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건축학개론] 다시 순수한 마음을 갖는다 본문
바람이 불던 금요일 밤 10시 40분에 구로CGV 3관에서<건축학개론>을 보았다.
오랜만에 구로CGV를 방문한 것 같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관객들은 많았고 연령층도 다양했던 것 같다.
늘 그랬듯이 가장 좋은 자리에 혼자 앉았는데,
바로 옆에 나와 같이 혼자 온 여자 분이 있었다.
잠깐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나... 몰라.. 세요?"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처음 만난 승민과 서연.
승민은 음대생 서연에게 호감을 갖고 잦은 만남을 통해 친해진다.
그러나 승민은 서연에게 고백을 하지 못한 채,
서연에 대한 불신으로 헤어진다.
그후 15년 만에 승민 앞에 나타난 서연.
서연은 돌싱녀가 되었고,
승민은 직장 동료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서연은 오랜만에 만난 승민에게 집을 지어줄 것을 의뢰한다.
"그 썅년이 나야?"
예전에<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잠깐 보았는데,
이 영화를 통해 한가인의 연기를 제대로 본 것 같다.
약간 표정이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들었고 목소리가 조금 거슬렸다.
특히<푸른소금>의 신세경처럼,
어색한 욕설을 하는 그녀를 보고 있으니 심각한 상황임에도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엄태웅은 멜로 영화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시라노; 연애조작단>에서처럼 '착한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연기했고,
그의 연기를 보면서 여러 부분에서 공감했다.
수지는 털털하고 귀여운 연기를 보여줬고,
특별출연이 아닌 조연에 가까웠던 고준희도 평소와 비슷한 연기를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조연들 중에서는 조정석의 연기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놀라운 사실은 동급생 연기를 했던 이제훈과 수지가 실제로는 10살 차이가 난다는 것이었다.
이용주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보았는데,
일상에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소품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선을 가진 감독인 것 같다.
나는 이런 스타일을 가진 감독에 흥미가 있다.
"나... 널 좋아해.. 이거다!"
OST로 사용된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과 영화 내용이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출연 배우들도 많지 않고 제작비도 많이 들지 않았지만,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특히 감독의 감성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장면들이 많았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멜로 영화로도 볼 수 있겠지만,
<클래식>,<동감>,<4월 이야기>,<유리의 성>등등..
달달하면서도 애절한 연애 영화들의 장점들을 잘 조합한 것 같다.
전체적으로 출연배우들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고,
첫사랑에 대한 추억이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영화 같은 연애를 경험해 본 사람이면,
지난 날들을 회상하게 만드는 영화라 생각한다.
"집이 왜 지겨워? 집이 그냥 집이지."
집까지 걸어가면서 계속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흥얼거렸다.
그리고 짧게 지난 20대까지 나의 연애사를 떠올렸다.
국민학교 6학년 때 처음 누군가를 좋아했다.
첫사랑이었다.
내 짝이었고 인기 있는 여자애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나는 무척이나 바보였다.
그리고 기억할 때마다 생각나는 가슴 아픈 일들도 많았다.
반대로 나는 너무 순수했었고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나의 순애보는 7년간 이어졌다.
이후에는 그녀에게 고마웠다.
그녀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내게 알려줬다.
나는 아직도 그녀에게 고마움을,
그리고 평생 그녀에게 고마워 할 것 같다.
대학교 들어와서 처음으로 한 여자을 사랑했다.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사랑의 모든 것을 다 바쳤고,
이전까지 느껴지 보지 못한 행복을 느꼈다.
우리는 서로에게 20대의 절반을 바치며 사랑했으나 헤어져야 했다.
너무 긴 연애가 서로를 지치게 만들었다.
이후에 만난 여자들은 모두 내 욕망의 대상들이었다.
나는 외로움 때문에 만났고,
순간의 감정에 이끌려 만났고,
"정말 이게 사랑인가?"라고 의심할 정도로 괴로움 속에 만났다.
완전히 지쳐버린 나는 내 손으로 내 욕망들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20대의 끝자락에서 2년 동안 '연애'와 결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누군가와 서로 사랑을 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감사하고,
그들과 왜 헤어져야만 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나를 객관화 시킬수록 나에 대해 점점 알아간다.
그리고 언젠가 찾아올 설레임을 기다리며,
다시 순수한 마음을 갖는다.
한편으로는 영화를 보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첫사랑이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누군가는 나에게 떨리는 고백을 했고,
내게 편지와 선물을 주었으며,
이제는 지난 일이라고 하면서 김빠진 고백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된 사랑은 없다.
마치 내 첫사랑이 그랬던 것처럼..
어떻게 보면 영화의 엔딩처럼,
지난 날들의 추억들은 그저 서로의 기억 창고에 저장하여,
가끔씩 떠올리는 것이 더 나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왜 자꾸 그 추억들이 여전히 살아 있으며,
지금이라도 추억이 아닌 현실 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것일까?
그립다.
'內 世 上 > Cinemacus'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로] 노년의 삶에서 누리고 싶은 소망 (0) | 2012.04.04 |
---|---|
[시체가 돌아왔다] 끝까지 믿는 것이 더 낫다 (0) | 2012.04.03 |
[퍼펙트 게임] 故 최동원 선수를 추모하며.. (0) | 2012.03.30 |
[하울링] 우리 사회가 정말 '개판'이 된 것이다 (0) | 2012.02.17 |
[범죄와의 전쟁] 2012년은 '꼽사리 퇴치' 원년 (0) | 2012.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