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그런 일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본문

Section 日記/Hello- Yesterday

그런 일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EAST-TIGER 2017. 11. 8. 09:17

독일의 가을은 보는 것 이상의 즐거움이 있다. 

정원 잔디밭에 내려앉은 낙엽들을 바라본다. 

올해 국화는 가을 일조량이 부족했는지 늦게 필 것 같다.

햇살이 내리는 거리에서 낙엽을 밟고 걷다보면 길의 끝이 어딘지도 잊는다.  

대략 오후 4시 30분 정도가 되면 세상은 어둑해진다. 

하루에 몇 권의 책들을 조금씩 읽고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한다.  

일찍 잠에 들어 일찍 깨어도 여전히 밤이다. 

독일 온 이후로 어느 때보다 잘 먹고 잘 잔다.


지난 목요일에 관청에서 예정되었던 전자 비자카드를 받았고, 

오랜만에 최대 체류기간인 2년을 허가 받았다. 

이로써 독일에 7년 가까이 머물게 된다. 

아마 경우에 따라 그 이상 머물겠지만.

오후에는 Herr Freude와 함께 장을 보았다. 


금요일에 어머니가 보낸 소포가 도착했다. 

식료품들과 책들 그리고 옷들이 있었다. 

과분한 관심과 배려였지만 그것에 감사할 수 밖에 없다. 

나는 빠르게 소포의 내용물들을 정리했다. 


처음으로 뮌스터 한인 도서관에 들렀다. 

3년 넘게 뮌스터에 있었지만 가볼 생각이 들지 않았으나,

이번 한국 방문 후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책들이 있었지만 읽고 싶은 책들은 많지 않았다. 

승현이 형 집에 머물 때 서가에 있던 파스칼의 <팡세>를 읽었었는데,

도서관에 있어서 대출했고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 1권을 대출했다. 

한 권당 50센트로 2주간 빌릴 수 있고 연장도 가능하다. 


주일 날 오랜만에 간 한인 교회에는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보였다. 

대부분 음악을 공부하는 유학생들인 것 같았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반가운 인사를 했다. 

다들 잘 지내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소연이에게 우편물을 전달했고 소연이는 내게 작은 선물을 주었다.    

그러나 뭔가 서로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평소처럼 일찍 교회를 떠났다. 


파스칼의 <팡세> 같은 개인 명상록들을 읽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어떤 구절이 내게 유익한 지를 생각하면서 읽어야 하고,

글의 의미들을 되새기며 읽다보면 어느새 시간은 빨리 지나가 있다. 

아주 주관적인 글들이라 객관적인 느낌이 들게 순화하려면 피곤하다. 

삶의 성찰에서 비롯된 글들은 내게 늘 무겁게 다가온다. 

공책에 마음에 드는 문장들을 적으며 읽고 있다. 


박노해의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읽고 있다. 

처음 박노해의 시집을 읽는 것인데.. 어렵지 않은 글들이다. 

좀 과장된 홍보 문구들이 시집 겉표지에 적혀 있는 것이 거슬린다. 

나는 주로 아침이나 식사 후에 그의 시를 몇 편 읽는다. 

지금까지 읽은 시들 중에 그가 두 번 이상 쓴 표현 "정직한 절망"이 마음에 든다. 

시집은 최소 두 번 이상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경을 아침마다 식사 전에 읽는다. 

토빗기를 읽고 있고 흥미롭다. 

한국에서는 외경 읽기가 쉽지 않았는데 외경도 읽어두면 견식이 넓어져 좋다. 

아마 한국 목사들 태반이 외경을 한 번도 읽지 않고 자신들의 목회를 마칠 것이다. 

그러나 읽고 나서 잠시 고민하는 것이,

읽지 않고 그저 폄하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천천히 외경들을 읽어 나갈 생각이다.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을 읽는다. 

독일어로 읽고 있으니 마음대로 해석하여 읽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빠르게 읽지는 못하고 천천히 읽고 있다. 

꽤 분량이 많으니 꾸준히 읽어야 내년에 다 읽지 않을까 싶다.

 

조정래의 <아리랑>를 이제서야 읽는다. 

표준어가 아닌 여러 지방 사투리를 직접 글로 옮겼기에,

그것에 익숙하지 않으면 무슨 뜻인지도 모를 수 있다. 

지금까지는 재미있게 읽고 있다.

<태백산맥>을 영화로 본 것 외에 조정래 작가의 글을 읽는 것 역시 처음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아리랑>을 보고 나서 할 생각이다. 

이 책을 다 읽으면 박경리의 <토지>를 읽을 생각이다. 

한인 도서관에 <토지>가 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 지금 시기에는 나 말고는 아무도 읽지 않을 것 같다.


Schelling에 관한 독일어 서적들을 몇 권 주문했고, 

그를 소개하는 입문서들을 읽으며 예전에 공부했던 것들을 정리하고 있다.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들을 읽은 부분 옆에 적는다. 

곧 Plotin에 관한 입문서들을 읽을 것이고, 

읽다보면 난잡하고 거친 생각들이 좀 더 정제될 것이다.  

갈 길이 멀다. 


월요일부터 오전에 악기 연습을 한다. 

한국 방문 중에는 하루 정도 연습을 했었는데, 

이제 거의 매일 연습하려고 한다. 

화요일에 다시 빅밴드 "No Surrender" 합주 연습에 참여했다. 

오랜만에 본 Thomas는 백발의 머리털이 평소 때보다 길었다.

그 외 멤버들은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한국 방문에 만났던 사람들과의 시간들을 되새기고 있다. 

예전에는 만나는 사람들을 모두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번에 느낀 것은 될 수 있으면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만 남기고 싶어하는 "나"를 발견했다. 

이제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 사람들이 가진 캐릭터들을 음미하고 체험하는 시기는 지난 것 같다. 

또한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돈과 시간을 쓰는 것 역시 그 가치에 부합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가식적인 사람들이나 그저 시간을 때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더 순수했고 더 짓궂었고 더 어리석었고 더 거칠었다. 

그래서 그들이 내게 거부감과 부담감을 표현할 때 깨끗이 뒤돌아섰고 헤어졌다.

모든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고 한 사람도 잃지 않고 살아갈 순 없다. 

그러나 진정 나의 사람들은 나를 기다리고 사랑한다. 

그것으로 지금은 만족한다. 


이제야 일기 쓰는 것이 편하다. 

앞으로 예전처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일기를 쓸 생각이다.   

특별한 일이 생기면 감정들을 잘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쓰겠지만, 

그런 일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Section 日記 > Hello- Yesterd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각과 마음은 정처없다  (0) 2017.11.20
언제나 나를 속인다  (0) 2017.11.13
나는 다시 여기로 돌아왔다  (0) 2017.11.02
시간이 다 된 것 같다  (0) 2017.10.24
그 날이 언제일지 서로 모른다  (0) 2017.10.2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