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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 日記/Hello- Yesterday

그들은 바쁘고 나는 자유하다

EAST-TIGER 2017. 9. 20. 01:09

독일에서 볼 수 없는 한국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이 있다. 

지하철 한 칸에 많은 사람들이 있어 어떻게라도 틈을 만들어서 타야 하는 순간,

줄을 서지만 갑자기 줄이 허물어져 사람들의 발이 무조건 앞을 향하는 순간,

고층 아파트를 뒤로 한 채 서서히 붉어지는 노을과 

등 뒤에 햇빛과 선선한 바람 그리고 모든 사물들이 그 바람에 움직이는 것 같은 순간, 

비가 은은히 그리고 소리내어 내릴 때 그것들이 주는 어떤 편안함과 시원함.

독일로 돌아가기 전에 나는 "한국적인 풍경들"을 기억 창고에 수집한다. 

아마 한동안 또는 영원히 보지 못할 수도 있으니.


월요일 오후 12시 30분쯤 은해를 만났다. 

2년 만이었고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처음 봤을 때와 지금이나 외모적으로는 변한 것이 없는 듯 하다. 

우리는 익숙한 거리와 장소에서 점심 식사를 했고, 

한국에 와서 한끼 식사로는 가장 많이 먹었다. 

식사 후 잠시 걸었고 어느 카페에서 함께 차를 마셨다. 

지난 날들을 말하였고 지금 우리의 상황들과 생각들을 말했다. 

서로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온 것 같다. 

그러나 아쉬움과 허전함은 어딘가에서 느껴졌다. 

헤어지기 위해 역까지 걸어갔고, 

오후의 햇살과 옅은 가을 바람이 우리 위에 내려 앉았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를 걸으면서도 끊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하철을 타기 위한 개찰구에서 끊어져야만 했다. 

은해는 내게 아주 오래된 기억들을 떠올리는 하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랬구나. 그렇게 된 것이구나.."

둘 중에 한 명은 울어야 하는 날이었나보다. 


저녁 6시 30분 합정역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성환이형을 만났다. 

유학가기 전에 부천에서 함께 석별의 정을 나누었을 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우리는 초밥을 먹었고 이후 홍대 근처 세 개의 다른 주점들에서 

맥주 또는 칵테일 한 잔씩만 하고 다른 주점으로 이동했다. 

그 주점들은 성환이형이 외국인 여자들을 만나거나 함께 있었을 법한 주점들이었다. 

술에 빠져들수록 성환이형의 목소리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커졌고,

말도 빨라지면서 가끔 이해가 어려운 의미없는 문장들을 쏟아냈다.

어쨌든 그는 지금 자신의 모습을 받아 들였고 자신의 선택에 "어쩔 수 없음"을 강조했다.   

우리는 합정역 근처에서 맥주와 치킨을 먹고 자정 쯤 헤어졌다. 


화요일 오후 1시에 파주 출판단지에서 안나를 만났다. 

서로 이름과 얼굴만 알고 있었고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예전에 내가 파주에 가게 된다면 안내를 부탁한다고 했었는데, 

그녀는 오늘 나를 위해 파주 출판단지 근처를 안내했다. 

한국에 있을 때도 특별히 올 일이 없어서 

10년 전의 파주만 기억했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적당한 가격에 꽤 괜찮은 점심식사를 했고, 

식사를 한 곳 바로 옆에 큰 도서관이 무료로 개방되어 잠시 둘러 보았다.

바람이 부는 흐린 날이 낯선 것은 아니었으나, 

풍경들은 독일에서 보던 것들이 아니었다. 

출판단지 근처의 카페들은 거의 북카페였고, 

꽤 근사한 북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했다. 

여러 책장들에 진열된 책들은 

언제라도 누군가의 시선과 손을 기다리는 듯 했다. 

한 커플이 와서는 차를 시켜놓고 앉은 소파에서 목을 젖히고 잠이 들었다. 

우리는 조용히 일어나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우리 등뒤에서 햇볕은 은은하게 오후를 수놓았고, 

바람은 강했지만 위협적이지 않았다. 

헌책방이 있는 북카페에 잠시 들러 책들을 보다가

절판된 책인 하이데거의 <동일과 차이>를 구입했다. 

우리는 오후 4시가 되어서 헤어졌다. 


오랜만에 여유로운 저녁이었다. 

집에 있는 음식들을 먹었고 

어머니가 집에 오니 먹어야 할 음식들은 더욱 많아졌다. 

나의 배는 순식간에 커졌고 피곤함을 느꼈다. 

지원이 누나와 통화를 하면서 음악을 들었다. 

통화가 끝나자 잠이 몰려와 잠시 잠들었다. 

일어나 주방에 가보니 아버지가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음악을 들으며 일기를 썼다. 


만날 사람들은 어느 정도 만난 것 같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바쁜 것 같다. 

아무때나 만나고 싶어 연락을 해도 예전처럼 볼 수 없다. 

언제라도 연락하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어져 무척 아쉽다. 

그것이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의 한 "단면" 일 것이다. 

몇 년이 더 지나야 우리는 예전처럼 언제라도 볼 수 있는 것일까..?

그들은 "노예" 처럼 어딘가에 매여있는 듯 하다.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은 이제부터 만나지 않겠다. 

어떤 희망이나 생각들도 버려야겠다. 

그들은 바쁘고 나는 자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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