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악하고 나쁜 것이다 본문
늦가을로 접어드는 것일까?
아니면 벌써 초겨울일까?
점점 낮은 짧아지고 밤은 길어진다.
바람은 거세지고 기온은 떨어진다.
가끔 반바지나 반팔을 입은 남자들을 거리에서 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투를 입고 있다.
한국으로 올 때 외투를 챙겨오지 않아서,
아버지의 외투를 빌려 입는다.
거리에 떨어져 있는 노란 은행잎들.
건물들 사이로 지는 해와 노을.
추위를 잘 느끼는 나는,
따뜻한 그대를 꼭 끌어안는다.
원래 다음주 월요일에 만나기로 했었는데,
목요일에 정효를 만났다.
언제 천호역에 가봤던가..?
서울 강동권 최대 환승역인 천호역 대합실은 "노란 동그라미"였다.
활엽수 화초들 앞에 놓인 의자들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그 사람들 사이에서 정효가 나타났다.
정효가 정해놓은 장소로 이동했고 거기서 밤새도록 대화를 나눴다.
어색함에서 익숙함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쉽지 않지만,
자기만의 이야기들이 오고 갈수록 그 과정은 쉬워진다.
특히 나에 대해 이 정도를 알고 있으면,
관계에 있어서 이 정도까지는 허락할 수도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아직 학부생인 정효의 생각들에서 가끔 예전의 나를 떠올린다.
밤의 추위는 따뜻한 대화로,
낮의 빗소리는 안락한 휴식으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알아가기에 충분했다.
동생과 상의한 후 독일에 돌아갈 일정이 정해졌다.
예상보다 길어진 한국 방문이었지만,
지치고 공허했던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제 학위를 받기 위한 공부를 끝내야 한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학생"이었다.
이제는 내가 바라던 "자유인" 되고 싶다.
미국과 한국에서 프로야구 포스트 시즌이 한창이다.
기아는 벤치의 한심한 경기운영으로 경기를 망쳤고,
한화도 정규 시즌 순위에 맞지 않는 플레이로 넥센에 졌다.
그러나 넥센은 SK보다 전력면에서 약하다.
LA 다저스는 선수들의 개인 능력은 탁월하지만,
로버츠 감독은 지나치게 데이터에 의존하여 경기를 망치고 있다.
포스트 시즌은 정규 시즌과 다른 경기 운영이 필요한데,
로버츠 감독은 투수 운영에 있어서,
선발은 4회 이후부터 연속 안타 또는 연속 볼넷이 발생하면 거의 교체를 준비한다.
불펜은 더 가관인데.. "학습효과"는 전혀 없는 투수 기용을 한다.
결국 보스턴은 5년만에 월드 시리즈 우승을 했다.
책을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책이든 이해가 되어야 계속 읽게 되고 재미도 느끼게 된다.
하루에 한 권 이상 책을 읽는 사람들이 간혹 자랑처럼 소개되어지는데,
가끔 그 사람들이 하루만에 다 읽었다고 말한 그 책들이 무엇인지 알고 싶고,
그 책들에 대해 얼마나 이해했고 무엇을 느꼈는지 묻고 싶다.
물론 빠르게 읽을 부분들이 있고,
글이 쉽게 읽혀져 읽는 속도가 빠를 수 있겠지만,
책을 읽는 것에는 정성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책에도 사람의 생각과 삶이 담겨 있지 않는가.
내가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이유이다.
토요일 오후는 평안했다.
무엇을 하려는 것보다 그냥 함께 있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다.
혼자 있는 것이 익숙했더라도 둘이었던 기억들은 여전히 살아있다.
나이가 든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많이 듣고 꺼내는 단어가 "현실"이다.
왜 그렇게 "현실"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우리의 표정은,
뭔가 심각해지고 뭔가 우울해지며 뭔가 단호해지는 것일까?
현실 속에 자기만의 현실을 만들어 놓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평가하고 무엇을 개념짓는다.
어쩌면.. "현실"이라는 말로 자기 자신의 취향과 생각들을 합리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 "현실"도 자기의 것이 아닌 어디선가 보고 듣고 느낀 다수의 종합이 아닐까?
따뜻한 감촉을 느끼고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시간.
그런 시간이 비록 순간일지라도 그 순간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행복하다.
아.. "행복"이라는 단어를 오랜만에 1인칭으로 적는구나.
그러나 계속 삶의 순간들 속에서 질문되어져야 한다.
"나는 행복한 것일까..?"
잠실역에서 처음으로 토요일 밤 2호선 막차를 탔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을 읽었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어폰을 귀마개처럼 귀에 꽂아,
주위의 소리와 단절했다.
그러나 나의 눈은 책을 보고 주위를 보았다.
얼큰한 술냄새를 풍기는 사람들과,
평소보다 목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들,
연인의 품에 몸을 맡겨 서로 안고 있는 사람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내리다 보면,
몸을 가누지 못해 허우적거리거나 힘없이 기대어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유기된 동물들에는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유기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까?
유기된 동물들을 데리고 키우는 것도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는데,
유기된 사람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내 눈에 보일 것이다.
항상 첫차나 막차를 타면 눈에 보이는 것들도 많고 생각도 많아진다.
주일에 어머니와 함께 예배를 드렸고,
이 예배가 이번 한국 방문에서 가족과 함께 드리는 마지막 예배가 되었다.
오랜만에 말씀을 듣고 고민할 수 있는 예배라서 유익했다.
정빈이 형이 아이를 안고 그 뒤를 아내가 따라가는 모습을 보았다.
아는 척을 할 수 없었지만 여전히 교회에 다니고 있다.
예배 후 밖에 나오니 가을비가 내렸고 기온은 더 떨어져 추웠다.
어머니와 함께 버스를 탔고 어머니가 하는 말씀들을 집으로 가는 동안 계속 들었다.
이렇게 듣는 것도 한동안 못하겠지..
저녁 식사는 부모님과 함께 외식을 했다.
항상 가족들을 먼저 생각하고 헌신하는 어머니,
남편다움과 아버지스러움을 잃지 않으시는 아버지,
부모님 간의 대화를 듣는 즐거움,
부모님과 대화를 하는 즐거움.
내가 "사람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느낀다.
아하.. 이것도 그리울테지.
서로의 개인 사정으로 춘하 누나는 이번 주에 만나지 못했다.
수술을 받은 병원으로 가서 이발을 했다.
3mm로 자르려고 했는데 2mm로 잘랐고,
태어나서 이렇게 짧은 머리를 해본 적이 없어서,
이발 후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낯설고 흥미로웠다.
이 모습은 집 어딘가에 있을 낡은 사진첩에서 본,
내가 사리 분별 못했던 아이 때 이후 처음이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인데,
이 병원에는 네 명의 실장들이 있고,
그 중 세 명의 실장들은 여자이다.
내 머리를 깎은 여자도 실장이었고,
한 가지 질문에 여러 가지 정보들을 알려주며 대답을 하는 사람이었다.
순간 그녀가 가진 외로움이 느껴져서 살짝 웃음이 나왔다.
누구나 가끔 온전한 "나"보다 수식어들로 꾸며진 "나"를 소개하려 한다.
그녀의 말들에 나는 아주 감사한 마음으로 짧게 반응했다.
드디어 이 병원에서 할 수 있는 1차 치료는 끝이 났다.
2년 뒤에 다시 올 것이고 그때는 "빈손"으로 오지 않겠다.
친절한 직원의 오픈 서비스.
잠자고 있던 "쪼꼬미"는 정색을 하며 나를 바라본다.
보이는 옷의 아름다움과 스타일의 낯설음보다는,
체온이 느껴지는 따뜻함이 필요했던 사람들.
그렇게 또 어우러지고 스며든다.
처음은 아니지만 처음인 것 같은,
순간이지만 한동안 기억되고 느껴질 것 같은 시간들,
남은 반을 채우는 작업들은 계속 진행 중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쉽다면,
이유없이 괴롭고 슬퍼지는 날도 오겠지..
약속대로 윤희 누나를 잠실 교보문고에서 만났다.
씩씩한 걸음과 만화 캐릭터 같은 목소리와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고 석촌호수 주변을 걸었다.
몇 년 전에 롯데월드를 다녀온 후 보는 새로운 풍경들.
법을 바꿔서라도 세우고 싶었던 어느 재벌 회장의 욕망이 마천루에 걸려있다.
놀이 기구가 움직이는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 소리는 자주 하나가 되었다.
호수 주변을 달리며 우리 곁을 지나가는 사람들과,
비슷한 걸음 속도로 둘러보는 사람들.
할로윈 축제기간이라서 좀비들이 나타난단다..
하지만 오리들은 밤에도 울면서 호수 위를 부유한다.
왜 좀비들은 오리나 동물들은 먹지 않고 인간만 먹으려고 하는 걸까?
편식은 좋지 않고 설정상 식욕만 남은 인간이 인육만 먹는 것은 오류이다.
호수 근처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대화를 나눴다.
아주 흥미로운 대화는 아니었지만,
이따금 보여주는 누나의 미소가 보기 좋았다.
출근을 해야 하는 누나이지만 우리는 꽤 길게 대화를 했고,
몇 년이 될지 모르지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버스를 타려 걸어가는 누나의 뒷모습은 역시 씩씩했다.
집에 도착하니 얼마 뒤 동생이 짐과 함께 들어왔다.
추석 이후 다시 완전한 가족이 되었다.
석원이 형과는 수요일 오전에 만날 것을 약속했고,
성준이 형과는 수요일 저녁에 만날 것을 약속했다.
경덕이도 수요일 오후에 잠깐 만날 것을 약속했으나,
확실히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떠나는 날이 있는 주는,
만날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진다.
그런데 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만날 수 없는 것인가?
시대의 악함과 사람의 이기적인 마음을 탓해야 하는 것일까?
결국 허무한 바람같은.. 쓸쓸한 기분들을 느껴야 할 때이다.
<죄와 벌>을 다 읽었고,
Freude 부부에게 메일을 보냈다.
주문했던 책들이 도착했다.
단비는 스페인으로 떠났고 나는 행운을 빌었다.
규빈이와 간만에 대화를 나눴다.
최근 장미에게 좋지 않은 일들이 있었다.
안나는 겨울에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하루만에 동생은 집을 떠났다.
원래는 SLUR "번개 모임"이었지만,
예상대로 은미와 단둘이 신도림역 근처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식사만 했고 차를 마시지 못했다.
내가 부탁할 수 있는 마지막 사람으로 은미를 선택했고,
두 가지 부탁을 은미에게 말했다.
공교롭게도 은미가 내 마지막 사람으로서 또 선택되었다.
그만큼.. 믿을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도 없다.
우리는 SLUR에서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했고,
가장 많이 서로의 모습들과 생각들을 공유했다.
은미에게 또다시 무거운 짐을 지게 한 것 같아 미안했다.
그러나 은미 혼자만 그 짐을 지게 한 것은 아니다.
나와 SLUR는 먼 곳에서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 그녀를 도울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생각들과 마음들을 확인하고 헤어졌다.
잘 잊어버리는 은미는 내가 했던 말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주 잠시였지만 체온이 상승했다가 원래대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은미가 예정대로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
합정역 근처 카페에서 관용이를 만났다.
우리가 다시 만난게 8년 만인가.. 아니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작년 한국 방문 때 관용이는 나를 보려 했지만 보지 못했고,
이번에는 내가 그를 보려했고 결국에 우리는 만났다.
결혼식에도 못 갔는데.. 어느새 관용이의 옛 모습은 퇴색되었다.
그의 웃음과 목소리는 여전하지만 많이 야위었다.
서로가 다른 곳에서 보낸 8년의 시간을,
3시간으로 압축하여 말하기에는 무리였다.
너무 아쉬워서 돌아가는 관용이의 차 안에서도 우리는 대화를 나눴다.
나는 쓰고 있던 비니를 벗었다.
관용이는 친한 친구와 북카페를 개점하려 한다.
유학하거나 공부를 해야 할 사람들이..
왜 이렇게 시대에 괴로워 하며 사역과 일을 하는 것일까?
나는 또 소리없는 눈물을 흘려야 했다.
미안하다.. 나의 그대들.
사람은 그 말과 행동이 좋지 않고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고통과 어려움을 준다.
우리는 우리의 잔인함을 알고 있는가?
동물들은 잡아먹기 위해 다른 동물들을 공격하지만,
인간들은 자기 만족을 위해 다른 인간들에게 고통을 준다.
인간이 처한 "현실"이 악하고 나쁜 것이 아니다.
그 현실에 있는 인간이 악하고 나쁜 것이다.
가련하다.. 인간의 삶이여.
내가 한 말들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어떤 말들은 영원히 대답을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결국 이렇게 될 일을.. 어리석다.
그러나 그대 안에 만들어진 "나"는,
진정한 "나"가 아니다.
오랜만에 우산없이 비를 맞았다.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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