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너의 이름은] 여전히 설레이게 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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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의 재미는 창의적인 생각과 소재, 낯선 느낌들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들은 그런 면에서 탁훨하다.
2002년 처음으로 그의 단편 <별의 목소리>를 본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휴대폰 문자 메시지의 전송이 서로가 떨어져 있는 거리만큼 걸린다는 것,
그리고 지나쳐도 될 짧은 순간들이 영원한 그리움이 될 수 있다는 불변의 진리.
오랜만에 본 그의 작품에서 이제는 그의 관록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그에게서 '참신'과 '도전'을 더 느끼고 싶다.
호평만 할 수 없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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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츠하, 꿈을 꾸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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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은 개연성이 부족한 느낌이 든다.
우연과 운명적인 설정들을 일본 애니메이션에 자주 볼 수 있지만,
타키와 미츠하는 3년이라는 시간 차이를 두고 자주 몸이 뒤바뀌었던 것은
단순히 미츠하의 집안 내력과 이토모리 마을의 대형 참사를 막기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타키와 미츠하가 그렇게라도 반드시 만나야 할 운명적인 관계라는 건가?
게다가 일본의 무속 신앙과 전통 문화가 스토리의 배경이 되어서,
보는 내내 그것들에 대한 의미를 놓치지 않아야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수월하다.
특히 "쿠치카미자케"(口噛み酒, くちかみざけ)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소재였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작품은 신카이 마코토 특유의 새드 엔딩이 아닌,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만 스토리와 설정들이 가진 설득력은 떨어진다.
또한 가사를 동반한 배경 음악들이 귀에 날카롭게 꽂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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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는 분명해. 우리는 만나면 바로 알아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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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어나 꿈을 기억하는 것은
항상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른 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뭔가 의미있는 듯 미심쩍다.
영화를 보면서 흐릿한 꿈들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꿈들 속에서 만난 몇몇 이름 모를 사람들도.
얼굴과 이름을 모르는 사람을 오랫동안 기다리며 그리워 하는 것.
그리고 서로가 찰나의 순간에 서로를 '그 사람'이라고 알아보는 것.
어릴 적 순정 만화나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설정들이지만,
여전히 설레이게 한다.
...기다리고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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