반중으로,
친북과 반북으로,
여전히 대립 중이다.
그와중에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는 끊이지 않고,
내세우는 정책들은 단단한 철학이 없으니 줏대가 없다.
무엇보다 일의 시작을 말하며 행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일의 끝과 그 일의 책임을 지는 사람들은 없다.
그러니 국민들은 알 수 없는 불안 속에 살면서 탐욕스럽거나 야박해진다.
추운 겨울이 가고 민들레가 피는 봄이 되는 것은 영원한 자연의 섭리이지만,
인간의 나약함과 과대 망상으로 인한 말과 행돌들은 그 끝을 알 수 없다.
결국 차가운 현실들과 날카로운 시간이 그의 "자리"를 마련해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 얼마나 어리석고 허무한 인간의 모습인가!
그래도 지금 우리 살아 있으니
"희망"이 있다고 말하고 믿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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