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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여기로 돌아왔다

EAST-TIGER 2017. 11. 2. 07:37

무사히 귀환했다. 

Frau Freude는 내게 여기로 다시 돌아오고 싶었는지 물었다.

나는 당연히 돌아오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할 일이 아직 남아 있고 아직 가보지 않는 "미래"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나는 돌아왔다. 


지난 화요일 점심에 중동에서 은해를 만났다. 

두번째 만남이었고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첫번째 만남 때와 달리 차분했고 식사 후 함께 차를 마셨다. 

은해는 곧 결혼을 할 것 같고 정말 잘 된 일이라 생각한다. 

은해의 도움으로 필요했던 자료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우리는 생각보다 일찍 헤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또 긴 시간동안 보지 못할 것이다. 

오후 3시 30분쯤 헤어졌다. 


오후 4시 20분쯤에 홍대에서 은해의 제자를 만났다. 

그의 도움으로 홍대 중앙 도서관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원하던 자료를 찾아 복사를 하였다. 

200 페이지가 조금 넘는 학위 논문이었고 국내에서는 유일한 주제였다. 

그만큼 Schelling에 대해서 연구가 덜 되어있고, 

그를 공부한 사람들은 그에 대한 연구 결과들을 내놓지 않았다. 

복사를 마치고 악기를 가지러 영등포 CJS 연습실로 갔다. 


저녁 7시가 다 되었기에 합주가 예정된 CJS 연습실은 분주했다. 

한국 방문 후 처음으로 옥 선생님과 김 선생님을 보았고,

그것이 또한 방문의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임 선생님께 보안키를 드리고 악기를 들고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계단을 올라오니 김 선생님이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는 짧게 대화를 나눴고 작별 인사를 했다. 


집에 돌아와서 편지를 썼고,

독일에 가져갈 책들을 또 주문했다. 

동생은 내게 출국 예정일을 알려주었다. 

이제 남은 시간이 정말 없다. 


수요일 오전에 신향악기사 사장님을 만났다. 

악기 점검을 의뢰했고 작별 인사를 했다. 

여전히 건강하셔서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는 분명 "장인"이다.


점심 식사는 어머니와 함께 했다. 

구로 디큐브 시티에 있는 식당가에서 만났고 한식 정식을 먹었다. 

식사 후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어머니는 다시 일터로 가셨다. 

집에 와서 편지를 쓰다가 잠이 들었고 

일어나서는 교회에 가기 위해 양복을 입었다.  

수요 예배를 인도했고 교회의 대들보 같은 권사님 세 분과 강 집사님이 나오셨다. 

나는 욥기 23장을 본문으로 말씀을 나누었고 열심히 기도했다.

오랜만에.. "예배를 드린다"는 기분이 들었다.

예배 후 권사님 두 분과 강 집사님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 후 강 집사님에게 선물을 했고 강 집사님은 나를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했다.


애진이 누나를 만나려고 소사에 왔으나 만날 수 없었다. 

누나는 나를 기다리다가 피곤하여 잠이 들었고,

남편인 재호가 전화를 받아 만날 수 없다고 했다. 

결국.. 만날 줄 알았던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이것 역시 신의 계획이라 생각했다.    


목요일 오전 11시 40분쯤 오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교수님과 예전에 교수님의 조교로 일했던 분을 만나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교수님의 차로 이동하여 오리 고기를 먹었고 둘이 아닌 셋이다 보니 꽤 유쾌했다. 

조교를 했다는 분은 청소년을 자녀로 둔 어머니였고, 

젊었을 때는 "운동권"으로 대학에서 활동했고, 

이후로도 진보적인 여성으로 계속 활동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평범한 "어머니"가 되었다.

"열심히 활동해도 세상이 그렇게 빨리 변하지 않고 또 않을 것 같더라구요."

식사 후 연구실로 돌아와서 교수님이 내리신 커피를 함께 마셨다. 

기교과의 남 교수님을 우연히 만나 잠깐 대화를 나눴다.

오 교수님은 연구실 창문으로 들어 온 파리를 무척 싫어하신 듯 직접 쫓았지만, 

우리가 연구실을 나갈 때까지도 파리는 연구실을 떠나지 않았다.  

오후 2시가 조금 넘어서 우리는 헤어졌고,

헤어지기 전에 교수님과 나는 조교의 도움으로 함께 사진을 찍었고, 

또 셋이서 함께 셀카로 사진을 찍었다.  

나는 교수님을 지하 주차장까지 배웅했다. 


오후 2시 30분쯤 정 교수님을 연구실에서 만났다. 

클래식 음악 방송이 잔잔하게 들렸고 함께 커피를 마셨다. 

1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고 정 교수님의 기도로 방을 나왔다. 

아.. 이번에도 교수님께 진 빚을 갚지 못했다. 

오히려 부끄럽게도 도움만 받은 것 같다.


손 교수님께 드릴 편지를 그의 메일 박스에 넣었고, 

학교 기도실에 들러 기도를 했다. 

그리고 오후 4시가 되어서 학교를 떠나 역으로 향했다.     


서울역에서 오후 5시쯤 인화 누나를 만났다. 

지난번과 달리 누나는 더 밝아진 표정을 내게 보였고 분위기도 밝았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나는 누나에게 선물을 주었다. 

식사 후 서울역 고가도로를 걸었다. 

뉴스로만 들었던 거리였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누나가 부산 집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얼마 걷지는 못했다. 

우리는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와 헤어졌다.  


다시 학교 근처로 돌아와 약속 장소인 카페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앉아 편지를 썼다. 

예정된 시간이 되자 지훈, 영웅, 현규가 도착했다. 

SLUR에 대해 2시간 정도 대화를 나눴다. 

나의 생각이 그들보다 설사 낫다고 해도 지금은 그들의 시대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제한적이다.  

우리는 밤 10시가 조금 넘어서 작별 인사를 나눴다.

현규는 자취방으로 돌아갔고 나와 영웅, 지훈은 역에서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와 독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부모님과 대화를 나눴고,

서로 유쾌하게 웃으며 다음에 만날 날을 기약했다. 

방으로 돌아와 계속 편지를 썼다.  


금요일 아침에 우체국에 들러 EMS으로 붙일 소포 박스를 구입했다. 

그리고 여의도 전경련 회관 지하 식당가에서 남 교수님을 만나 점심 식사를 했다. 

늦잠을 자서 교수님을 1시간 남짓 기다리게 해서 죄송했고,

남 교수님도 약간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내게 짧게 분을 내셨다. 

식사 후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함께 있는 사진을 남기고 싶었는데 시기를 놓쳐서 여의도역 내에서 셀카로 찍었다. 

찍은 사진을 보니.. 남 교수님이 너무 수척하다.

우리는 오후 3시쯤 서로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성광이를 만나러 면목역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조금 넘었다. 

그를 역에서 만나고 함께 택시로 그가 사역하는 교회로 이동했다. 

옷 공장이 있는 건물 2층에 교회가 있었다. 

사진으로 보던 교회였고 깔끔하고 깨끗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사무실에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고 저녁 7시가 다 되어서 헤어졌다.

성광이는 나를 회기역까지 자신의 차로 데려다 주었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작별 인사를 했다.   


효성이를 제물포역에서 밤 8시 30분쯤 만났다.

예정보다 늦은 시간이어서 효성이가 가고 싶은 곳은 갈 수 없었다. 

역 근처 식당에서 함께 순대국을 먹었다. 

식사 후 카페에서 차를 마셨고 대화를 나눴다.

밤 11시가 다 되어서 우리는 제물포역에서 헤어졌다. 

구로역으로 가는 마지막 급행 열차를 탔다.


개봉역에서 마을 버스를 타고 집 근처에서 내린 후,

춘하 누나 집까지 도착했다.

서로 집은 멀지 않았서 한국 방문 중 많이 만날 줄 알았는데.. 이제 두번째이다.  

누나가 사는 아파트에 도착하니 자정이 다 되었다. 

1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다. 

누나에게 늘 고마움을 느낀다. 


토요일 정오 때 김 목사님을 만났다. 

짧게 대화를 나누고 편지를 드렸다. 

함께 교회 근처에서 점심 식사를 했고, 

다시 교회로 돌아와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헤어졌다. 

강 집사님에게 연락을 해서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집사님은 내게 선물을 주었고 나도 집사님에게 작은 선물들과 편지를 드렸다. 

1시간도 대화하지 못한 채 서로 헤어졌다. 

강 집사님은 내가 버스를 탈 때까지 기다렸다가 돌아섰다.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오후 4시쯤 수정 누나를 만났다. 

카페에서 서로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나는 누나에게 차 교수님과 이 교수님께 드릴 두 통의 편지를 드렸다. 

직접 드릴 수 없으니 누나를 통해 드릴 수 밖에 없다.  

1시간 조금 넘게 대화를 하고 셀카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누나에게도 작은 선물을 했다. 


누나와 헤어지고 난 후 교보문고에서 효성이를 만났다. 

효성이와 함께 타임스퀘어 식당가에서 저녁 식사를 했고,

식사 후 나는 이발하기 위해 미용실에 들렀다. 

이발 후 효성이와 영등포역 근처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나는 가져온 책을 효성이에게 주었고 역시 작은 선물을 주었다. 

우리는 밤 8시 50분쯤 영등포역에서 동인천 급행 열차를 탔고 나는 신도림역에서 내렸다. 

서로 유쾌하게 웃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

열차가 떠날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2호선을 타고 홍대입구역에서 내려 SLUR가 합주하고 있는 연습실로 찾아갔다. 

졸업생들을 비롯하여 병민이가 함께 합주를 하고 있었다. 

첫 합주라서 완성된 곡을 들을 수 없었고 합주를 듣고 생각나는대로 조언했다. 

고맙게도 내게 송별의 선물을 주었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밤 10시 30분이 조금 지나서 먼저 합주실을 나왔다. 

합주실 대관비는 내가 계산했다. 

그것으로 나 역시 그들의 공연에 참여하는 느낌을 갖고 싶었다. 


집에 오니 자정이 다 되어갔다.

어머니는 내게 줄 반찬들을 준비 중이었고 아버지는 내 옷을 다림질 하였다.

나는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했고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내가 가져가야 할 짐들을 설명해주셨다. 

부모님이 주무시고 난 후 나는 짐을 싸기 시작했고 다 싼 후에는 편지를 썼다. 

편지를 쓰는 동안 부모님이 잠에서 깨셨고 어머니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셨다. 

편지를 다 쓰니 식사를 해야 했고 식사 후에는 옷을 입고 나갈 준비를 했다. 

아버지는 먼저 집을 나가 차를 집 앞까지 대기시켰다. 

나는 어머니와 작별 인사를 하고 짐을 들고 집을 나섰다.    

아버지와 나는 차에 집을 싣고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으로 가는 동안 아버지와 대화를 나눴다. 


공항에 도착해서 발권을 하고 수화물의 무게가 초과되어 추가금을 지불했다. 

둘째 고모와 통화를 했고 들어가야 하는 게이트 앞에서 간이 의자에 앉아 아버지와 대화를 나눴다.  

처음 독일을 떠날 때와는 다른 느낌과 다른 풍경이었지만 그래도 어떤 "헤어짐"이었다.

오전 10시 15분쯤 아버지와 헤어졌고 나는 게이트로 들어갔다. 

핀에어로 오전 11시에 인천 공항을 떠날 예정이었지만, 

비행기 결함으로 정비에 들었갔다며 출발시간이 연장되었다. 

항공사 측에서는 점심 식사를 제공했으나 

출발시간이 약 1시간 간격으로 계속 지연되고 게이트 마저 자주 변경되자,

점점 승객들은 분노했고 급기야 언성을 높여가며 항공사 직원들과 말다툼을 했다. 

나는 항공사 측에서 예정한 시간에 나타나 상황을 보았고 별 진전이 없을 것 같으면 돌아섰다. 

나는 의자에 앉자 잠을 자거나 일어나서 잠시 걷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승객들이 항공사 직원들과 말다툼 하는 모습들을 지켜 보았고 꽤 흥미로웠다.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 승객들을 그런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하는 듯 지켜보았다. 


싸울만한 사람들이 싸울 뿐이었다.

싸운다고 상황이 크게 바뀔 것 같지 않았다.      

거의 9시간만에 비행기는 인천 공항을 떠났다. 

해가 뜰 때 집을 나섰는데 해가 질 때쯤 한국을 떠났다. 

말로만 듣던 핀에어를 탔는데.. 기내 서비스는 실용적이었다.

그리고 북서항로는 과연 빠르게 나를 유럽으로 데려다 주었다. 

9시간이 지연된 탓에 헬싱키 공항에서 뒤셀도르프 공항으로 환승할 비행기는 이미 떠났다. 

핀란드 현지 시간으로 밤 10시쯤 헬싱키 공항에 도착했고,

핀에어 직원들은 환승 승객들에게 공항 호텔을 잡아 주고 새로운 티켓을 발급했다. 

내 티켓은 직접 구매한 것이 아닌 스텝용 티켓으로 구매된 것이라 보상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엄연히 항공사 측에서 잘못한 것이기에 직원과 대화를 나눴더니 다른 승객들과 똑같이 보상해주었다. 

Herr Freude로부터 전화가 왔었고 다시 내가 걸어서 우리는 잠깐 통화를 했다. 

예정대로라면 오늘 도착했어야 했지만 내일로 미루어졌다는 것을 알렸다.  

나는 호텔로 이동하기 위해 공항을 나섰다. 


눈이 섞인 비가 내리고 있었다. 

0도 또는 영하의 날씨에 바람이 부는 밤이었다. 

호텔로 가는 셔틀 버스가 도착했고 10분쯤 가니 내가 머물 "Bonus" 호텔에 도착했다. 

안내데스크에서 여러 구멍들이 뚫린 직사각형 키를 받았고,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호텔에서 제공하는 저녁 식사 쿠폰으로 Bar에서 식사를 했다. 

독일어를 할 줄 아는 남자가 카운터에 있었고 나는 핀란드산 맥주를 마셨다. 

가격은 7.5유로였지만 어쩔 수 없이 마셨고 불고기 버거 세트를 주문했다.  

금새 우리 둘은 친해져 대화를 나눴고 그의 독일어 실력은 가벼운 의사소통 수준이라 영어로 대화했다. 

그리고 공항에서 일하는 핀란드인이 와서 세명의 남자가 대화를 나눴다. 

나는 내가 먹던 감자튀김을 핀란드인에게 주어 같이 먹었고, 

카운터에 있는 남자는 간간이 담배를 피러 밖으로 나갔다. 

핀란드인은 내게 자신의 여권을 보여주었다. 

60년대 초반 생이었고 이름을 알려주었으나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는 하이네켄 맥주를 마시다가 위스키를 한 잔 더 시켰다. 

그와 대화를 나누다가 사별한 자신의 아내 이야기가 나오자 눈물을 보였다. 

나는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객실 앞에 도착했다. 


방은 의외로 넓고 깨끗했다. 

TV에서는 핀란드어 방송들 말고도 불어와 영어, 스페인어, 독일어 방송들도 있었다.

나는 씻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리고 오전 5시쯤 일어나 다시 씻고 짐을 챙겨 로비로 내려왔다. 

아침 식사를 하고 오전 6시 10분쯤 셔틀버스를 타고 헬싱키 반타 공항으로 돌아왔다. 

날씨는 구름이 낮게 내려와 흐렸다. 


수화물을 붙이고 독일행 게이트가 몰려 있는 곳에서 뒤셀도르프행 게이트를 찾았다. 

2시간 남짓한 비행이기에 큰 부담은 없을 것 같았으나 비행기는 20분 정도 연착되었다. 

독일 전역에 태풍으로 인하 피해를 듣고 있었던 찰나여서 조금 걱정이 되었다. 

게이트 통과 후 공항버스로 비행기가 있는 곳까지 이동했고,

지상에서 비행기의 출입구까지 올라가 탑승했다. 

오전 8시 20분쯤 헬싱키 반타 공항을 떠났고 북해를 따라 독일 상공에 이르렀다. 

뒤셀도르프에 도착하니 오전 10시가 조금 지났다. 

수화물을 찾고 공항 밖으로 나오면서 놀랐다. 

입국 심사를 하지 않는 것이다!

즉 유럽 내 항공사들의 비행은 특별히 심사하지 않아도 되는 듯 보였다. 

유럽에도 테러가 있지만 유럽 국가들 간의 신뢰는 여전하다. 

덕분에 나는 입국 심사 없이 공항을 나왔다. 


뒤셀도르프 공항역에서 기차를 타고 Hamm에서 내려 Münster로 가는 기차로 환승했다. 

그리고 다시 Roxel로 가는 기차를 타고 내리니 정오가 지난 시간이었다. 

집까지 걸으며 잠시 잊고 있었던 느낌들을 찾으려고 했다. 

화창한 가을 날씨였고 기온은 따뜻했다. 

집에 도착하자 Herr Freude가 나와 나를 반겼고, 

뒤이어 Frau Freude를 만났다. 

그들은 내게 자신들이 먹던 스프를 내게 나누어 주었고, 

그걸로 나는 점심 식사를 대신했다.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한과를 드렸다.


이층으로 올라와서 화초들에게 물을 주었고 짐을 정리했다. 

더러웠던 욕실은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고 Herr Freude의 말로는

청소하는 여자와 함께 6시간 동안 청소를 했다고 한다. 

나는 순간 부끄러움을 느꼈고 뭔가 들킨듯 한 느낌이 들었다.

오후 4시에 다시 Freude 부부를 만나 한과에 함께 커피를 마셨다. 

부모님께 드릴 인증 사진들을 몇 장을 찍었다. 

다음 날인 31일과 11월 1일이 공휴일이라 나는 간단히 REWE에서 장을 보았다. 


일찍 잠이 들었고 일찍 일어나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었다. 

이후 책을 보았고 지루해지면 침대에 눕거나 FIFA를 했다. 

Facebook에 두 편의 짧은 글을 남겼고 

지도교수님과 교정자 그리고 Donald와 Ingrid, Christian에게 메일을 보냈다. 

Blog에도 일기를 썼다. 


나는 다시 여기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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