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언제나 나를 속인다 본문

Section 日記/Hello- Yesterday

언제나 나를 속인다

EAST-TIGER 2017. 11. 13. 08:28

한국을 떠나 온지도 2주가 되어간다. 

어느 정도 정신이 드니 늦가을에 취해있다. 

비는 말없이 내리고 해는 짙은 회색 구름 뒤에서 서성거린다. 

나는 침대에 누워 의미없는 손짓들로 휴대폰을 누르고 긁는다. 

그러다가 잠이 들어 깨면 어느새 찾아온 기억들과 만난다. 

이름들을 적고 싶지만 적을 수 없는 이름들이다. 

부르고 싶지만 부를 수 없는 사람들이다. 

"미안하다"라고 말하지만 들을 수 없겠지. 

나의 생각과 행동이 뚜렷해지는 밤이 찾아오면,

그제서야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지난 수요일에 지도 교수님을 만나 대화를 했다. 

새로 재건축된 철학부 건물의 첫인상은 창백했고 차가웠다. 

이전보다 더 많은 걸음과 움직임으로 교수님의 연구실을 찾아갔다. 

이전과 달리 문 앞에 기다릴 수 있는 간이 의자는 없어서

약속 시간까지 그냥 서 있었다가, 

문득 열린 교수님의 문을 통해 교수님과 나는 마주했다. 

그리고 함께 자리에 앉아 1시간 정도 대화를 나눴다. 

집으로 돌아와서 식사를 했다. 


이번 학기 Kolloquium에 참여했다. 

늘 편차가 있는 참여 인원 수였지만, 

거의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다. 

Alexandra는 교수님으로부터 들었는지,

자신을 포함한 몇 명의 학위 과정생들이 참여하는 

Plotin 강독 스터디에 참여하길 제안했다.  

스터디는 매주 화요일 정오에 시작한다.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Leibniz의 "형이상학적 논고"에 대한 글들을 교수님과 함께 읽고 토론했다. 

아직 Leibniz의 생각들을 깊이 탐독하지 않아서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석사논문에서 그를 주석에서 잠깐 다루었을 뿐이다. 

한 철학자의 생각들을 온전히 아는 것의 어렵고 번거로운 일이다. 

나는 아마도.. 몇 명의 철학자들 밖에 조금씩 알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깊이 알려고 하는 Schelling과 Plotin도 그럴 것이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그들을 알고 글을 쓸 뿐이다. 

수업은 재미없게 진행되었고 오후 2시 30분쯤 끝이 났다. 

학기 말미에 발제를 할 수도 있게 되었다. 

예상했던 일이다. 


철학 잡지를 구독하려다가 머뭇거렸다. 

1년 구독비는 얼마 되지 않지만 읽지도 않을 것 같아 망설인다. 

석사 때는 박사 과정생이 되면 구독하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되보니 읽지 않고 잠자고 있는 책들이 너무 많고 읽어야 할 책들도 많다.  

할인 서점에서 우연히 Moses Mendelssohn의 "형이상학적 저작들"을 발견하여 단번에 구매했다. 

나는 그를 석사논문을 쓸 때 어느 책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고,

그의 생각들이 Schelling의 생각에도 영향을 준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원문을 읽을 기회가 없었는데 그의 책을 보니 반가웠고 읽을 생각에 설레였다. 

아쉽게도 팔리지 않는 새 책들은 할인되어 팔리거나 그냥 어딘가 창고에 쌓일 뿐이다. 

결국 잡지 구독은 하지 않기로 했다. 

오랜만에 시내를 걸었고 자유로운 생각들을 했다. 


금요일에는 최 목사님이 찾아와서 오랜만에 함께 식사를 했다. 

소연이는 레슨이 있어서 참여할 수 없었다. 

새로 단장된 식당에서 우리는 먹을 수 있을만큼 먹었다. 

서로 마실 차를 따르며 대화를 나눴다. 

70세가 넘은 목사님과의 대화는 즐겁다. 

나이에 상관없이 대화할 수 있어서 좋다. 

적당히 비가 오는 날이었고 가을의 정취를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오후 3시쯤 중앙역에서 헤어졌다. 


주일 날 오랜만에 독일 교회 예배에 참석했다. 

집으로 돌아와 잠이 들었고 일어나 책을 읽었다. 

그러다가 다시 누워 영화 <동주>를 보았다.  


일기를 쓰고 다음 날이면 오타를 수정한다. 

키보드로 두들겨 쓴 글들은 언제나 나를 속인다. 

이제 다시 긴 글을 써야 한다. 

부지런하게.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