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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무샤] "그림자란 실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거다."

EAST-TIGER 2020. 8. 27. 08:44

바람이 불고 흐린 날에는 일본 영화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근래에 "언젠가 봐야지" 하면서 미뤄두었던 영화들을 보고 있다. 일본 영화계의 거장 Kurosawa Akira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본 것은 <라쇼몽>이었고, <7인의 사무라이>와 <도라! 도라! 도라!>는 외장하드에 저장되어 있다.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 정책으로 Kitano Takeshi 감독의 영화 <하나비>가 12월에 개봉하고 이후 Kurosawa Akira 감독의 <카게무샤>가 개봉했었다. 두 영화 모두 한국에서 흥행하지 못했지만, 각각 베니스 영화제와 칸 영화제에서 황금 사자상과 황금 종려상을 받은 명작들이다. 특히 <카게무샤>는 Kurosawa Akira 감독의 팬이라고 자처하는 George Lucas 감독과 Francis Ford Coppola 감독이 제작에 참여했다. 

 

"움직이지 마라, 산은 움직이지 않는다." 

 

3시간 정도의 러닝타임과 시대극에 걸맞은 스케일, Kurosawa Akira 감독의 흥미로운 연출들 등 여러 가지 의미로 대작이다. 롱테이크가 많기 때문에 다소 지루할 수 있지만, 미술과 영상미를 돋보이게 한다. 특히 말을 탄 전령이 성문을 지나 대전 (大殿)에 드는 장면들과 정찰병들 간의 대화들은, 군법 (軍法)이 영화화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많은 영화 평론가들이 인상적으로 본, 카게무샤가 신겐과 조우하는 꿈은 , 이 영화의 주제와 그 의미를 요약한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맡은 배우들의 연기는 고증에 충실했다. 직설적이고 대담한 노부나가와, 신중하고 침착한 이에야스의 모습들을 영화에서 간간이 볼 수 있다. 또한 일본 전통 연극인 노가쿠(能楽)와 오다 노부나가의 아츠모리 (敦盛)를 볼 수 있기에, 영화 한 편이 종합 예술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림자란 실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거다."

 

픽션이지만 노다 성 전투 중에 성에서 나오는 피리 소리를 듣다가 도쿠가와의 병사에게 신겐이 저격을 당하고 죽게 되어, 신겐의 카게무샤가 3년 동안 신겐의 삶을 산다는 것이 이 영화의 주 내용이다. 실체와 그림자 간의 간격이 부분적으로 좁혀지거나 비슷해질 수 있지만, 완전히 같아질 수 없기에, 다케다 군의 비극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신겐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용병술과 전략을, 그의 아들 카츠요리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수행하는 것도, 감독이 연출한 신겐의 그림자였다. 실체가 되고 싶었던 인간과 실체로부터 계승된 정신은 실체가 없는 이상, 영원히 그림자일 뿐이다. 이것은 마지막 장면에서 신겐의 용병술인 "풍림화산" (風林火山)에 맞춰 공격하는 다케다 군이, 노부나가 군의 조총에 완전히 궤멸됨으로써 증명된다.      

 

"산()은 한 번 움직이면 모든 게 끝난 것이오."

 

영화를 보면서 Francis Bacon의 우상론 중 "극장의 우상" (The idols of the theater)이 떠올랐다. 권위가 종교가 될 때 독재와 맹목이 가능하고, 독재와 맹목만큼 통치가 쉬운 체계와 방법도 없다. 죽은 사람이 가진 권위를 산 사람이 따를 수 없고, 바위를 가를 수 있는 날 선 검이라도 50m 떨어진 목표물을 맞출 수 있는 낡은 총이 더 유익하다.

 

Youtube와 포털 사이트들에 편집된 기사들을 보면서, 수많은 그림자들이 어떤 실체가 되려는 듯 거짓 권위들을 내세우며 보는 사람들을 현혹하려 한다. "나"는 "나"로서 실체이다. 다른 그림자들이 "나"를 모방한다고 해서, 내가 다른 "나"들의 그림자가 된다고 해서, "나"가 달라질 수 없고 살아 있는 한 "나"의 그림자가 사라질 수 없다. 모방된 "나"들과 그 그림자들은, 언제나 그런 것들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먹잇감이고 허무한 추종이 될 뿐이다.

 

실체 없는 권위와 모방은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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