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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살인] 한국적인 추리, 스릴러 소재들은 아직 지겹지 않다

EAST-TIGER 2020. 6. 6. 10:53

 

비 오는 날을 좋아하기에 장마가 시작된 오늘, 나는 무척이나 기뻤고, 더없이 즐거운 주말을 보내고 있다.
여름방학 첫 주말에 늦잠도 자고, 집에서 방황하다가 그동안 안 보고 쌓아두었던 영화들을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게 아니면 내리는 빗소리에 이불을 덮고 잠을 자거나, 늘 비 오는 날 들었던 음악을 들었을 테지.


황정민과 류덕환, 엄지원, 오달수 등 연기파 배우들이 주연이라.. 왠지 기대가 되는 영화다.
예전에는 추리, 스릴러 장르가 한국 영화시장에서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는데, 그중 큰 원인이 부실한 스토리였다.
스토리가 조직적이지 않고, 들쑥날쑥한 긴장감과 속도감은, 영화를 본 관객들의 질타에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것들은 해외라고 다를 바가 없지만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추리, 스릴러 장르의 영화는 잘 보다가도 한번 흐름이 끊기면 재미가 반감된다.

 

 

"뭐, 대충 10일 안에는 생사 불문하고 다 찾아 드릴 테니까 30원은 넘지 않을 테고, 그래 누굴 찾아드릴까?"
"예.. 저기.. 누구를 찾냐면요, 살인범을 찾거든요."


때는 한일합방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운 시절의 한양.
남에게 돈 떼이거나, 도망간 부녀 자을 찾아주는 정의(?)의 탐정 홍진호는
미국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은다.
그러던 어느 날, 조선인 의학도 광수가 찾아와 자신이 살인 누명을 받지 않게 범인을 잡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때마침 종로 경찰서 순사부장 영달도 출세를 위해 이 사건에 관여하고 있었다.

 

 

"이 오영달이가 범인 잡는 게 어색하시오?"


살해당한 자는 민 치성 대신의 아들 민수현.
진호와 광수는 최선을 다해 조사해보지만, 발견된 단서는 백색가루, 그리고 기묘한 형상의 ‘카라쿠리’ 인형뿐이다.
그리고 얼마 후 경무국장이 같은 방식으로 살해당하자, 진호는 동일범의 소행으로 간주한다.
만만치 않는 사건임을 눈치챈 진호는,
여류 발명가 순덕에게 도움을 구하고 백색가루의 정체가 '모루히네'라는 마약임을 알게 된다.

 

 

"진짜 저 놈이 범인일까요?"
"저 놈이 진짜 범인이라면 언젠가는 꼭 다시 보게 되겠지."


광수와 순덕의 도움으로 몇 개의 단서를 찾은 진호.
그 단서들을 종합하여 용의자로 지목한 사람은 독립문에서 서커스를 열고 있는 서커스단 단장이다.
좀 더 확실하게 범인을 검거하려는 진호와 광수는 서커스단에 잠입하고,
거기서 살인사건들을 둘러싼 배후의 비밀과 음모를 알게 된다.

 

 

"고발은 안 해, 그건 순사들이나 하는 짓이니까."


영화의 내용이 어디서 본 듯한 것은, 이와 비슷한 추리, 스릴러 영화를 많이 보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또한 추리, 스릴러 영화들의 전형적인 특징은 내용이 전개될수록
매듭지어야 할 소규모 스토리라인들이 눈덩이처럼 생기기에,
매듭지어지지 않는다면 관객들의 다양한 욕구를 채워주지 못한다.
이를 종합하면, 이 영화도 전형적인 추리, 스릴러 영화이고 독창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영화가 스토리만으로 이루진 것이 아니고, 출연한 배우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기에 단순히 폄하할 수 없다.
일단, 황정민과 류덕환의 뛰어난 연기력은 훌륭했다.
두 배우는 어떤 영화에서든지 각자가 맡은 캐릭터보다 120%의 연기를 보여주기 때문에
이번 영화에서도 제 몫을 다했다.
게다가 엄지원, 오달수, 윤제문도 개성 있는 연기를 보여줌으로써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본전은 뽑는다.


다음으로, 시대 배경에 맞는 무대 설정과 소재는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전형적인 추리, 스릴러 영화의 틀은 벗어나지 못했지만, <혈의 누>와 같은
한국적인 추리, 스릴러 소재들은 아직 지겹지 않다.
영화 후반부에 속편을 암시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실제로 감독은 아주 먼 미래에 속편을 염두하고 있다고 한다.


창 밖으로는 비가 주룩주룩 오는데 이런 영화를 보니 기분이 묘하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머리가 약간 아파서 베란다가 나가 창 밖을 내다보니,
낮은 구름들은 세상을 덮으려는 듯 빠르게 밀려들고 있었다.
어디선가 개념 없는 오토바이 소음 소리가 들려왔고, 그것을 참지 못한 시민들의 냉혹한 욕설이 들렸다.
만약 내가 담배를 피웠다면, 한 대 피웠을 것만 같은 풍경이었다.


신인감독 박대민은 이 영화를 오래전부터 구상해왔다고 했는데,
호화로운 배우들로 신인감독 다운 영화를 만들어냈다.
(인터뷰 기사 : http://www.maxmovie.com/movie_info/sha_news_view.asp?newsType=&page=&contain=&keyword=&mi_id=MI0083833814)
황정민은 다양한 배역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영화팬들도 인정하는 흥행 보증 배우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자리 잡았다.
<천하장사 마돈나>의 류덕환은 나이에 비해 상상할 수 없는 연기를 매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다.
<주홍글씨>, <극장전>의 엄지원은 연기는 무난하지만,
주연이든 조연이든 영화 내에서 그 위치가 불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올드보이>, <구타유발자들>의 오달수는 특유의 일정한 억양의 말투로 보는 내내 즐거웠고 꽤 많은 대사를 했다.
조폭 전문 배우 윤제문은 뭔가 연기 변신을 시도하지 않는 이상, 배역이 한정될 가능성이 높다.

 

2009.06.20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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