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강남1970] 누구나 '건달'이 될 수 있다 본문

內 世 上 /Cinemacus

[강남1970] 누구나 '건달'이 될 수 있다

EAST-TIGER 2015. 4. 8. 18:46



오랜만에 영화를 보았다. 

얼마 전에<진중권의 문화다방>에서 유하 감독이 나와, 

신작<강남 1970>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의 말을 들어 보니 소설가 황석영의<강남몽>과 유사한 면이 있는데, 

직접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언제 따뜻한 아랫목에서 자보냐?" 


1970년 서울 강남. 

어릴 때부터 고아로 넝마주이를 하며 살아가는 종대와 용기. 

호적도 없이 무허가 판자촌에서 살고 있던 그들은, 

어느 날 건달 길수로 인해 야당 방해 공작 일을 하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종대와 용기는 건달 세계로 입문하게 된다. 

그리고 서서히 건달 세계에서 '거물'이 되려 하는 그들. 

때마침 정부의 강남 개발계획에 맞추어, 

민 마담의 도움으로 서태곤 의원과 협력한 종대는 부동산업에 뛰어들고, 

용기는 그런 종대를 이용하여 자신의 야심을 실현하고자 한다.



"자네는 욕심이 없어서 오래가겠구만!"


이민호와 김래원이 주연이었지만,

또 다른 주연 정진영과 정호빈, 유승목, 엄효섭, 최진호, 김지수 등 

쟁쟁한 조연들의 연기력이 돋보였던 영화였다. 

특히 이민호의 배역과 연기는 뭔가 어색하고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다. 

김래원은 인상적이진 않았지만 평범한 수준의 연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정진영, 유승목, 정호빈이 영화의 분위기를 주도한다. 


유하 감독이 오랜만에 들고 나온 신작이지만, 

<비열한 거리>만큼의 센스를 찾기에는 힘들었고, 

<하울링>보다는 조금 나은 스토리 전개였지만,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보았던 조직적이고 개연적인 전개는 아니었다. 

이 정도 수준의 영화를 만들 수 밖에 없다면,

나는 더이상 그의 신작을 기대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서울을 강남으로 옮기면 어때?" 


전체적으로<말죽거리 잔혹사>와<비열한 거리>를 

어설프게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두 명의 남자 주인공이 겪는 다른 세계와 서로 다른 꿈. 

그리고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해가는 모습들. 

결국에는 어느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는 사정. 

영화를 보다가 감각이 빠른 사람은 결말도 쉽게 예측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포스터나 시놉시스만 봐도 결말을 예측할 수 있을지도..


이런 영화는 이전의 비슷한 영화들과 비교할 때, 

얼마나 더 신선하고 센스있게 찍고 연출하느냐에 있다. 

왜냐하면 조폭 느와르는 결국 '멋있다'라는 말이나 느낌이 

영화를 보는 동안 자주 나와주고 들어야 관객들의 기억에 남고, 

거기에 기막힌 반전이나 최소한의 납득 가능한 반전이 있으면,

흥행도 될 뿐만 아니라 영화제 시상식들에서 수상도 노려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이런 점에서 탁월하지 않다.

또한 유하 감독의 베드신은 설득력이 없다.


"그래, 땅종대 돈용기! 끝까지 함 가보자!"


윤종빈 감독의<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

소수의 '생계형 건달'이 1970-80년대의 소용돌이에서 

어떻게 극적으로 생존했는 지를 보여주었다면, 

이 영화는 대부분의 '생계형 건달'이 왜 생존하지 못했는 지 그 이유를 보여준다. 


지금이야 건달들이 많이 사라졌고,

영화처럼 정치권과 손잡고 활동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1970년대나 그 이전 시대의 건달들 중 어느 정도는, 

정말 "따뜻한 아랫목"에서 자고 싶은 생각에 스스로 건달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보면 '생계형 건달'들이었고, 

그들의 동기와 행동들은 타인과 사회에 쉽게 수용될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것들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나름대로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더 갖고 싶은,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으면, 

더이상 "따뜻한 아랫목" 같은 소박함은 없고 '욕망의 노예'로서 움직일 뿐이다. 

그래서 사람 하나 죽이는 것 쯤이야 일도 아니고, 

필요에 따라 친구와 연인, 가족을 적절히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러한 생활 속에는 늘 '불안'과 '배신'이 때를 맞춰 기다리고 있고,

'거물'이 되지 못한 건달들의 말로는 비참한 죽음이거나 '큰집'이다. 


이미 수많은 건달들이 '높으신 분'들의 욕망 속에서 죽어나갔다. 

그러나 아무리 건달이라도 '사람답게' 살 권리는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높으신 분'들은 그렇게 자신들을 따르고 충성을 다한 건달들에게,

최소한 '개과천선'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던가,

조용히 살 수 있는 터전이라도 마련해 줘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오늘도 건달들은 예전보다는 더 배고프게 생활하면서,

자아도취에 빠져 헛된 상상만 하다가, 

어이없게 나이가 들거나 원치 않는 곳에서 죽는다. 


그러나 진짜 건달들은 따로 있다.

사람을 '수단'과 '밑거름'으로 여겨 

자신들의 욕망에 아낌없이 던져 버린 '높으신 분'들.

불법적으로 재산을 취득하거나 유산으로 받은 재산과 권력으로,

여전히 정치, 경제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시는 분들. 

그런 분들의 가족으로서 어디서든 갑질을 시전하시는 분들. 

이들은 이미 손도 쓸 수 없는 '거물'이 되어 버렸고,

자신들이 있는 곳이나 가는 곳을 전부 '강남'화시킨다.

그들 역시 사람 하나 죽이는 것 쯤이야 일도 아니고, 

필요에 따라 친구와 연인, 가족을 적절히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떻게 보면 지금은 이러한 건달들의 전성시대이다. 


지금의 서울 강남 일대가 마치 부와 욕망의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나에게는 그 일대에 대한 추억이 별로 좋지 않다. 

그냥 복잡하고 걷기 불편하며 괜히 비싸다. 

무엇보다 낮이든 밤이든 모든 '욕망'들이 눈을 뜨고, 

그 욕망을 원하고 가지려고 하는 사람들이 우글거린다.

또한 꼭 특정 지역이나 직업에 상관없이, 

어디서든 '욕망'에 따라 살고 싶다면, 

...

누구나 '건달'이 될 수 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