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더 성숙된 곳으로.. 본문
Happy New Year!
Frohes neues Jahr!
Einen guten Rutsch ins neue Jahr 2014 wünscht!
2013년이 몇 시간 남지 않았다.
서른이 넘으면서부터는 '나'와 나를 둘러싼 '주변'들이
필요 이상으로 압박하여 무슨 일이든 조바심이 들게 만든다.
그리고 약간의 실수나 시행착오들은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심리적으로 왠지 더 크게 느껴져 자꾸 더 자책하려 든다.
근래에는 너무 진지한 대화와 변론하기를 좋아하여
스스로 자제 중이다.
예전에는 상황과 사람에 따라 조절이 가능했는데,
요즘의 나는 정말 내가 봐도 피곤스럽고 분투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것들이
결국 앞으로의 내 삶이 될 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미술가는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일이고
음악가는 오선지를 보는 순간 일반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여러 가지 악상들을 떠올릴 것이다.
의사는 싫든 좋든 진료 시간에 사람들을 치료해야 한다.
결국 스스로 어떤 전문 영역에 몸과 마음을 담고 있다면,
그 영역에서 그 영역과는 관계 없는 남들보다 더
정열을 바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보고 누군가가 그들로 하여금
그 일들을 멈추라고 하거나
자제하라고 말하는 것은,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과 같다.
나는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여러 가지 주제들이나 아는 것 만큼 남들과 대화하며,
때에 따라 글을 쓰고 정리된 소신들을
행동하는 것에 정열을 쏟고 있다.
그 외에 내게 붙여진 직함이나 이름들이 있겠고,
교회 안과 밖을 오고 가겠지만,
어디에 있든지 나는 '계몽가'의 삶을 살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무덤에 들어가거나 신을 뵐 때까지
생각하고 글을 쓰고 대화하며
실천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이러한 것들은 아마 내가 일할 수 있는 힘과
왕성하게 생각할 수 있는 나이까지 계속될 것 같다.
이게 어떻게 보면 사람을 무척 힘들게 하고
상대적으로 기쁘게 하기 보다 우울하게 만든다.
내게 '나이가 든다'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누구 마음대로 365일이 지나면
무조건 한 살을 더하여 했나?
왜 우리는 나이에 따라 서로를 판단하고
늙고 젊음을 말할까?
현대 사회에서 '나이'란
합법적으로 공공의 차별을 유도하는
아주 '불쾌한 조건'이다.
그러나 나는 내 '나이'를 사랑한다.
왜냐하면 '나이'를 먹음으로써
점점 깊어지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 인간의 삶에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개인에게 주어진 삶과 그 영역 속에서 깊어짐을 느낀다면,
그것은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문득 깨달아지는 일종의 보상이다.
그러므로 깨닫지 못한 자는
여전히 나이에 걸맞지 않은 그 어딘가에 머물 것이고,
깨닫는 자는 진정 그 나이에 맞는,
또는 더 성숙된 곳으로 나아간다.
군대 이후 처음으로 타지에서 맞는 새해.
8시간 먼저 새해를 맞는 '거기' 있는 그대들.
8시간 나중에 새해를 맞는 '여기' 있는 그대들.
모두에게 새해는 신의 축복과 은총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늘 아침마다 신께 우리 모두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좋든 싫든 우리가 서로를 알고 만났다는 것에
감동하고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3.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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