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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언젠가] 사랑한 기억을 떠올릴거야

EAST-TIGER 2020. 7. 20. 04:32

 

오랜만에 일본문학소설을 읽었다.
<냉정과 열정사이>로 처음 만난 츠지 히토나리와 두번째 만남이다.
나는 이 책을 단숨에 읽었는데, 주로 대학원을 오가는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읽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딱딱한 책을 읽기에는 정서상 무리라고 판단했기에,
가벼운 책을 선택한 것이 이 책이었다.


일본문학의 특징은 현실체념과 허무에 있다고 본다.
그게 일본의 민족성인지 몰라도, 일본문학에서는 스케일이 큰 소재보다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들이 많다.
이 소설도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지내던 남자 유타카가,
미츠코와의 결혼을 앞둔 상황에서 운명의 여자 토우코를 만나면서 겪게 되는 연애소설이다.
스토리는 단순하고 책의 주제도 명확하지만, 현재 내가 처한 상황과 어울리면서 은은한 감동이 느껴졌다.
간단한 결론을 내리자면,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는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남는다.

 


"이건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과학적으로 연구된 거니까 틀리지 않아.
머지않아 일본에서도 혈액형으로 성격을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거야."
"무서운 시대가 오겠군. 단지 네 가지 혈액형만으로 인간을 분류하는 사고방식이라니,
어쩐지 파시즘이 연상되는걸. 그러는 당신은 혈액형이 뭔데?"
토우코는 대답 대신 웃었다. 왜, 하고 유타카가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실은 나도 내 혈액형을 몰라." <76p>

 

내가 20대 초반이었을 때,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된다는 감정은 순수했다.
나는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 생각했고, 이별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내가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는 매일매일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가뿐했고,
온 세상의 즐거움이 우리 둘 사이에서만 있었다.
나는 사주나 궁합, 혈액형, 별자리 같은 연애운을 믿지 않지만,
은근히 그런 것을 말해주는 여자친구가 귀엽게 느껴졌다.
나의 20대 초반의 사랑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고 낭만적이었다.


미츠코 생각도 했다. 결혼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반려니 어쩌니 말은그럴듯하다. 누군가 한 사람을 배우자로 정하는 것이 나의 긴 인생에 얼마만큼 중요한 일일까? 오직 한 사람과 부부로 살아갈 자신은 없다. 결혼을 한다 해도 바람피울 게 뻔하다. 그런데 굳이 결혼할 필요가 있을까. 무엇을 위해? 사회적인 입장 때문에? 대체 나는 미츠코에게 무엇을 맹세하려는 걸까. 거기서 어떠한 마음의 평안을 구하려는 것일까. <94p>

 

그러나 결혼 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면, 뜨거웠던 사랑도 조금은 냉정하게 돌아보게 된다.
한 여자, 한 남자를 위해 약 30년 넘는 동거생활은 서로에게 있어서 많은 것을 포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몇몇 사람들은 한 사람만을 평생 사랑하는 것이 낭만적이고 순수한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만큼이나 무의식적인 스트레스가 없고, 인간이 가진 성적인 자유와 욕망을 억누르니 또 다른 반응을 초래한다.
이 책의 남자주인공인 유타카도 그런 고민을 하게 된다.
현모양처의 전형적인 여자 미츠코와의 결혼을 앞두고, 운명의 여자 토우코를 만난 유타카는,
둘 다 사랑임을 부인하지 않지만,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하게 된다.
나는 결혼에 대해서 낭만적이고 순수한 사랑의 입장에 있지만,
가끔 서태지의 말대로 결혼은 서로에 대한 구속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죽음을 앞둔 순간, 사랑한 기억을 떠올릴 것인지, 아니면 사랑받은 기억을 떠올릴 것인지 내게 물었잖아."
미츠코의 시 구절이다. 유타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한 대답 취소할게. 나, 틀림없이 사랑한 기억을 떠올릴거야." <145p>

 

작가는 그런 우리에게 '언젠가 다가올 이별 앞에서 서로가 할 수 있는 가장 의미있는 행동은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 이라고 말한다.
이별은 잔인하고 슬픈 일이지만,
서로가 사랑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웃음짓거나 마음 한 구석에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다면,
그 사랑은 영원히 기억되고 남는다.

나에게 있어서 이별은 그렇게 다가왔다.
그녀와 헤어진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이별에 적응해 가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고,
어느 덧 사랑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쓴 웃음과 남모르게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그러나 헤어짐은 또 다른 행복을 부르고, 나는 누군가를 만나 다시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행복함을 원하고 사랑받기를 원한다.
사랑한 기억들은 지워지지 않고 오랫동안 남겠지만, 그 기억들은 앞으로의 사랑을 더욱 고결하게 만든다.
언젠가 나와 같이 살게 될 아내와의 만남을 생각하며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 서평을 쓴다.

 

2009.09.18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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