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서로 "추가"하고 "삭제"할 뿐이다 본문
바람 소리가 강하게 들리더니 정말 폭풍이 지나갔다.
Kolloquium에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더니 바람의 방향대로 몸이 움직였다.
버스 안은 평상시와 같았지만 밖은 바람에 날릴 수 있는 것들이 공중에 떠올랐다.
시내로 들어가는 도로에 나무 몇 그루가 쓰러져서 버스는 20분 정도 정차했다.
나는 한가로이 책을 읽으며 밖을 가끔 내다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폭풍으로 인하여 몇 명이 죽었다고 한다.
자연재해로 죽는 사람들은 독일이나 한국 그리고 어디든 있었던 것 같다.
익숙한 소식이지만 문득 "그 죽은 사람들은 태어날 때 그렇게 죽게 될 것을 알았을까?" 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에 날아든 물체에 맞거나 집이 무너져서,
아니면 감전을 당하거나 화재 또는 수재 현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해서 등,
꼭 그런 사람들이 있었고 뉴스에서는 성실히 보도했다.
이름 모를 그들은 혹여 누군가를 또는 나를 대신해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죽음이 나를 살게 하는 것인가..?
나는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는 것일까.?
쓸데없이 고민한다.
인간 관계의 단순함이 짙어진다.
누군가를 알고 친해지고 헤어지는 것이 간단하다.
직접 만나거나 메신저 채팅방을 만들어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게 되고,
어느 순간 대화가 끊기고 별다른 만남이나 반응이 없으면 그와의 것들을 "삭제"한다.
채팅방을 나가거나 메신저 목록에서 지우고 생각에서도 사라지게 둔다.
나에게는 여전히 무척 힘든 일이지만 예전보다는 힘들지 않다.
나도 익숙해졌다.
그들의 리듬에 그리고 나의 리듬에.
동생이 4일간 휴가를 받아 나의 방으로 왔다.
흐린 날씨에 Greven에 있는 공항으로 왔고,
지난 한국 방문 이후 약 3달만에 우리는 다시 만났다.
수화물로 붙인 짐이 도착하지 않아서 항공사 직원과 대화를 나눴고,
저녁 8시에 도착할 예정이며 이후 집까지 배송하겠다고 말했다.
처음 Greven과 공항을 방문했는데 약간 북유럽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숲과 들판들이 자주 보였고 집들은 듬성듬성 있었다.
버스 안에서 동생과 대화를 나눴다.
15년은 넘었을 우리의 침묵이 이렇게 깨졌다.
2018년 1월 20일 토요일.
전날 손이 아플정도로 장을 보았지만,
동생이 바라는 음식들이 있을 것 같아서
집에 오자마자 Freude 부부를 만난 후 장을 보러 나갔다.
삼겹살과 맥주를 구입했고 동생이 고른 몇 가지 과자들과 아이스크림을 구입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은 동생은
내가 한 밥과 어머니가 해준 음식들로 식사를 했다.
그리고 나서 혼자 있는 것이 싫다는 동생은
내 침대에 누워 노트북으로 예능 프로그램들을 보았고,
나는 그 옆에서 FIFA18를 했다.
가벼운 대화들을 나눴다.
저녁 8시 30분 쯤에 약속대로 짐이 배송되었고,
동생은 내가 부탁한 것들을 꺼내어 건네주었고,
내게 줄 선물들도 주었다.
나는 동생의 수고와 신께 감사 기도를 했다.
주일 예배를 다녀오니 동생이 내 책상과 방을 정리한 느낌이 들었다.
어제 산 삼겹살을 구워서 함께 먹었고 긴 대화를 했다.
동생은 여전히 내가 좋아하지 않는 부분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들도 내가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되었다.
동생의 감정이 앞선 말과 행동들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하다.
아직 동생이 나를 이해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동생은 충분히 내게 감동했다.
동생과 진지한 대화를 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동생에게 왕가위 감독의 <타락천사>를 보여줬으나 나와 다른 감상평을 내놓았다.
그리고 잠을 자기 위해 옆방으로 이동했다.
동생이 잠들고 난 후 나는 Frankfurt 공항 행 버스표를 예매했다.
떠나기 하루 전에 우리는 시내로 나갔다.
원래는 Freude 부부와 오후에 다과를 하려고 했으나,
아침에 Freude 부인이 아파서 할 수 없게 되었다.
대신 직접 만든 케이크들을 주었고 몇 개는 내일 떠날 동생을 위해 남겼다.
나는 동생에게 내 머플러를 주었고 동생은 마음에 들어 했다.
흐린 날씨라서 시내는 더욱 "Münster"스러웠고,
걸어서 갈 수 있는 곳들을 가면서 시내를 둘러 보았다.
저녁 식사는 내가 좋아하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함께 했고,
재즈 클럽에 가서 맥주를 마시며 공연을 보았다.
좀 더 있고 싶었지만 동생이 다음 날 아침 일찍 떠나야 해서
밤 10시가 조금 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잠이 오지 않아 3시간 정도 자고 일어났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춥지 않았고 혼자 아침 식사를 가볍게 했다.
식사를 하지 않은 동생을 위해 어제 남은 케이크들을 통에 넣어 주었고,
군것질거리들을 챙겨서 가방에 넣었다.
밖은 여전히 밤이었으나 동이 트는 것이 보였다.
집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중앙역에서 내려 걸어서 광역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지난 한국 방문를 위해 Herr Freude가 데려다 준 그 곳이다.
버스는 미리 도착해 있었고 친절한 운전기사님의 도움으로 동생은 안심했다.
출발 5분 전에 헤어졌고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이후부터 저녁까지 잠에 취했다.
밴드 합주를 마치고 집에 와서 샤워를 했다.
동생은 무사히 Frankfurt 공항에 도착했고 비행 후 Doha에 도착했다.
문자로 서로의 안부를 전했다.
기온이 이상하게 높은 날이지만 바람이 강하게 분다.
밖에 나가지 않았으니 그 기온을 느낄 수 없다.
오히려 자는 동안 전달된 메시지가 내 기분을 "0도"로 만들었다.
무슨 말인지 분명하지만 단어와 그 단어들의 표현들이 밍밍하다.
다 읽었지만 딱히 대답할 이유가 없었다.
그것이 보낸 사람의 "리듬"이었다.
그러나 "쿨"(Cool)한 것은 없다.
인간은 상처 받기 위해 태어난다.
상처 받는 것이 싫다고 해도 받을 수 밖에 없다.
가까운 가족부터 또 스치는 사람들로부터 상처 받는다.
상처의 깊이와 고통을 견딜 수 없으면 "절연" 할 수 밖에 없다.
감당할 수 있는 상처들을 주는 사람들만이 남는다.
그래서 근래의 인간 관계가 어렵지 않다.
서로 "추가"하고 "삭제"할 뿐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살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들을 마음에 품는다.
새로운 곡들을 연습하고 좀 더 부드럽게 연주하려고 한다.
언젠가 나의 여자친구가 피아노를 치며 나와 함께 연주를 하고,
내가 모르는 화성학을 가르쳐 주는 상상을 한다.
아득하지만 살아있는 한 또 어떤 일들이 생길 것이다.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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