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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 인간관계론] 나의 인간관계론

EAST-TIGER 2020. 7. 20. 05:05

 

사람과 사람 사이에 대화는 가장 소극적이고 적극적인 자기표현 행위이다. 그리고 대화에는 무수한 이해관계와 변수가 있고 그에 따라 서로의 반응과 이해도 다르다. 사람들은 대화를 통해 그들의 목적과 가치를 얻거나 잃을 수 있고 삶과 죽음도 연관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늘 ‘효율적인 대화의 유연성’에 대해 고민한다. 그 이유는 사람과의 대화가 누군가의 삶 전체를 바꿀 만큼 중요하고 어렵다는 것을 나의 삶 가운데서 절실히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말을 잘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 정말 신뢰가 가고 뭔가 운동력이 있으며 특별함에 끌리게 된다. 그러나 대화에 성공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왜 그럴까? 대화는 서로 간의 자기표현이기 때문이다. 말은 또 다른 말을 만나기 이전까지는 독립적이지만 서로 다른 말이 만나게 되면 대화가 형성되고 그때부터 재미있는 게임이 시작된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본성상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어떤 방법이나 수단으로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논쟁을 좋아한다. 논쟁은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를 통해 자신과 서로의 목적을 성취할 있는 대화의 기회이다. 나는 대화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절대적인 것은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는 대화에는 감정이 밀접하게 서려 있다. 그 감정이 대화의 시작과 끝을 주도한다. 좋게 시작한 대화가 한순간에 험악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감정을 숨기며 대화를 한다는 것은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과장한다면 자기 학대이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숨겨가며 고통을 인내하는 사람을 보면 그의 외면적인 모습을 보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갖지만 사실 내면적인 상처는 본인만 아는 것이다. 인내가 쌓이고 쌓이면 어느새 자신의 감정과 마음이 상해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에게 있어서 대화는 나 자신과 상대에게 있어서 몸과 마음이 자유롭고 건강해야 한다. 그러나 카네기를 비롯한 많은 리더십 연구가들의 책을 보면 논쟁을 피하라고 하고, 성서에도 전도할 때는 논쟁을 피하라고 한다. 분명 무슨 의도의 논쟁을 피하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분명해야 할 말을 전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우리가 처음부터 누군가를 변화시키려는 목적을 갖고 있으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상대방과 논쟁하려 하고, 그의 말을 공격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그렇게 되면 상대방은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방어적 자세를 취한다. 그렇지만 개인이나 단체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여러 간접적인 행위보다 단 한 번의 대담으로 가능할 수도 있는 것이 대화이고 논쟁이다.


고전인 <삼국지>를 봐도 제갈량의 적벽대전 전 오나라 대신들과의 대담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언어 이상의 전쟁이었다. 제갈량은 철저하게 논리적으로, 감정적으로 오나라 대신들의 질문과 언쟁에 대답했고 도리어 오나라 대신들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적절하게 충고했다. 적절한 논쟁은 인간관계를 파하거나 난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게 하여 다음 대화와 행동을 미리 예측할 수 있게 한다. 나는 기독교에 논쟁이 사라진 것에 대해 심한 유감을 가진다. 지금은 맹목적이고 공허한 복음전도는 통하지 않는다. 지금 기성세대들은 논리적이고 개인적이며, 기독교에 대한 통속적 통념이 단단히 박혀 있다. 그것을 넘어 복음전도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 논쟁, 즉 날카롭고 가슴을 저미는 대화이다. 내가 지하철에서나 거리에서 복음전도를 하는 목회자나 교인들을 보아도 변증적으로 복음을 설명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이해만을 강조하고 논쟁을 배제하는 이론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수반된 논쟁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대방의 진심과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곧 인간관계야 말로 우리가 살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거라 생각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배운 내용이 평소 내가 모르고 있던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 인해서 나는 또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인간관계를 맺을 땐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남의 말을 경청하고 남의 좋아하는 대화를 하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천을 안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것들을 지켜나갈 때 인간관계를 더욱 잘 맺을 수 있고 인간 경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나는 학교 동아리에서 회장을 맡고 있어서 더더욱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 리더십에 관한 부분을 관심 있게 읽었다. 물론 카네기가 제시하는 리더십 이론은 이미 여러 책에서 보았기 때문에 새롭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카네기 제시하는 이론이 다른 저자들과 같다는 것은 결국 리더십에 대한 견해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올바른 리더상이 형성되었다고 본다.


세상에는 많은 리더들이 있지만 내가 리더십의 모델로 생각하는 사람은 <영혼이 있는 승부>를 쓴 벤처 기업가이자 교수인 안철수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다방면의 능력과 재능을 드러내든, 은연중에 과시하여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인위적, 자연적 존경심을 유발하려 하는데 서울대 의대 출신인 안철수가 의학 분야의 박사학위나 교수 경력에 미련이 없고 오히려 짐이 되고 장애물처럼 느껴진다는 말에 벤처기업가로서의 안철수의 결연한 의지를 볼 수 있었다. 과거의 화려한 경력은 참고자료일 뿐이다. 그중에는 지금 현실에 하고 있는 일과 상관없는 경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을 제대로 보고 미래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힘이며 이 힘의 코드는 바로 자신이 가진 그에 관련된 능력과 노력인 것이다. 지금 경제가 어려워져서 나라가 위태롭고 세계적인 유명 기업은 무너지고 실직자들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의 기업들의 CEO들은 걱정이 없는 듯하다. 그들은 부정과 부패를 일삼으며 소위 장사꾼의 면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 경영자들 대부분이 올바른 기업경영윤리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영자들 모두 정직한 기업이 되길 원하고 매출도 잘 되는 기업이 되길 원한다. 문제는 경영자들의 경영철학과 철저한 기업 관리에 있다. 특히, IMF 이후 수많은 벤처기업이 일어났고 수많은 성공사례를 냈지만 지금까지 안정되게 유지된 기업이 별로 없다. 이것은 경영자들이 처음 세웠던 경영철학과 치밀한 계획에 바탕된 기업 관리가 소홀했던 것에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뚜렷한 비전과 계획이 없이 벤처시장에 뛰어들었다가 오히려 투자자들의 신뢰만 무너뜨려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의 필요성을 망설이게 할 것이고 순간의 이득을 위해 잘못된 판단과 행동을 한다면 공들인 탑도 무너져 결국 기업이 망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우리나라 벤처사업이 장기간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는 대기업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매체를 떠들썩하게 했던 삼성과 현대의 경영자들의 비리 문제에서도 한 번의 잘못된 판단과 행동이 자신뿐 아니라 기업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확실한 미래와 현실 속에서 자신의 경영철학에 맞게 순간순간 결단을 내리고 추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이 한 기업에 경영자의 능력이자 소신이다. 안철수 연구소가 어려운 상황과 시기를 거쳐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경영자 안철수의 경영철학이 현장에서 계속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라 본다.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그 자리 유지를 위하여 변화와 개혁을 싫어하는 것은 한 겨울날 아궁이에서 장작이 다 타기를 기다리는 사람과 같다. 따뜻한 온돌방을 계속 유지하려면 장작이나 강력한 인화물질을 계속 넣어줘야 하듯이 자신이 속해 있는 곳이 지속적인 성공을 하려면 남들보다 앞서는 변화와 개혁은 필수이다. 나는 축구를 좋아한다. 축구에서 시종일관 기다리거나 지키는 방어적인 축구는 재미가 없다. 이기든 지든 과감하고 지능적인 돌파와 열정적인 몸싸움을 볼 때 축구는 사람들을 열광시킨다.


우리는 어디서든 변화와 개혁에 민감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신선함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윤활유이다. 단적인 예로 한 집단의 우두머리의 말이라면 무조건 신뢰하여 따르는 경향은 개인의 개성을 무시하고 독단적이고 획일화된 커뮤니티로만 남게 된다. 물론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생각이나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상황에 따라 드러내기가 힘들거나 미약할 뿐이다. 나는 이 부분에 강한 의견을 제시한다. 한 집단은 우두머리 한 사람만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구성원들의 생각과 행동이 존재하고 움직여야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컴퓨터와 달리 의지를 통해 결단과 실행이 가능하다. 흔히 진실된 말 한마디가 거짓에 묻혀버리고 다수결에 의한 의견 통합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못하면 거짓 논리에 진실이 사장될 수 있다. 한 집단의 우두머리 된 자는 자신의 의견으로 결정, 판단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폭넓은 의견을 먼저 들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전체가 곧 하나이고 하나가 곧 전체라는 논리에 주목해야 한다.


누구나 인간관계와 리더십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나 역시 인간관계에 많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고 변화와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나름대로의 해결책도 알고 있다. 인간관계에 문제점을 느끼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그 문제점에 따른 해결책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인간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것일까? 저자는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즉,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힘이라는 것이다. 서점에는 인간관계 발전적 개선을 위한 책들이 많이 있고 대학가에는 인간관계에 대한 교양강의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 인간관계의 질이 높아졌다고 말할 수 없다. 앞으로 몇 권의 인간관계의 더 읽게 되어도 책의 내용을 100% 신뢰 및 부정을 논할 수는 없다. 다만 자신에게 적합하고 문제의 해결이 될 수 있는 것에 좀 더 노력과 연구를 기울였으면 한다. 기억에 남는 인간관계에 대한 글귀가 있는데 소개하려 한다. “물이 수증기가 되려면 100도가 되어야 한다. 99도에서 100도까지 불과 1도 차이지만 99도까지 물은 그저 물일 뿐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99도까지 열심히 노력하다가 1도를 채우지 못해 포기하곤 한다. 1도를 올리기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하면 인간관계에 자신이 생길 것이다.” 나의 생각도 이와 같다.

 

2008.12.26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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