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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편안히 밥 먹자" 본문
금요일 아침에 눈을 뜨면서 접한 비보(悲報).
대학교 학과 동기 성민이는 전도사로 사역 중 심장마비로 나와 동기들 곁을 떠났다.
죽음 앞에서 나이와 신분은 의미가 없다지만,
누구보다 신체적으로 건강했고 정신적으로 의지가 강했던 성민이의 죽음은,
동기를 잃은 슬픔에서 비롯된 애도보다 그의 죽음에 대한 의문이 먼저 들었다.
그러나 속속 도착하는 동기들의 메시지와 반듯하게 적혀진 장례식장 주소.
그것들은 내가 잠시 가졌던 의문들을 향해 날아와 베어버렸다.
성민이가.. 더이상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일의 결과가 명백한 '사실'로 많은 사람들에게 동의되는 순간,
의문과 의심들은 힘을 잃는다.
나는 눈을 감고 말했다.
"너.. 이러는 거 아냐.."
그와 함께 한 기억들의 내용은 자세하진 않지만 뚜렷하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SLUR 합주 연습이 한창이었던 어느 겨울 날.
합주 연습 후 나는 고향에 가지 않고 사역과 아르바이트를 위해
기숙사에서 겨울방학을 보내야만 했던 석원이 형과 성민이와 함께 점심을 같이 먹었다.
다들 반찬과 밥이 부족해서 서로가 가진 반찬과 밥을 꺼내어 나누어 먹었고,
나는 그들 가운데서 '무상급식'을 했다.
그리고 식사를 하면서 평소에 서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신학적 고민들에 대해 나누었고,
견해 차이로 인해 성민이는 식사를 중단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 가버렸다.
서로 견해 차이는 있었지만,
이후 그는 스스로 자신의 신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실제로 삶에서 보여 주었다.
비록 그러한 그의 삶이 남들이 보기에는 거부감이 들고,
다른 견해들에서 비롯된 그의 민감한 반응이 부담스러울 수 있었겠지만,
그 역시 남들의 우려와 거부감, 또는 오해에 스스로 맞서야 했기에,
그는 자신이 말하고 스스로 믿는 것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진실했다.
그리고 유학 오기 전에 만난 그는 분명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가난했던 그의 형편만큼 그의 마음도 무척 가난했다.
그래서 그의 삶은 누구보다 하루하루 '천국' 같았을 것이다.
돈과 형편에 따라 삶과 신앙의 태도도 달라지는 위선적인 삶들 속에서,
매 주말마다 아버지가 사역하시는 전라남도 완도까지 갔다 오고,
이름 모르는 독거 노인들과 장애인들에게는 직접 만든 도시락을 주었으며,
야간 자율학습이 끝난 학교 앞에서 기타를 치며 찬양을 부르고,
기숙사에서는 배고픈 후배들에게 요리도 만들어 주었던 성민이.
가난함을 부로 삼았으니 그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신의 은혜'였을 것이다.
갑작스럽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늘 있었고 있어야만 했던 어딘가에서 마감했다.
그러나 작년에 결혼한 아내와 아직 태중에 있는 아기,
그리고 나를 비롯해 그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말도 없이.
하루 종일 생각해 보았다.
나와 성민이는 친한 '사이'일까? 아니면 그냥 '동기'일까..?
친하다면 얼마만큼 친했을까..?
유학 온 이후로 특별히 서로 안부를 주고 받진 않았다.
그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 "축하해"라는 말도 못했다.
그 언젠가 한국에서 다시 만났더라도,
우리가 그렇게 친하게 진한 애정표현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의 삶 어딘가에서 만났다는 사실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사건이었을 것이고,
나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내가 가진 신념을 삶을 통해 실천해야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살고 다시 만났다면,
지난 날의 추억과 시간들이 서로를 이어주는 끈끈함이 되어 있진 않았을까..?
그것을 상상하니 마음이 아프다.
하루종일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짧은 탄식들을 뱉는 나를 보며 깨달았다.
우리는 친한 사이인지 아닌 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살아온 날들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 중에,
꼭 기억해야만 하고 기억되어져야 하는 '의미'있는 사람이었다.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미소와 목소리.
그것만으로도 나는 평생 그를 기억할 수 있고 잊지 않을 것이다.
너무 빨리 장례 절차가 진행되어 이미 한 줌의 재로,
해병으로 복무했던 근처 산 어딘가에 뿌려진 그의 흔적들.
남겨진 사람들은 슬퍼할 틈도 없이,
아니면 슬퍼하더라도 강제적으로 다가오는 날들 속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그 슬픔은 다른 슬픔으로 덮어지거나,
연속되는 일상의 전개와 그 속도, 무게에 묻혀 희미해진다.
왜 죽고나면 이렇게 사라지는 것일까?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이 이렇게 끌려가듯 떠나는 건가?
그의 죽음을 단지 신의 단호한 의지으로 생각하고,
"그가 더이상 '여기'에 없다"는 사실을 무조건 믿고 따라야 하는 것일까?
신의 형상과 지성을 가진 인간은 참으로 무력하고 어리석다.
해명될 수 없는 진실이 되어버린 이 비밀 앞에 나는 또 다시 무릎을 꿇는다.
그러나 이미 나보다 앞서 간 친구들을 기억하며 만들어 놓은 내 마음 속 추모공원에,
그는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우리 다시 만나면.. 그때는 편안히 밥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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