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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 日記/One Sweet Day

..알고 있었을까?

EAST-TIGER 2015. 5. 4. 03:03


근래에 효성이와 자주 대화한다. 

대화가 끝나고 그 내용들을 돌아보면

"와.. 언제부터 이런 주제들로 대화하게 되었나..?" 생각하게 된다. 

대학교 1학년 때 만나 대화했던 주제들은 

주로 즐겨 듣는 음악, 신학 또는 학교, 동기들에 관련된 것들이었고,

그 주제들은 10년 넘게 등장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비중이 줄어든다. 

대신에 취업이나 결혼, 정치, 사회 등등.. 

점차 다른 주제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비중있게 대화에서 다루어진다.


우리는 함께 보냈던 20대 대부분을 사진으로 남겨 놓았는데,

사진들 속에 있는 우리의 미소와 표정 그리고 자세만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다, 효성이의 표정은 이전보다 많이 완화되었다.

2015년 봄은 내게 무척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한다. 

그 생각들의 일부는 내가 평소에 자주 했던 생각들이 아니었고, 

다른 일부는 자주 생각했지만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나는 근래에 나와 친하거나 비슷한 삶의 궤적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 

전혀 다른 삶의 궤적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친해지고 대화를 많이 나누고 있다. 

그 대화들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마음의 가난'과 '불편한 동의'였다. 

그러한 느낌으로 대화들을 하다보니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생각들의 방문을 허용해야 했고,

그런 생각들에 빠져들자 몸과 마음이 게을러지고 나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들은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무익한 듯 하지만,

그 언젠가 사람들 앞에서 이 경험들의 동기와 당위, 그리고 필요에 대해서 말할 날이 있을 것이다. 


사람은 먼저 스스로 자신을 정의함으로써 정체성을 갖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형성하기도 한다. 

남의 떡이 커보이고 남이 잘 되는 것에 불안해하며 힘겨워 하는 인간의 심성은, 

'잔인한 경쟁'과 '끊임없는 자기계발' 행위들을 통해 현실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자발성보다 외부의 '너'들로부터 동기를 부여 받는다.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주변에는 온통 경쟁과 자기계발을 유발시키는 '너'들이 널려 있고, 

그 '너'들은 가깝게 또는 멀리 있지만 어쨌든 '나'를 잠 못 이루게 하고 불안하게 한다.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특히 딱 내 나이 전후로해서 대다수가 이 끈끈한 고리에 연결되어 있다. 


나는 근래에 어떤 '계획'이라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일 예배 후 사람들과 함께 한 저녁 식사에서 호림의 아내는 내게 물었다. 

"언제 결혼할 건가요? 그리고 공부는 언제 끝낼 생각이세요?" 

호림의 아내는 나보다 한 두살 많은 여자였지만, 

나는 그녀의 질문들이 무척 철없다고 느껴졌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미 나보다 먼저 유학을 시작했고, 

한 아이의 어머니이자 그럭저럭 관계를 맺은 친구의 아내였다.

그러나 그녀의 억양과 뉘앙스에서 나온 그 질문들은 

그러한 사전 지식들을 무색하게 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웃으며 질문에 걸맞는 대답했으나, 

대답의 끝에서 더이상의 대화를 하고 싶지 않는 나의 의지도 넌지시 표현했다.

다행스럽게도 알아들은 것 같았고 얼마 후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해진 것들이 없기에 삶은 괴롭고 즐거울 수 있다. 

그리고 언제라도 괴로움과 줄거움에 의해 삶은 기괴한 형태들로 변화를 거듭한다. 

나는 괴로움의 끝에서 삶을 포기하여 스스로 죽음을 택하거나, 

누군가의 손에 죽기를 바랄 수도 있고,

즐거움의 끝에서 오직 나만이 특별하고 존귀하다는 착각에, 

수많은 적들과 유혹, 욕망들을 만날 수도 있다.

이러한 삶에는 특별한 책임과 의무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결혼을 하게 되고 유학을 마치게 되어 일을 시작하면, 

필요 이상의 괴로움과 즐거움이 찾아와 나를 아주 미치게 만들 것이다. 

그것들은 결코 내가 지내고 있는 지금의 날들보다 평화롭고 고요하진 않을 것이다.


나는 바보같은 사람 앞에서 조금 바보가 되고, 

생각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 앞에서 더 생각있게 행동한다. 

나는 세상에 바보들이 많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너무 많은 생각들이 어설프게 나타나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강제적으로 각인시키는데, 

결국 그 어설픈 것들에 사로잡힌 사람들과 나는 승부를 내야 한다. 

문제는 그들 중에 혹시 내 아내, 자식, 친구들이 있을까 걱정된다. 

나는 그들 앞에서는 꽤나 바보스럽고, 바보스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남과 이별이 나이가 들수록 쉬어지고 예전처럼 힘들지 않다. 

이것은 자기 보호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고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이다.


나와 효성이는 알고 있었을까?

우리가 이러한 주제들로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게 될 줄을..?

언제 다시 서로 만나 사진을 찍을 것인가? 

그때도 철저히 우리 둘일까? 

아니면 우리 곁에 누군가가 더 서 있을까? 

...


나는 머리를 짧게 잘랐다. 

그리고 마음을 정돈했다.

비 내리는 밤은 언제나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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