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몸을 흔들어야 잡다한 생각들도 털어진다 본문
독일로 돌아온 지 일주일이 조금 넘었지만,
긴 시간이 지난 것처럼 생활은 익숙하다.
떠날 때의 굳은 의지는 생활의 익숙함으로 약해진다.
항상 긴장하고 진지한 삶을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생각하고 고민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는 않는다.
낮은 충분히 짧아졌고 밤은 충분히 길어졌다.
비가 오는 날이나 흐린 날에는 날이 새지 않은 듯 세상은 어둡다.
가을이 지나간 풍경들 속을 걸을 때면,
은은하게 단풍이 든 낙엽들에도,
몇 잎 남지 않은 시린 가지들에도,
말라버린 수로 위에도,
겨울이 내려 앉아 있다.
거의 매일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어머니가 해주신 반찬들로 식사는 이전보다 풍성하다.
유학 초기 때는 부모님이 자주 우편으로 생필품과 반찬들을 보내 주었지만,
일정 시간이 지난 뒤부터는 보내지 말라고 부탁드렸다.
여기나 거기나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들이 있다.
여기에 거기의 방식들을 비슷하거나 같게 할 필요는 없다.
여기나 거기나 국화가 자라는 방식은 같다.
이러한 풍성한 식사는 감사함과 부담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될 수 있으면 빨리 그 반찬들을 다 먹으려고 한다.
날씨가 추워졌고 집 주변에 공사가 한창이라 달리기가 어렵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부터 공사를 했었는데 해를 넘길 것 같다.
그래서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운동들을 하고 있고,
무엇보다 영양을 고려한 소식을 한다.
내게 달리기는 운동만이 아니라 잡다한 생각의 탈곡기였는데..
몸을 흔들어야 잡다한 생각들도 털어진다.
이전보다 더 논문 쓰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한 문장에서도 의미를 뚜렷하게 드러내야 할 부분과,
천천히 드러내야 할 부분들이 있다.
그러나 문장과 문장들이 이어질 때는 의미가 분명해야 한다.
그래야 전체가 되었을 때 강력한 전달력을 가진다.
나는 글 쓰는 방법을 유학 후 석사 첫 학기 때 배웠다.
글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글 쓴 사람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어야 좋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은 감정과 기분에 자신을 맡기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연륜과 선입견에 자신을 맡기는 경향이 있다.
나이에 상관없이 지나친 의심과 두려움은 일과 관계를 망친다.
그래서 아무리 사랑해도 계속 사랑을 확인하려 하고,
아무리 친해도 어느 순간에는 그 친밀도를 느끼고 싶어 한다.
어느 자리에서든 자신의 존재감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한다.
나는 사랑하는 그대들에게 매 순간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직접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그대들에게 하는 무슨 말이나 행동이든,
"사랑한다", "고맙다"는 뜻이다.
그리고 내가 직접 "사랑한다", "고맙다"고 말하면,
그것은 더할 수 없는 내 진심이다.
그런 곳에서 나의 존재감이 있다.
오랜만에 참석한 Kolloquium이었지만 분위기는 이전과 비슷하다.
이번 학기는 Schelling의 <자유론>을 함께 읽으며 토론하고 있다.
지도 교수님과의 대화는 짧았지만 분명했고 준비한 선물을 드렸다.
석사 때와 마찬가지로 포기하지 않으면 결과는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요새는 Hegel에 관심이 생겼다.
어떤 사람이 싫어지게 되는 계기가 있다.
친하든 사랑하든 그 계기로 인하여 그 사람이 조금씩 싫어진다.
그러다가 물에 빠진 휴지처럼 빠르게 싫어지거나,
물에 젖은 수건이 마르듯 다시 좋아지더라도,
이전처럼 좋아지기 위해서는 뭔가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 너무 많은 내 이야기들과,
내 세계의 "자유 이용권"을 주어 마음대로 있도록 허락했을 때,
깊어짐과 함께 경우에 따라 불쾌감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나의 과거를 현재로 받아들여,
나의 심중을 떠보거나 공박한다.
또 어떤 사람은 내게 묻지도 않고 나를 오해한다.
그럼 그대들을 향한 그동안의 내 사랑과 관심 그리고 배려는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자기 스스로가 모순적인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내게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내 진실한 마음을 욕되게 한다.
나는 내 그릇된 말과 행동들에 대한 반성에 주저함이 없다.
비겁한 침묵과 망상에 따른 말과 행동들로 나를 괴롭게 한다면,
그때부터 나는 그대들이 싫어진다.
러시아 어머니를 둔 중학생 아이가 "친구"라고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아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그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은 그 중학생 아이가 입던 옷을 벗겨 자신이 입었다.
어느 역 근처에서 술 취한 남녀들의 폭행 시비가 있었고,
자연스럽게 그 시비가 여성 혐오에 따른 폭행인지 아닌지 논의되고 있다.
술 취한 20대 남자가 폐지를 줍던 70대 여자를 구타했고,
웹하드 사장은 자신의 심기를 건드린 직원을 구타하여 동영상으로 남겨 자존감을 고취했다.
40대 아파트 입주민은 "주인"이었고 70대 경비원은 "개"였다.
수능이 어려워진 이유들을 그런 문제들을 낼 수밖에 없는 상황들에서 찾아야 한다.
한국 땅에는 산이 차지하는 면적보다 아파트와 상가가 차지하는 면적이 더 커질 것 같다.
돈이 된다면 사막과 밀림, 세링게티 초원에도 아파트와 상가를 지으려 할 것이다.
출산율 저하로 유치원의 수는 지금보다 더 적어질 것이니 지금 폐원해도 손해는 아니다.
고시원을 "주택"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쩌면 평생 자기 집도 없이 살다가 죽을 수도 있다.
이 얼마나.. 잔인한 신세계인가?
귀국 후 오랜만에 참석한 독일 교회 예배에서 나는 신께 감사 기도를 했다.
어떤 대상에 푹 빠져 있어도 아주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은,
아마도 신이 나를 보호하고 있는 증거일 수 있다.
어둠이 빨리 찾아오면 고요함도 빨리 찾아온다.
노트북 돌아가는 소리와 키보드 소리,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소리들은 각기 다르지만 하나의 소리이다.
외로움과 그리움도 잠드는 겨울은 홀로 있어도 심심하지 않다.
별들도 숨겨버린 어둠 위에 달은 유유히 걷고,
먼 곳에서 켜지는 불빛들이 창밖의 지루함을 깬다.
결국 혼자 걸어가야 할 길이었나..?
올해는 직접 전화를 걸어 승희 누나의 생일을 축하했다.
어느새 둘째 아이를 갖게 되어 내년 초에 출산을 앞두고 있다.
누나의 나이가 만으로 40세가 되었다.
나와 누나는 10년 전에 대학원에서 처음 만났고,
2013년 12월에 신혼집이 있는 베를린에서 다시 만났다.
의료보험을 변경해서 더 이상 무료로 예방 치료를 받을 수 없다.
이제는 무조건 아파야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관용이가 생일을 맞이해서 짧게 대화를 나눴다.
인화 누나도 같은 날 생일이라서 짧게 대화를 나눴다.
작년처럼 이번도 한국에서 인화 누나를 만나려고 했지만,
내 의지로 인하여 그럴 수 없었다.
누나의 자녀들이 잘 크는 것 같아 좋아 보인다.
정효가 선물해 준 옷을 처음으로 입었다.
국화가 필 시기를 망설이니 초라해진다.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생명들을 실내로 들였다.
오랜만에 참여한 밴드 합주는 즐거웠다.
그러나 합주 후 버스가 끊겨서 집으로 되돌아 가는 길이 쉽지 않다.
여러 번 Ulrich에게 도움을 받는다.
Christian으로부터 안부 메일이 왔다.
여기도 이번 주부터 영하의 날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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