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그만두는 것만 있을 뿐이다 본문
특별히 하는 것 없이
자주 기댈 수 있는 곳에 기대고
누울 수 있는 곳에 누웠다.
간식 먹듯이 공부하면서 배운 것들을 떠올렸고 그것들을 확장시켰다.
그러던 중 확장이 길어져 더 이상 생각의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을 넘어서기도 했고,
돌아갔지만 별 다른 의미를 찾지 못하여 실망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날은 '간식'도 먹고 싶지 않은 날들도 있어서,
나 스스로 배운대로 열심히 한단계 더 높은 게으름의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그러나 그 세계는 '낭비'가 아니라 '충전'이자 '고민'의 세계이다.
지난 달에 Playstation 4를 중고로 구입했는데,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누어 FIFA15를 평균 2-3 게임 정도 하고 있다.
옆에 있는 오디오 위에 작은 전자 시계를 두어,
혹시나 찾아오는 '통제불능' 상태로부터 사전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준비했다.
확실히 물리 엔진이 달라져서 그런지 실제 축구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예전처럼 빠른 공격 전개나 정확한 플레이는 더 힘들어졌다.
무엇보다 월드클래스 난이도 이후부터의 컴퓨터의 플레이는.
이제 거의 왠만한 실력이 아니면 쉽게 이길 수 없다.
그건 마치 '축구'라는 운동의 특징을 보여준다.
"두 팀 중 어느 팀도 90분이 끝날 때까지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
물론 게임이기에 어느 정도 실력을 쌓고
컴퓨터의 움직임을 파악하면 플레이는 쉬워진다.
'쉬워진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승률을 보장할 수 있지만,
'항상 이길 수는 없다'는 의미도 함께 포함된다.
쉽다고 모든 일이 내 마음대로 내 것이 되지 않는 것처럼.
예전과 달리 아주 편하게 FIFA를 하고 있다.
이것은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크게 달라진 점이다.
벌써 독일에서 3학기 째를 보내고 있고 끝나가고 있다.
이번 학기는 흔히 'Big Semester'로 나름 규정했는데,
그만큼 해야 할 것들이 무척이나 많다.
우선 가을에 있을 학술제를 위해 한 편의 논문을 공동으로 완성해야 하고,
종교철학과 독일 관념론에 관한 구술시험들이 예정되어 있으며,
한 편의 개인 논문을 쓰고 있다.
이것은 나 스스로에게 가하는 하나의 '자극'인데,
이렇게 설정해 놓으면 어떻게든 하려고 노력을 하게 되고
그렇게 하다보면 어느새 끝나있고 뭔가 머리 속에 남아 있다.
특히 독일어로 말하고 글을 쓰다보니 여러 번 고민하고,
모든 일을 천천히 진행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내게 무척이나 짜증나게 하는데,
어떻게 앞날을 계획할 지를 알 수 없게 만든다.
지난 주는 날씨가 무척 더웠던 한 주였다.
주초부터 30도에서 출발하여
주말에 37-38도 그 어딘가에서 정점을 찍고,
주일에는 예상대로 강한 바람과 함께 소나기가 자주 내렸다.
날씨가 더우니 피부는 저절로 '물광 피부'가 되었고,
공부하는 일에 의욕과 집중력이 떨어졌다.
Freude 부부는 내게 아침이 지나면 그늘이 지는 옆 방에서
공부를 해도 된다고 허락했지만,
그 방 역시 그늘만 질 뿐 30도가 넘는 실내 온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이리 저리 몸을 움직였지만 오래 머물 곳은 찾지 못했다.
이번 주는 다시 온도가 20도 근처로 내려 간다고 예정되었다.
추운 것보다 더운 것이 낫고,
더운 것보다 서늘 한 것이 낫다.
여기서도 변하지 않는 생활의 '잠언'이다.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가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냈던 어느 날,
"하루를 이렇게 보내도 되는 것일까?"라고 생각해 보았다.
이런 생각이 내가 한국에서 배우고 느낀 '압박'과 '불안'을
내 몸과 마음이 '아직'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신은 나 스스로를 내버려 두라는 의지를 불러 일으켜,
'압박'과 '불안'으로부터 나를 '자유'하게 하려고 했다.
나는 격렬하게 거부했으나 그 결과는 안구 건조증과 권태였다.
그래서 나는 게으름의 세계로 나를 이끌었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내에서 했으며,
그 시간 동안에도 머리 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자리를 폈다.
당연히 조금씩 책을 읽고 고민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다.
실컷 놀다보면 노는 것 외에 하고 싶은 일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다시 열정을 갖고 그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한국에 있을 때는 놀고 싶다고 놀 수 없었다.
노는 게 돈이고 돈은 노는 것과 함께 소비되어 내 손을 떠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평균적인 삶은 누구에게도
하루를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하루가 쌓이면 쌓일수록,
'압박'과 '불안'으로 힘겨워 하고 사람마다 극단적인 선택 내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출구'를 찾아다닌다.
그러나 그 '출구'는 비슷한 방식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그러므로 벗어난 것은 벗어난 것이 아니다.
그만두는 것만 있을 뿐이다.
나는 지금 혼자 방에서 지내면서,
내가 체험할 수 있고 동감할 수 있는,
그리고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모든 것들과 하루를 보낸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무척 지루해 보일 수 있겠지만,
정작 이렇게 철저히 '나'를 들여보고
그 심연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누구를 만나는 순간부터,
나는 상황과 상대에 맞게 정리되어진 '나'로서
그 누구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피곤하고 쓸쓸한 일이지만,
언젠가 이 경험들이 또 다른 일들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마치 이전의 경험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 순간을 살 수 없듯이.
아침부터 밤까지 하늘의 변화를 살펴 보는 것은
독일에 방문한 '이방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빈둥거림'이다.
근래에 나도 모르게 "사랑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어떤 목적이나 대상도 없이
그 말은 내 목구멍에서 나와 한동안 공기 중을 떠돌다 사라진다.
그것은 마치 링이 없는 허공을 향해 농구공을 던지는 것이고,
골대가 없는 곳에서 축구공을 차는 것과 같다.
나는 그 말과 그 감정을 계속 지키고 싶다.
분명 언젠가 그 말과 그 감정들이 목적과 대상을 찾는 날에,
지금 내가 겪는 삶은 끝날 것이다.
나는 아마 그 끝을 기대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끝 이후에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책임과 의무가 많아지기 전에,
나는 나를 더욱 아름답고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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