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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로] 노년의 삶에서 누리고 싶은 소망 본문
가끔 비주류 영화들을 예매할 때가 있는데,
가장 큰 애로점은 상영 시간과 상영관이 관객들에게 불리하다는 점이다.
극장 입장에서는 돈 안 되는 비주류 영화들에게 메인 상영관들을 내줄 수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비주류 영화들과 관계를 끊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예술 영화', '독립 영화'라는 타이틀로 홍보하며 상영하고 있다.
구로CGV 10관 '무비꼴라쥬'에서 주일 밤 9시 45분에<해로>를 보았다.
오후에 사역을 마치고 잠시 연습실에 들렀다가 영화를 보려 하니,
몸이 나른해져서 졸음이 몰려왔다.
관객들이 별로 없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막상 와 보니 거의 없었다.
내 기억에 나를 포함한 관객 4명이 영화를 보았다.
"나 죽을 뻔 했어."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민호와 희정은 단 둘이 살면서 행복한 나날들을 보낸다.
하지만 서로가 늙었다는 것을 느낄만큼 서로의 몸도 망가지고 있었다.
민호는 심장마비로 인하여 쓰러졌다가 구사일생으로 회복하고,
희정은 시한부 암 선고를 받게 되어 투병 생활을 하게 된다.
편안한 죽음 대신에 고통스러운 죽음 앞에 선 부부.
부부는 예전에 서로에게 느꼈던 순수한 사랑을 떠올리며 간직하려 한다.
"몸 안에 폭탄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주현과 예수정 두 배우의 연기가 너무 좋았던 영화였다.
원로 배우들이지만 식지 않는 연기 열정으로,
여러 영화와 연극, TV드라마에서 둘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특히<가족>이후 주현의 연기를 스크린을 통해 오랜만에 보아서 좋았다.
그도 이제 진정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안내상과 우현이 우정출연했다.
<플라이 대디>이후 오랜만에 나온 최종태 감독의 신작이다.
이번 영화는 재미나 흥행보다는 삶의 성찰을 위한 영화였다.
전체적으로 영상 색감과 분위기가 좋았다.
"우리 잘 살아 온 것 맞지?"
등장 인물들이 많지 않아서 단조로운 스토리 구조를 가진 영화이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같이 노인들의 훈훈한 삶과 사회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오직 황혼기에 접어든 부부의 사랑만을 집중적으로 보여줬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상투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감독은 두 명 배우들의 연기에 올인을 한 것 같고,
두 배우들은 감독의 의도대로 열연했다.
크게 흥행할 수 없는,
또한 크게 매력적인 영화라고 말할 수 없다.
한 편의 연극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차라리 연극으로 제작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년의 삶과 두 배우의 열연을 보고 싶다면 추천할 만한 영화이다.
"어딜까? 우리가 가는 곳은."
가끔 노년의 삶을 상상하며 생각해 볼 때가 있다.
그때까지 살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때까지 어떻게 살아 왔을지도 모르지만,
될 수 있으면 평범하게 설정하여 상상한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지금 세상에서 늙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다.
예전처럼 몸을 움직이기 힘들 것이고,
함께 있어주는 사람들보다 내 곁을 떠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영화에서 부부의 자식이 가족사진에 있고 전화 통화도 하지만,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감독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일까?
부부에게 있어서 자식은 소중하고 사랑하며 돌보아야 할 대상이지만,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며 돌보아야 할 대상은 바로 남편과 아내 서로이다.
왜냐하면 남편과 아내는 이 세상에서 만난 유일한 '이성 친구'이기 때문이다.
비참하게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족에게 부담이나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
하고 싶은 일들을 최대한 하고 싶다.
내가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죽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랫동안 함께 있고 싶다.
이것들이 혹시나 다가올 내 노년의 삶에서 누리고 싶은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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