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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EAST-TIGER 2016. 9. 8. 05:28


<추격자>, <황해> 이후 오랜만에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신작. 

그의 영화는 늘 런닝타임이 길고 과할정도로 거칠며 어두운 묘사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번 작에서 나홍진 감독은 이전 작들과는 달리 오컬트(Occult)적인소재들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이전 작들과의 공통점은 성인 남자가 2시간 동안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추적하고 싸운다는 것.

영화를 보면서 그가 종교나 무속적인 것들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관심에서 나온 표현들과 묘사들은 영화를 다 본 후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영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과 의문점들, 

그리고 그것에 대한 그럴듯한 반박과 응답들을 볼 수 있는데, 

나홍진감독의 인터뷰(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744857.html)를 보면 

어느 정도 영화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다.



"그놈은 미끼를 던진것이여. 자네 딸은 그 미끼를 확 물어분것이고"


영화에 대한 평을 하자면, 


우선 관객들에게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감독이 영화에서 본인의 의도와 사용된 소재의 의미를 

분명히 밝히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오컬트 장르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관객들에게 어느 정도의 배경 지식을 요구한다. 

게다가 기독교와 동서양의 무속신앙이 융합되어 있는 장면들이 등장할 때면, 

관객들은 각 장면들이 가진 이미지에 주목하지, 

그것이 가진 의미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관객들은 영화를 보고 난 후 그 이미지들이 준 강렬함에 사로잡혀, 

"징그럽다" 또는 "엽기적이다"라는 말을 먼저 할 수 있지만, 

감독의 의도와 영화 내용에 대한 대화나 토론은 힘들 수 있다..    

이점은 그동안 나홍진 감독의 영화들을 본 관객들에게는 낯선 느낌이다. 


또한 긴 런닝타임에도 불구하고 편집은 깔끔하지 않다. 

몇개의 플롯(Plot)들이 어느 정도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서 서로 연결되니 

당연히 관객들은 그 연결 시점부터 문득 플롯들 간의 의문점들을 갖게 되고,

그 의문점들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 

보여지는 장면들을 수동적으로 따라갈 수 밖에 없다.

나홍진 감독은 이러한 '불친절'한 편집이 자신이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나는 이 점이 이 영화가 초반 흥행 기세를 끝까지 이어가지 못한 이유라고 본다. 


이 영화는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지만,

이 영화의 등급은 18세 이상 관람가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본 15세들을 만나 대화 해보고 싶다.

과연 이 영화를 어떻게 보았을까..?



"효진아, 괜찮아. 아빠 경찰인거 알지? 아빠가 다 알아서 할겨"


배우들의 연기는 당연히 뛰어나다. 

나홍진 감독의 장점이자 왠만큼 이름 있는 감독들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걸맞는 배우들을 잘 선택하고, 

그 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연기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배우들에게는 고역일 수 있고 감독과 배우들 사이의 불화를 일으킬 수 있지만,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실현시켜야 한다. 

나홍진 감독은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에서는 독보적인데,

그 점은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 감독을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배경음보다 현장음을 더 중시하는 감독이기에, 

영화는 충분히 관객들의 눈과 귀를 집중시킨다.  


개인적으로 김환희의 연기가 가장 돋보였다.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연기에서는 거의 중견 배우 느낌이 난다.

그녀의 성장이 기대된다.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순하고 마음 약한 경찰관이 점차 폭력적이고 거친 남자로 변모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왜 일본인 남자는 끝내 자신의 역할이나 임무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일까? 

'믿음', '확신' 또는 '신앙'이라는 것들은 상황에 따라 흔들릴 수 있는 것인가? 


다른 질문들 같지만 서로 연관되거나 결국은 하나의 대답에 수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어떤 '믿음', '확신' 또는 '신앙'이 생기면 그 이후부터 삶의 태도나 행동은 달라진다. 

그리고 가끔은 그것들이 내면적으로 강력해져서 그 사람을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즉 자신이 가진 '믿음', '확신' 그리고 '신앙'이 그를 지배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의심'과 '불안'은 그런 와중에도 강력한 역할을 한다.


영화 첫 부분에 나온 성경구절처럼, 

눈에 보이고 만져지지 않는 이상 '의심'과 '불안'은 

이미 가지고 있는 '믿음', '확신' 그리고 '신앙'을 지속적으로 흔든다. 

그러나 그 '의심'과 '불안'이 해소되면 

이미 가지고 있던 '믿음', '확신', '신앙'이 더 강해지거나 새롭게 갱신된다.

그러나 영화에서 종구는 '딸'과 '가족'이라는 불안과 '무명'에 대한 의심을 끝내 버리지 못했고, 

자기 스스로도 누구를 믿어야 할 지 모르는 상황에 이른다. 

결국 극단적인 상황에서 인간은 지금 자기 자신이 해야만 할 것들을 하게 된다.


그 일본인 외지인이 진짜 악마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를 악마로 본다면 악마이고 천사 내지 그냥 인간이 아닌 어떤 존재라고 봐도 무방하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대하고 

어떤 이미지로 그를 규정하는 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일광에게 그 일본인은 동업자이자 같은 무속인이고, 

사제 후보생에게는 '악마'이고 종구에게는 자신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의 '원흉'이다.   

하지만 그 일본인은 자신을 누구라고 스스로 밝히지 않음으로써, 

이 영화에서 가장 '현혹'되기 쉬운 인물이 되어 관객들을 대놓고 우롱한다.   

개인적으로 그가 등장하지 않았더라도, 

이 영화의 내용이나 영화가 가진 의도에 큰 영향이 없다고 본다.   

그는 스스로 완벽한 '미끼'가 되어 모두를 낚는다. 


인간이 믿고 의지하며 신앙으로 삼는 것들은 

다가올 그리고 이미 벌어진 재앙들 앞에서 얼마나 약한 것들인가..?

인간은 그런 상황에서 자기 자신 또는 자기가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고 싶을 뿐이다.      

어떤 주입된 '믿음, '확신' 그리고 '신앙'이 스트레스와 괴로움을 만든다면, 

인간은 그것들로부터 잠시 멀어지거나 완전히 끊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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