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멜랑콜리아] 가끔 "나"와 "너"가 싫은 이유 본문
연말에 보게 된 Lars Von Trier 감독의 영화.
전작 <안티크라이스트>에서 보여준 "우울"과 "불안"에 대한 Lars의 생각들은 이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보는 사람들도 영화 내용에 어느 정도 공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제부터 여기는 낮고 두꺼운 구름들로 인하여 흐리다.
영화를 보는 동안 가끔 회색빛 하늘만이 보이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영화의 메인 테마곡인 W. R. Wagner의 <Tristan und Isolde> 서곡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한마디 하자면, 그것이 지속되는 한 즐기거라."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이 출연 분량과 상관없이 많이 출연했다.
감독, 제작, 각본, 배우 등 아버지보다 다방면에서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는 Kiefer Sutherland.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에도 출연했던 故 John Hurt.
Lars의 영화들에 많이 출연한 Stellan Skarsgard와 그의 아들 Alexander Skarsgard.
Francois Ozon 감독의 영화 <스위밍 풀>에서 본 이후 오랜만에 본 Charlotte Rampling.
Michel Gondry 감독의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 출연했던 Kirsten Dunst.
<안티크라이스트> 이후 Lars의 영화에 꾸준히 출연하는 Charlotte Gainsbourg.
배우들에게 있어서 Lars의 영화에 출연한다는 것은 흥미롭고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의 영화들은 심리극이 대부분이기에 높은 수준의 연기력과 배역 이해력을 요구하지만,
주연급 배우들은 국제 영화제들에서 자주 주연상을 받았고,
조연급 배우들도 영화 내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였다.
이 영화의 주연인 Kirsten Dunst은 2011년 칸 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부부로 나온 Charlotte Gainsbourg와 Kiefer Sutherland는,
"부부"라는 설정이 다른 의미로 느껴질 만큼 서로 경쟁하는 듯한 연기라서 인상적이었다.
"내가 아는 건, 지구에 있는 생명들은 악하다는 거야."
전작 <안티크라이스트>와 마찬가지로 가족을 비롯한 타인으로부터
이해와 배려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우울"과 "불안",
그에 따른 반응들을 영화에서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저스틴과 클레어, 존 그리고 리오는 그 반응들로 분류된 어떤 유형들이다.
"가끔 정말 네가 싫어, 저스틴."
인간의 삶은 감정들과의 싸움일 수도 있다.
매일 매 순간마다 찾아오는 감정들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감정들의 종류에 따라 느끼고 싶지 않게 회피되고 잘 느낄 수 있게 적극적으로 직면되며 아무렇게나 방치된다.
행성 "멜랑콜리아"를 누구나 볼 수 있고 그것에 대한 분석과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누구도 그 행성이 무엇이고 어떻게 지구에 영향을 줄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행성을 이해하고 상대할 뿐이다.
감정들에 대한 사람의 태도도 이것과 같다.
어떤 감정이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 감정이 "어떻게" 나를 어떤 행동으로 이끌지는 알 수 없다.
갑자기 분위기가 불쾌해질 수도 있고,
갑자기 분위기가 유쾌해질 수도 있으며,
갑자기 모든 사람들과 생명들을 저주하며 지구의 멸망을 바랄 수 있고,
갑자기 모든 사람들과 생명들을 축복하며 이 순간의 영원함을 바랄 수 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감정들이 찾아올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감정들을 통제할 수 없는 자신을 아는 것이고,
그 감정들이 지나갈 때까지 혼자있거나 최대한 사람들과의 접촉을 줄여야 한다.
안타깝게도 그 감정들은 예고없이 찾아오거나 언제라도 느껴질 수 있기에,
TV 뉴스나 신문에서 매일 사람들의 이상한 말과 행동들에 따른 피해들을 확인할 수 있다.
우울, 불안, 외로움, 권태, 싫증.
서로 다른 단어들로 표현되는 감정들이지만,
이 감정들은 사실 하나의 감정들이고,
그와 반대되는 감정들 예를 들면,
기쁨, 평안, 관심, 성실, 흥미와 같은 감정들도 하나의 감정들일 수 있다.
이 감정의 질적인 긍정성과 부정성은 서로 대립하지만,
그 대립이 한 인간 안에서 생기고,
상황에 따라 양 쪽의 감정들이 확실히 표현되거나 때로는 감추어지고,
또 서로 뒤섞여서 어떤 감정이 지금의 나를 사로잡고 있는지 모르게 한다.
지구상에서 인간이 가장 위험한 생명체인 것은 틀림없다.
이것이 가끔 "나"와 "너"가 싫은 이유이다.
'內 世 上 > Cinemacu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라딘] 인간의 선한 가능성 (0) | 2019.07.17 |
---|---|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허무한 것은 싫다 (0) | 2019.01.06 |
[해피투게더] 나의 행복이 너의 행복이 될 때까지.. (0) | 2018.08.28 |
[안티크라이스트] 통제할 수 없는 우울은 그 자체가 흉기이다 (0) | 2018.08.27 |
[말레나] "쓰X 야해지자!" (0) | 2018.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