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82년생 김지영] 상처 받은 여성들에 대한 공감과 위로 본문

內 世 上 /圖書館

[82년생 김지영] 상처 받은 여성들에 대한 공감과 위로

EAST-TIGER 2018. 6. 25. 08:11


  뮌스터 한인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작년에 한국 방문을 했을 때 읽고 싶었던 책이었으나 기회가 없었다. 올해 초 한인 도서관의 정기 희망도서 신청기간에 신청하여 읽게 되었다. 작가의 의도가 확실한 책이고 이미 매스컴을 통해 이 책이 가진 파급효과들도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책의 내용이 특별하거나 신선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주인공 김지영 씨의 말과 생각들을 잘 공감할 수 있었다. 



  김지영 씨는 미로 한가운데 선 기분이었다. 성실하고 차분하게 출구를 찾고 있는데 애초부터 출구가 없었다고 한다. 망연히 주저않으니 더 노력해야 한다고, 안 되면 벽이라도 뚫어야 한다고 한다. 사업가의 목표는 결국 돈을 버는 것이고, 최소 투자로 최대 이익을 내겠다는 대표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효율과 합리만을 내세우는 게 과연 공정한 걸까. 공정하지 않은 세상에는 결국 무엇이 남을까. 남은 이들은 행복할까.  <123쪽>


 많은 사람들에게는 일상적인 일들이지만 그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일들이 되어 마음의 상처를 되거나 스스로 체념하게 만들 수 있다. 김지영 씨는 어릴 때부터 한국 사회에서 여자가 겪을 수 있는 일들을 직면했고 그 원인과 해결에 대해 고민했다. 처음에는 현실의 차가움과 주위의 시선들에 대한 부담으로 그녀의 저항은 소극적이었으나 점점 양성평등을 지향하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들을 말과 행동으로 표현했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는 이런 김지영 씨에게 여자 그리고 여직원으로서 넘어설 수 없는 어떤 한계들이 있었고 주변 사람들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것들이라고 그녀에게 말했다. 예를 들면 기업 신입 공채시 여성보다 남성을 선호하고 남녀 간 업무와 임금 차별은 오랫동안 지배했던 기업 문화였다. 최근에서야 이러한 문화를 청산해야 할 "적폐"로 보고 점차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어딘가에서는 영향력이 있고 진짜 개선될 지도 의문이다. 


  그러는 사이에 김지영 씨를 포함하여 그 한계들에 부딪혀 자신들의 꿈을 포기한 여자들은 다시는 그 꿈을 꿀 수 없는 청춘의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다. 그녀들에게 그러한 경험들은 마음의 상처이고 자식들과 후배들에게 조언하듯 한풀이하듯 곱씹는 것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취업을 준비하거나 직업을 가진 미혼 여자들은 분명 불리하다. 또한 저출산으로 고민하는 사회에서 여자들에게 결혼하지 말 것을 권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직은 아빠 성을 따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긴 하지. 엄마 성을 따랐다고 하면 무슨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겠지. 설명하고 정정하고 확인해야 할 일들도 많이 생기겠지."


  김지영 씨의 말에 정대현씨는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손으로 '아니요' 칸에 표시를 하는 김지영 씨의 마음이 왠지 헛헛했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김지영 씨는 혼인신고를 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는 정대현 씨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법이나 제도가 가치관을 바꾸는 것일까, 가치관이 법과 제도를 견인하는 것일까.  <132쪽>  


  결혼 후 아이를 낳은 김지영 씨는 양성평등을 위한 법과 제도들이 유명무실한 느낌을 받는다. 누군가는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의 성을 따른 이름을 가졌고, 육아휴직 후 다시 직업 현장에 복귀하기도 하겠지만 다수가 아닌 소수라고 느껴진다. 주어진 법과 제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들이 해당하는 다수로부터 실행된다면 사회 내 "문화"로서 자리 잡겠지만, 과도기인 지금은 이전의 관습들이 김지영 씨를 비롯한 "엄마"들의 발목을 잡는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무척 공감했다. 결혼과 함께 달라지는 것들에 대한 적응은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요구된다. 맞벌이가 대세이긴 하지만 여의치 않으면 여자가 아이와 집안 일을 전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자는 태어난 후 대략 25-35년 뒤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가정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삶을 숙명처럼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일까? 김지영 씨의 어머니인 오미숙 씨처럼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나 자영업을 하면서 경제활동을 계속 할 수 있겠지만 그것들은 원래 바라던 것이 아닌 생계 유지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환갑이 넘으신 나의 어머니 역시 가정을 위해 학습지, 보험, 화장품, 다단계, 카드 등 내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일하신다. 그 일들은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바라던 일들이 아니었다. 단지 가정의 생계 유지를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한 일들이고 그 일들에 자기 자신을 억지로 적응시킨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 마음 한쪽이 아프고 이 아픔은 평생 가시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남편이나 자식의 꿈에 아내의 꿈이 희생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꿈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고 서로의 꿈을 존중할 수 있을 때 결혼과 가족이 의미가 있다. 그 반대라면 혼자 사는 것이 더 낫다. 



  책을 읽으면서 김지영 씨가 겪은 일들과 주변 사람들의 반응들에 대한 원인을 생각해 보았다.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에서는 국민 누구나 "주인"이다. 여기에는 성별을 포함한 그 어떤 차별들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주인"들이 차별 대우를 받는 이유는 경쟁과 효율을 당연시 하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그것을 정당화시키기 때문이다. 공무원이나 공기업이 아닌 사기업에서 남녀 간 근속연수는 극명한 차이가 있고 당연히 연봉에서도 차이가 난다. 채용 담당자는 미혼 여자들을 선호할 것이고 채용 후 결혼과 그 이후를 고려하여 업무에 배치될 수 있다. 그녀들이 출산 후 육아휴직을 쓰더라도 복귀시에 입사 동기 남자들은 자신들보다 더 많은 연봉과 높은 직급에 있을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상황은 자연스레 여자들 스스로가 일을 그만두게 만드는 기업의 압박일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는 성의 상품화를 가속화하여 여성 인권의 가치를 위협한다. 음란물은 이제 어디서나 볼 수 있게 되었고, 유출된 개인 영상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된다. 특히 의도적으로 제작되는 "몰카"들이 성행하여 여자들이 몰카로부터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장소가 거의 없다. 이와 반대로 일부 인터넷 개인 방송들에서 여성 BJ들은 자신의 몸을 수단으로 돈을 벌기도 하고 온, 오프라인에서 조건 만남들이 이루어진다. 즉 예나 지금이나 여자의 몸은 화폐의 가치를 가졌고 그것을 이용하는 소비 대상은 남자들이다. 여기서 생긴 성적 판타지들은 남자들이 여자들을 성적으로 희롱하거나 폭행, 더 나아가 여성 인권의 가치를 낮게 보는 직, 간접적 근거이자, 여성에 대해 왜곡된 생각들을 갖게 한다. 이것은 아주 오래된 여성 인권 문제이자 사회 문제이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난제이다.


  이러한 현실들에 저항하는 여자들은 힘겨울 수 밖에 없다. "#MeToo" 운동은 여성 인권 신장에 기여했지만 소수의 고발들이 중심이 되었고, 시대를 초월하여 유행처럼 반복된다. 나는 사회 내에서 자본주의의 가치가 민주주의의 가치보다 우선된다면, 여자들이 고통 받는 시대는 계속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들은 삶의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피해자가 되어 있을 것이고, 자신이 피해자인 것을 알게 되면, 그 피해에 대해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주변 사람들과 사회에 대해 불만과 아쉬움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만약 그 불만과 아쉬움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다수의 것이라면, 그것들은 사회 안에서 공론화 되어 해결을 모색하는 사회 운동이 될 수 있고, 개인과 사회 의식의 변화도 가능할 것이다. 


  자본주의의 적폐들을 민주주의의 가치들로 대항하여 청산해야 한다. 최근 활발한 페미니즘 운동들은 피해 받은 여자들과 그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연합된 사회 운동들로, 사회 구성원들에게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과 고민을 갖게 했다. 물론 일부 페미니즘 운동들은 극단적이고 감정적인 면들이 있고 그런 운동의 끝은 집단 이기주의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러한 운동들의 취지들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고, 때에 따라서는 그 극단성과 비논리성을 완화해 줄 사회적 소통 역시 필요하다. 즉 양성평등과 여성 인권 신장은 상처 받은 여성들에 대한 공감과 위로에서 시작되고 발전된다.


  개인적으로 페미니즘 운동이 여성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더 활발했으면 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김지영 씨보다 더 어려움을 겪는 여자들이 있다면, 아마도 여성 장애인들일 것이라 생각한다. 얼마 전 뉴스를 통해 알게 된 여성 장애인들의 어려움들은 실로 안타까웠다 (관련보도: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617952). 가장 낮은 단계에서 시작해서 가장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사회운동의 기본 방법론이라면, 나는 "여성 장애인 권리 보장"이 페미니즘 운동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나 역시 이것을 비롯한 페미니즘 운동들과 그 취지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표할 것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