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1월은 내게 호의적이지 않다 본문
약간 길게 느껴진 한 주였다.
스스로 한 말과 행동들을 떠올리며 성찰했고,
극복되지 않은 기억들을 상대로 욕설을 하며 저항했다.
나는 분명 괴로웠고 힘들었으나 어떤 "과정"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을 편안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작년처럼 1월은 내게 호의적이지 않다.
Beethoven의 교향곡 9번을 듣는 시기가 있다.
스스로 어려움에 처해있다고 생각들이 들면 듣게 된다.
특히 3악장을 좋아하는데 다가올 "환희"를 기대하는 듯 하다.
약 70분간 듣다보면 어떤 힘이 생기는 듯 몸이 살아난다.
Beethoven과 Schelling은 동 시대를 살았다.
5살 차이인 둘은 같은 땅 어디선가 서로의 이름을 들었을까?
Beethoven은 1800년 전후 문학과 철학에 관심이 많았고
Schelling도 같은 시기 대표 저작들을 출판하며 철학자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둘 외에도 이 시기에 유럽에는 엄청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분명 그들과 함께 사는 재미가 있었을 것 같다.
오 교수님이 모친상을 당하셨다.
이제까지 생존하셨기에 천수를 누린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가족의 죽음은 슬픈 일이다.
멀리 있어서 참여할 수 없음이 아쉬웠다.
지난번에 알게 된 사람에게 연락을 하여 조의금을 대신 전했다.
교수님과 서로 짧은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신의 피조물은 신 안에 있어야 자유롭다."
이 말은 어릴 때부터 꽤 많이 들었지만 누구도 내게 제대로 설명해 준 적은 없다.
그래서 나는 늘 스스로 고민했었지만 뚜렷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신으로부터 만들어진 이상 피조물의 자유가 신의 자유를 능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정말 자유스러운 것일까?
신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완전한 자유는 있을 수 없다.
그 자유는 대부분 "죄"와 관련되고 이것은 엄청난 삶의 스트레스이다.
갑자기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는 동물들이 생각났다.
자유의 절대적 권한을 가진 자가 있다면,
그보다 작은 권한을 가진 것들은 순서대로 종속될 수 밖에 없다.
Schelling은 생성에 있어서 모든 것은 동일하나,
존재에 있어서는 구별된다고 말한다.
한동안 바람이 불며 햇빛이 비추더니 오늘부터 다시 비가 내린다.
빗소리를 듣는 밤은 정겹고 부드럽다.
지난 주에 나는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다시 내 미소를 찾았다.
지금 내가 여기에 있고 스스로를 탐구하는 일은
지금보다 나를 더 연단하여 무엇인가 되게 할 것이다.
내가 여러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듯이,
나 역시 여러 사람들로 인하여 분노했다.
누군가에게는 나는 여전히 비호감이고,
누군가도 내게 여전히 비호감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있지만,
그 방법을 알고 있다고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예수도 미워할 사람들을 미워했다.
그렇듯 나도 좋아할 사람들을 좋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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