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나는 은근히 말리고 싶다 본문
무척 무기력한 한 주였다.
무엇을 해도 의욕이 없어 쉽게 지쳤고,
자주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거나 짧은 잠을 잤다.
그러나 다시 책상에 앞에 앉아 책을 보려고 하면,
머리가 아프거나 의욕이 좀처럼 생기지 않아 짜증이 났다.
해야 할 것들은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난해한 모양을 가진 채 나의 능력을 조롱하거나 시험하려 든다.
거기에 '여유'라는 단어가 상활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게으름'으로 그 단어를 존재시키려 든다.
왜 나는 지금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그리고 언제 책상 앞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들을 상대하여,
결국 어떤 결말을 낼 수 있을까?
근거 없는 자신감만이 나를 위로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나의 이런 모습이
독일 유학 생활의 '익숙해짐'을 나타내기도 할 것이다.
내게 주어진 모든 일들은 반드시 할 것이다.
파리에서 뮌스터로 온 효성이.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늦은 오후에 도착하고 이른 아침에 떠나니,
그 일정은 마치 '바람'같이 느껴졌다.
예전처럼 우리는 대화를 많이 했다.
효성이는 이전보다 더 많이 자기의 의견들을 말했고,
나는 이전보다 더 많이 그의 의견들을 들었다.
군목 장교 전역 이후 사역지를 찾는 일이 쉽지 않은 것과,
런던과 파리에서의 여행 중에 있었던 일들,
최근 한국에서 있었던 일들,
그리고 늘 반복적이고 익숙한 개인 일들.
무엇하나 빠지지 않고 꺼내어 쏟아내고 비워냈다.
주일에는 함께 독일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고,
오후에는 뮌스터 시내를 함께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일찍 베를린으로 떠났다.
꽉 찬 쓰레기 봉지 하나를 치우고 설거지를 한 다음,
밥상으로 쓰던 책상을 다시 원래의 위치로 두니,
다시 원래대로 '혼자'의 방이 되었다.
누가 있었는 지 모를 정도로 그렇게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머리에는 '기억'들만이 남아 계속 살아 있다.
목요일 아침에 효성이로부터 한국에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언제 다시 볼 것인가..?
월요일에 있었던 피검사 결과는 좋았다.
담당 여의사는 건강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고,
부어있던 간도 점차 안정을 찾았는 지,
시간이 갈수록 통증도 사라졌고 소화 역시 잘 되었다.
그렇게 진료가 끝날 수도 있었지만,
근래에 내가 겪고 있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로감과 의욕저하,
그리고 잦은 두통에 대해 물었다.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상담을 위해
우리는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효성이와 아침 식사 중에 오디오에서 나왔던 음악이 생각 나,
오랜만에<바람의 검심: 추억편>과<바람의 검심: 성상편>을 연달아 보았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원작<바람의 검심>시리즈의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은 전혀 보진 않았지만,
위의 두 편은 성인용이고 내용 또한 나쁘지 않다.
오랜만에 보니 뭔가 느낌도 달랐고 결말을 알고 있었지만,
살짝 눈시울이 뜨겁기도 했다.
신타는 어쩔 수 없이 켄신이 되었고 다시 신타로 돌아왔다.
그 과정은 필연적이었고 두 편의 중심 내용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만난 두 여인 토모에와 카오루.
그녀들의 순애보가 무모한 듯 보이지만,
그러한 무모한 순애보가 있었기에,
켄신은 자신이 든 칼의 무게와 그 칼로 베어 낸 사람들의 수보다
더 무거운 마음의 짐들을 평생 의식하고 속죄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여자가 가진 엄청난 힘은 결국 남자를 변화시키는 것에 있다.
여자로 인해 망하는 남자도 있지만,
여자로 인해 새로운 삶을 사는 남자도 있다.
토모에와 카오루는 평면적인 여자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러한 평면적 날카로움이 입체적인 남자의 세계를 베어낸다.
서로의 삶을 대신해 줄 수는 없지만,
언제까지나 서로 곁에 있는 것.
왜 이렇게 어려운 일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인터넷 포탈에서 보게 되는 기사들 중 자주 볼 수 있는 내용들,
아예 결혼을 포기한 20-30대 청년들,
맞춤형 소개팅이나 결혼 정보 업체를 통해 연애를 하려는 사람들.
실연이나 집안의 반대로 인해 광란의 질주나
흉기를 휘둘러 인명 피해를 주는 사람들.
결혼 비용이 없어서 결혼을 못하거나 절도를 범하는 사람들.
부부 싸움이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일가족이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살한 사람들.
결혼 후 2-3년도 안되서 이혼하는 사람들.
처음에 읽다보면 심각성을 느끼지만
자주 접하게 되니 연애나 결혼이라는 것이
남자와 여자의 삶에 무척 귀찮은 일이고,
행복보다는 불행의 전주곡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랑'만으로 연애하고 결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나는 어떤 여자에게도 "사랑해"라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고,
연애나 결혼을 하는 것보다
혼자 사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원래 무모하고 어리석음에서 '사랑'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뚜렷해지는데,
지금은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것에 이 단어를 덤으로 붙이려 한다.
나는 심장 없는 양철 인간이 아니고 용기 없는 사자가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나와 같을 수 없다.
Frau Freude가 심장에 이상이 생겨 대학병원에 입원을 했다.
Herr Freude는 내게 그 일에 대해 알려 주었고,
그는 전혀 슬픈 기색 없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분간 책읽기는 쉬어야 할 듯 하군요"
당연한 것이지만 뭔가 낯설었다.
바로 다음 날 장녀가 찾아와 집에 머물렀다.
2주만에 Gelsenkirchen행 기차를 탔고,
한인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독일 음대 교수와 결혼한 슬기는 무척 좋아 보였고,
여름 학기 시작과 함께 귀국한 사람들과
2주 동안에 새로운 사람들로 인하여 북적거리는 저녁 식사였다.
그리고 무늬만 '전도사'이자 '독거노인'인 나를 위해 이것 저것 챙겨주는 손길들.
뮌스터로 돌아올 때 내 가방 안에는 사랑의 '증거'들이 저마다 향을 피웠다.
호림이가 신학을 하고 싶다고 내게 뭔가 조언을 구하는 듯 말했다.
동년배인 그는 도대체 왜 지금 신학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나는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신학을 왜 공부하지?" 라고 물었는데,
특별한 답이 있는 질문이 아니기에 저마다 비슷하거나 다른 대답들을 했다.
그러나 그 대답들 중에 인상적이거나 기억에 남는 대답은 없었다.
왜냐하면 다들 '신학을 공부하는 것의 목표=목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학이 목회를 위한 도구로 쓰여지는 순간,
정말 신학만큼 재미없는 공부도 없다.
그가 본격적으로 내게 조언을 구하고자 한다면,
나는 은근히 말리고 싶다.
지금은 목회자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목회자들 옆에서 돕고 감시하고 동행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의욕없고 지루한 한 주가 지나갔다.
이번 주는 비가 자주 올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이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할 것 같다.
하고 싶은 것들을 제대로 하면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으면,,
어느새 그렇게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늘 어렵지도 않을 것이다.
...
그러나 "병원 가는 것처럼 운동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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