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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世紀 Enlightener
부대 도서관에 있던 책이다. 휴일 날 부대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다가 우연히 발견한 고든 맥도널드의 는 군대 내에서 여러 가지 일로 고심하던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긴 파견을 마치고 자대에 돌아왔고 이제는 전역을 앞둔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이 있는가도 중요했고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이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내게 이 책은 내게 상당한 영감을 주었다. 여담이지만 놀라운 사실은 이 책의 주인은 동갑내기 1년 선임(아버지 군번)의 책이었다. 이등병 시절. 주일이면 같이 교회를 나갔고 그 선임병은 성가대로 봉사도 했었다. 2005년 12월. 선임병이 전역할 때 나는 이미 장기간 파견을 나가 있어서 보지를 못해 아쉽다. 벌써 전역한 지 1년이 넘어가는데.. 그 선임병과의 추억이 책을 보는 도중..
그리스도인들이 성서를 하나님의 무오한 계시로 이해하며 보기에는 의문점들이 많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성서를 읽을 때면 갈급함을 느끼고, 갈급함이 해소되지 않으면 신앙은 정체되고 후퇴한다. 그러나 어떤 계기를 통하여 갈급함이 해소되면 신앙은 계속 성장할 수 있고, 성서의 영향력은 더욱 커진다. 결국, 계기에 대한 해석의 유무가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정체내지 후퇴와 성장을 판가름한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계기를 해석하고 올바른 신앙의 성장으로 이끌어 줄 것인가이다. 이번에 읽은은 아마 이런 질문에 어느 정도의 답을 내놓고 있다. 저자는 구약성서의 전반에 걸쳐 이스라엘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구속사역들 중 중요한 쟁점들과 그에 따른 해석들을 정리하였고, 단지 해석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기독교와 그리스도..
을 읽은 후 바로 읽었다. 많은 분량이 아니기 때문에 단숨에 읽었고 내용 역시 어렵지 않았다.에서는 김길 목사님이 대도시 선교사로 부름 받은 과정 가운데 있었던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대해 간증한다. 고단했던 목사님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그를 부르셨고 그로 인해 무엇을 깨달았는지 솔직히 적었다. 내 마음의 동기를 살펴서 내 뜻이라면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내 마음대로 한다. 그 결과 반드시 문제를 일으킨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알아야 한다. 우리는 늘 질문해야 한다.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맞춘 삶을 산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매순간 인간은 삶의 문제들 앞에서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선택은 좋..
개론서를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개론서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어떤 분야의 전체를 소개하는 것에 있고, 소개의 방법과 해석은 저자의 시각에 따라 다르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개론서를 읽는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개론서를 읽는 것은 읽는 독자가 상당한 관련 분야에 지식과 정보가 있어야 한다. 반대로 개론서를 읽으면 일단 어떤 분야의 전체를 소개하는 것이기에, 간략하게나마 살펴볼 수 있고 독자가 특정한 부분에 흥미를 느끼면서 관련 서적을 찾아 더욱 심도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다. 주의할 점은 개론서를 읽으면서 객관적으로 보려는 시도가 있어야 된다는 점이다. 이렇듯 개론서는 양날의 검과 같고, 독자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신학부(과)에 다닐 ..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이고 온전한 신앙생활은 무엇일까? 각 시대별로 많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이 질문에 대한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려, 가장 성서적이라 스스로 믿으며 모범을 보이고 사람들 앞에서 선포했다. 대표적인 예로 청교도 운동은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이 질문에 대한 해답에서 시작되었고 그 영향력은 유럽 전체에 미쳤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위협에 기독교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청교도들은 누구인가? 1568년에 런던에는 재침례파(Anabaptists) 회중들이 많았다. 그들은 스스로 청교도 혹은 흠 없는 주님의 어린양들이라고 불렀다. 청교도란 용어는 이들과 관련해서 처음으로 사용됐다고 보는 것이 중론이다. 청교도들은 엘리자베스 여왕 통치 기간(1558-..
한국 기독교계는 사회와 소통하고 있는가? 이 물음에 냉철한 시각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대답할 목회자는 별로 없다. 신과 인간의 소통이 어렵고 대통령과 국민의 소통이 어렵듯이, 기독교와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소통하기 힘든 상황이다. 내가 보기에 기독교의 언어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삼위일체, 성령, 구원, 복음 등등.. 대부분이 기성세대라면 이해할 수 있는 한자어다. 그런데 왜 어려운 것일까? 간단하게 말하면 재미없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듣는 이들의 삶과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간단한 예로 복음전도를 살펴보자. 나는 현재 기독교의 복음전도는 방법적으로 적극적이고 지나치게 감성적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목회자들은 아직도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과 60-80년대의 한국교회 부흥을 추억하며, 목회 특히 복음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