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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라의 계곡] 누가 그들을 전쟁으로부터 구원할 것인가?

EAST-TIGER 2020. 7. 17. 20:48

 

미국 내에서도 이라크전과 파병에 대해 끊임없는 논란이 계속되는 시점에서,
드디어 미국 영화계도 이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냈다.
영화는 보는 이들로 재미와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사회문제나 의식들을 계몽시키거나 대안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2001년 9. 11 테러 이후 시작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은,
쉽게 끝나는 듯했지만 8년이 지난 지금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전쟁 시작부터 지금까지 동맹국들의 파병을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으니
세계 최강국임을 자부했던 미국은 스스로 국가 위신을 떨어뜨렸고,
그 피해는 미국인들에게 고스란히 직결됐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이라크전 참전 중인 한 병사의 가정을 통해서
전쟁이 주는 피해와 그로 인한 미국 사회의 문제점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국기가 뒤집혀서 날리는 게 무슨 뜻인지 알아요?"
"아뇨"
"국제 조난 신호예요."
"설마요?"
"정말로"
"정말 많은 문제가 있으니 우리를 좀 구해주세요.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지옥에서도 기도하는 사람이 없어요."


퇴역군인인 행크는 군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며 살고 있다.
그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는데 모두 아버지를 따라 현역 군인으로 입대했다.
그러나 장남 데이비드는 훈련 도중 사망했고, 차남 마이크는 이라크에 파병되어 전쟁에 참전 중이다.
어느 날 행크는 부대에서 마이크가 귀국했고 외출한 뒤 부대에 복귀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걱정된 행크는 아들을 찾아 부대로 향하지만 아들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며칠 뒤 참혹하게 주검으로 돌아온 아들.
행크는 아들의 뜻밖의 죽음에 주변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에 들어간다.

 

 

"내 아들은 지난 18개월 동안 거지 같은 곳에 민주주의를 심고 이 나라를 위해 봉사했소."


<도망자>, <맨 인 블랙>,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토미 리 존스(Tommy Lee Jones).
간간히 액션 연기와 침착하고 냉소적인 연기를 많이 선보였던 그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이제 그의 내면과 감정연기를 보고 있자니 예전에 그가 출연했던 영화들이 생각났다.
비록 그의 액션과 소름 돋는 카리스마적인 연기를 보지 못하지만 여전히 최고의 배우이고
이번 영화에서도 그의 이름에 걸맞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맨 오브 아너>의 샤를리즈 테론(Charlize Theron)은 당찬 여형사역을 맡았고,
약간 마른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여전히 아름다웠고 연기 또한 의문의 여지가 없다.


<델마와 루이스>의 수잔 서랜든(Susan Sarandon)은 그의 이름에 걸맞지 않게 짧게 출연했지만,
행크의 아내 역으로 훌륭한 감정연기를 보여주었고 이제 그녀도 어느새 60세가 넘었다.


<아메리칸 갱스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조시 브롤린(Josh Brolin)은 특별출연에 가까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폴 해기스(Paul Haggis) 감독은,
<이오지마에 온 편지>와 <아버지의 깃발>등을 통해서 전쟁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이해한 것 같다.
그는 주로 전쟁의 한 복판보다는 주변과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예리한 눈으로 관찰했다.

 

 

"이라크 같은 곳엔 영웅을 보내지 말았어야 했어요."


전 세계에 교양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개인적으로 10명 중 5명 이상은 잘못된 일이라고 말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통해 너무 많은 것을 잃었고 그것을 복구하고 되찾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 흘렀다.
실제로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 감독의 <화씨 9/11>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파병된 병사들은 전쟁을 통해서 점차 반인륜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았고,
포로와 약자에 대한 인정과 자비는 희미해져 갔다.
실제로 미군들이 포로들을 학대하고 성적 수치심을 주는 사진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 전쟁이 무척이나 잘못되었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전쟁터는 선량한 사람을 악인으로 만들기 쉬운 곳이며, 악인을 영웅으로 만들기도 쉽다.
그곳에서는 오로지 승리를 위한 반칙과 승리자의 만행만 존재한다.
아쉽게도 영화에서 나오는 병사의 말처럼 그곳에 핵폭탄이 떨어져
모든 것이 가루가 돼야 이 전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날 밤, 마이크가 칼을 쥐었고 내가 들판에 남았을 수도 있었죠."


평화를 위해 전쟁이 필요하다는 말을 아주 부인할 수 없다.
인류의 평화는 전쟁을 통해서 이룩할 수 있었으니까.
얼마 전 노벨평화상을 받은 오바마도 평화를 위해서 전쟁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전쟁을 통해 평화를 이룩했지만, 전쟁이 남긴 상처들은 강력하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군 복무를 마쳤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지만,
군대라는 곳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
특히 모병제가 아닌 징병제인 우리나라는 더욱더 그렇다.
그들의 인성이나 적성은 솔직히 크게 상관없고
공통적으로 약 2년의 시간만 지나면 자동적으로 전역을 한다.
그러기에 각 병사들의 심신이나 의지에 상관없이
전역하는 그 날까지 모두가 한 생활관에서 공동생활을 하게 된다.
다들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 단체생활을 통해 서로를 도울 수 있다고 좋은 취지로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단체생활이 익숙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내성적이거나 심약한 병사들은
진정 하루하루가 힘들고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 군대이다.
또한 계급사회에서는 상명하복이 당연한 의무이다.
그렇다면 이미 병사들의 인권이란 사실상 무늬뿐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요즘 우리나라 군대는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편해진 것은 결코 아니다.
군대는 엄연히 남성 위주의 사회상이고 웃음과 기쁨보다는 슬픔과 우울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하물며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군의 군부 상황은 어떨까?
총탄과 폭격이 난무하여 자신과 옆 전우들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인권이나 인성, 자비심을 기대하기에는 너무 큰 기대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서 포로들은 좋은 먹잇감이다.
인간 본성이 가진 폭력과 잔인성은 전쟁에서 표출되기 너무 쉬우며,
스스로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침없다.
누가 그들을 전쟁으로부터 구원할 것인가?
아쉽게도 지구의 종말이 오지 않는 이상 이 땅에서 전쟁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2009.12.19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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