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나는 그들에게 "이방인"이다 본문
짧은 기간에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기분 좋은 만남들과 아쉬운 만남들이 있었지만,
그 만남들은 필연적이었고 충분히 이해될 수 있었다.
조용한 방문이었지만 떠나기 전은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그래도 한국에서 가을을 보낼 수 있는 즐거움에 감사한 마음을 가진다.
수요일 오전에 석원이 형을 만나러 경기도 양지에 갔다.
버스에서 내리자 석원이 형의 차가 보였고 형이 내려 나를 맞이했다.
우리는 서로 안았고 차 안에서 형수와 인사를 나눴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형의 차로 이동했고,
큰 공간에 비해 테이블 수가 적은 식당에서 오리고기를 먹었다.
식사를 하면서 우리는 서로 대화를 나눴다.
생기있고 지혜로운 형수의 말과 행동들은 내 기분을 좋게 했다.
식사 후 석원이 형이 식사값을 계산했고,
이것이 내 기억에 의하면 처음으로 석원이 형에게 얻어 먹은 식사였다.
다시 차를 탔고 신혼집 앞에서 형수를 내려준 후,
마트에 가서 포도와 물을 구입했다.
이것은 내가 계산했다.
신혼집은 아담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예상대로 위압감이 들 정도로 책들이 책장에 꽂혀 있었다.
형의 서재에서부터 거실까지 놓여진 책장들 곳곳에 추억들이 서려있다.
천천히 책장들을 둘러보았고 새로운 책들보다는,
기존에 형의 집에서 보았던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형의 서재에서 서로 읽고 있는 책들과 읽었던 책들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그사이에 형수는 다과를 준비했고 준비가 끝나자 셋이 함께 거실에 앉았다.
오랜만에 물과 물고기가 만난듯이 철학과 종교에 관한 대화들을 거침없이 나눴다.
형의 말들은 평소 배운대로 잘 길들여진 말들이었고,
나의 말들은 도발적이고 거친 말들이었다.
형수는 우리의 대화를 참을성 있게 들었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석원이 형이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아 기뻤다.
우리는 오후 6시 30분에 대화를 마쳤고 형과 나는 집을 나섰다.
사당역으로 가는 광역버스 정류장 앞까지 형이 차로 데려다주었고,
내리자마자 버스가 와서 짧은 작별인사와 함께 형과 헤어졌다.
또 언제 만나 오늘 같은 대화를 할 것인가..?
사당역에서 내려 전철을 타고 염창역에 도착했다.
염창역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고등학교 방송국 형들을 만났다.
성훈이 형을 제외하고 만날 수 있는 모든 형들을 만났고,
대화의 중심 주제는 "골프"였고 나는 조용히 형들의 말들을 들었다.
가끔 흡연을 하러 형들이 자리를 비우고 나와 재영이 형이 남았을 때,
옆에 있던 희곤이 형이 나와 재영이 형이 Facebook에 쓴 글들에 대해 말하며 평가를 했다.
"넌 좀 감성적이고 멋이 든 글들을 쓰는 듯 해."
희곤이 형은 내가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나중에 희곤이 형이 블로그 주소를 알려 달라고 했지만 알려 주지 않았다.
내 블로그 주소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직접 찾아야 한다.
우리는 밤 11시가 조금 넘어서 헤어졌고 자민이 형과 같은 버스를 탔다.
자민이 형이 먼저 내린 후 얼마 안 가서 나도 내렸다.
형들과 만나는 자리는 언제나 편하다.
이 만남에서 나의 걱정과 근심은 이상하게 없다.
그들은 나를 아끼고 나도 그들을 아낀다.
이 편안함도.. 또 오래 기달려야 느낄테지.
정효와 만나는 날들은 정해져 있다.
만나서 하는 일들도 다양하진 않다.
그것은 같은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가진 비슷한 점이 아니라,
성향상 그러고 싶은 것이다.
호기심과 감정에 이끌려 생각하고 행동하면,
순간의 행복과 만족에 모든 것을 거는 삶이 된다.
그런 삶을 겪어보고 고민했던 나로서는,
좀 더 지속적이고 확실한 행복과 만족을 구축하려 한다.
힘들지만 지치지 않고,
복잡하지만 어렵지 않고,
지혜롭지만 간사하지 않고,
당당하지만 오만하지 않고,
검소하지만 인색하지 않고,
달콤하지만 너무 달지 않고,
무리하지만 무모하지 않아야 한다.
정효의 말과 행동들에서 예전의 나를 추억한다.
금요일 저녁에 장미와 종로에서 만났다.
청계천 주변을 걷다가 독일식 이름을 쓰는 주점에 들어갔다.
독일 "Krombacher" 맥주를 수입하여 한 잔 당 만원에 가까운 돈으로 팔고 있었다.
독일에서는 삼천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팔리고,
더 맛있는 맥주들이 많아서 나 같은 경우는 잘 안 마신다.
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안주로 새우 요리를 시켰다.
지난 번 만남 때와 달리 장미의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남의 집 귀한 자식들의 삶은 우리 집 귀한 자식의 삶과 비슷하다.
맥주만 마셨는데 장미는 일찍 취해버렸고,
이후 그녀의 모습이 불안하여 대화를 멈추고 가까운 역까지 걸었다.
다행히 술이 조금 깨서 혼자 집으로 갈 수 있어 보였다.
살짝 비틀거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았고,
나도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역시 뒷모습을 보였다.
멋진 이별은 아니었다.
"사장님" 보경이를 만나러 가는 도중 애진이로부터 연락이 왔고 짧게 통화를 했다.
경복궁역에 내려서 그녀의 작업실까지 걸었고 문이 잠겨 있는 상가 건물에 서 있었다.
연락을 받고 내려온 보경이는 6년 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반가운 인사를 빠르게 하고 작년에 주지 못했던 작은 선물을 주었다.
그리고 세 가지 질문들을 그녀에게 했고,
그녀는 두 가지 질문들을 부정적으로 대답했다.
나머지 한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긍정적이었지만,
앞선 두 가지 질문들이 긍정적일 때 의미가 있었다.
우리는 6년 만에 만났지만 10분 정도 만나고 헤어졌다.
그녀는 여전히 자기 변명이 많았지만 자기 일에 대한 열정도 대단했다.
맨발에 삼선 슬리퍼를 신은 그녀의 발이 기억에 남는다.
전철이 끊겨서 택시를 탔고 신도림역에서 내려 83번 버스를 타고 소사역에 내렸다.
핸드폰 배터리가 5%만 남은 상태였기에 소사역에 내려서야 애진이와 연락을 했다.
날선 감정들이 느껴지는 그녀의 말들은 이해가 되면서 아쉬웠다.
새벽 2시쯤 학교 근처에서 만났고
근처 편의점에 들려서 마실 것과 그녀가 원하는 물품을 구입했다.
그녀의 집으로 가는 길에서부터 우리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어떤 말을 들은 순간부터 나의 걸음은 그녀보다 느려졌다.
애진의 집은 그녀의 성격만큼이나 깨끗했다.
화장실에 다녀온 후 애진이는 내게 어떤 차를 마실 건지 물었지만,
나는 물을 마시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서로의 자리에 앉았다.
작년에 애진이를 만나려고 했지만 서로 어긋난 일정으로 만날 수 없었다.
그러나 언제 만났든지 한 번은 생각해 봤을 질문이다.
"내가 언제 애진이를 마지막으로 봤을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뭔가 나를 많이 아는 듯 말하는 그녀의 말들에,
나는 점점 말수가 적어졌다.
묵직한 말들과 물러서지 않는 감정들의 충돌.
우리는 한동안 서로 빤히 바라보았고 이후 나의 시선은 흐트러졌다.
오랜만에 만나고 싶은 친구를 보아서 기뻤지만,
그 친구가 나로 인하여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대화는 일찍 끝났고 애진이는 내게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하라고 말했다.
나를 망설임 없이 첫 번째 제안을 선택했다.
가방에서 마실 것들과 물품을 꺼내서 식탁 위에 올려 놓았다.
내게 무슨 말을 하든 나를 바라보든 그렇지 않든,
나는 애진이를 바라볼 수 없었다.
그렇게 집을 나왔다.
내가 생각했던 만남과 이별은 아니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 학교 근처에서 역곡역까지 걸었다.
그리고 며칠 전 관용이가 내게 했던 말이 귀에 뚜렷하게 들렸다.
"유학을 했으면 잘 할 사람들이.. 왜 한국에 있을까요?"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역곡역으로 가는 길은 쓸쓸했다.
걷고 있는 거리들마다 추억들이 서려있다.
수 년간 사람들과 함께 걷거나,
혼자 또는 둘이서 걸으며 고민하고 사랑을 나누었다.
가끔은 땀을 흘리면서 뛰었고 감정에 상관없이 거리를 지나쳐야 했다.
걷다보니 오래 전 사랑했던 그녀의 집 근처에 이르렀다.
벌써 10년이 다 되었구나..
지나온 거리들에 어렸고 어리석었던 내 모습들이 보였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역곡역 근처에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토요일 오후 강남역 근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YES24 중고서점에서 책을 몇 권 구입했고 거리를 걸었다.
오랜만에 온 강남역 근처였지만,
좋은 기억들보다 안 좋은 기억들이 많아,
여전히 좋지 않다.
나와 상관없이 사람들은 즐겁다.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거리를 걷고,
함께 같은 음악과 영화를 듣거나 보고,
서로를 의지한 채 온기를 느끼며 있다는 것이 가져다 주는 행복감.
그 감정은 내 안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다.
이른 새벽에 강남역에서 잠실역까지 걷는 동안,
몸은 추워져 겉옷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비볐지만,
크게 웃으며 곧 다가올 그리움과 외로움을 잠시 밀어 놓았다.
현실에서는 가진 것 별로 없는 사람들이지만,
마음은 꿈꾸는 미래에서의 모습들을 상상하니 풍요롭다.
살아 있다면 평생 함께 하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평생을 함께 하겠으니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이 생각을 했던 그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새벽 5시가 되어서 집에 도착했다.
부모님과 함께 주일 예배를 드렸다.
지난주가 이번 한국방문의 마지막 예배라고 생각했으나,
이번이 마지막 예배가 되었고 새로운 달이니 성찬을 했다.
두 번의 성찬을 했다는 것은 한국에서 두 번의 새로운 달을 맞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배 후 교회 앞에서 서로 알아보는 사람을 만났고 우리는 서로 옅은 미소를 지으며 지나쳤다.
아버지 생신이라 집 앞 식당에서 장어를 먹었다.
친절하고 꼼꼼하게 장어를 구워주는 여 종업원에게 감사를 표했고,
남김없이 먹고 일어서니 움직임이 조금 둔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이미 수년째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께 생신 선물을 드리지 못했다.
내 생일도 아닌데.. 나는 왜 이렇게 많이 먹은건가?
아.. 부모님은 내가 잘 먹는 것이 그렇게 보고 싶었나 보다.
마지막이니까 무엇을 하거나 해야 한다는 생각은 약간 비장한 느낌도 갖게 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행해지는 일은 그 느낌과 기억이 어떤 방식으로든 어딘가 진하게 새겨진다.
서로가 근심 없이 자기 자신을 내어주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신뢰가 필요한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순간의 감정과 분위기에 이끌리기만 해도 가능할까?
여러 생각들이 무겁게 나를 스칠 때 절정에 이르렀다.
그리고 절정의 흔적들이 바라보며 물어본다.
"얼마나 믿을 수 있지?"
아홉 가지 좋은 일들도 한 가지 나쁜 일로 인하여 없던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잔인하구나.
"천륜"과 "사랑", "우정"이라 이름 붙이는 관계들이여..
동생과 다시 상의하여 출국 일정을 정했다.
Freude 부부는 나의 귀국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 "우리집"은 없고 "부모님의 집"만 있을 뿐이다.
지금 "나의 집"은 독일에 있다.
잠을 자는 동안 꿈을 잘 꾸지 않는데,
벌써 세 번의 꿈을 꾸었다.
화요일 저녁에 합정역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효성이와 만났다.
어느덧 그와 15년 동안 알고 지냈다.
작년보다 적게 만났지만 부족함을 느끼지 못한다.
"만남의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깊이가 중요하다."는 것을 여기서 또 느낀다.
2년 뒤에 다시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효성이를 만나고 싶다.
그리고 걱정없이 읽고 싶은 책들을 구입할 것이다.
"촛불혁명"이라고 불리던 대규모 시위는 대통령 하나만 바꿨을 뿐이다.
"혁명"이라면 사회 전 부분에서 새로운 법과 질서가 나타났어야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삶의 무게에 힘겨워 하고,
너무 힘겨울 때는 죽음을 택한다.
해안가 갯바위에서 발견된 세 살 난 아이는 지금도 엄마와 함께일까?
엄마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현실 속에 자기만의 현실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그 현실은 개인 취향이고 인간의 본성이다.
언제 현실이 녹록했던가?
서로의 몸은 다르지만 생각이 비슷해지니,
누구를 만나도 하는 말과 행동들이 비슷하다.
그래서 인간의 희망과 욕망은 공고해진다.
나는 그들에게 "이방인"이다.
피곤한 새벽이다.
그러나 한숨 자는 것도 오늘은 사치처럼 느껴진다.
크게 아쉽지는 않지만,
작은 아쉬움들이 생각이 머무는 곳마다 맺혀 있다.
나는 또 혼자 남겨진 날들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기억들과 내가 본 아름다운 풍경들을 떠올리며 주어진 일을 해야 한다.
회전목마에 올라탄 사람은 노래가 멈추고 타고 있는 목마가 멈춰야 내릴 수 있다.
나는.. 언젠가 이 회전목마에서 내려,
회전목마 자체를 부셔버리겠다.
인간의 삶은 그 자체로 소중하고 존중되어야 한다.
귀에서는 잠든 숨소리가 들리고,
나의 오른쪽 눈과 무릎에서 통증이 느껴진다.
나의 몸은 어쨌든 자야 하는 것인가..
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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