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영화가 현실이자 현실이 영화 본문

內 世 上 /Cinemacus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영화가 현실이자 현실이 영화

EAST-TIGER 2012. 11. 3. 02:24


국가로서 "이란"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별로 좋은 인상이 아니다. 

얼마 전 국가대표 간의 축구에서 나타났듯이,

그들의 전통적인 "침대축구"와 수준 낮은 국민 의식은,

누구나 그들을 멸시하고 무시하기에 충분한 조건들이다. 

게다가 국외적으로는 핵 보유국으로 혈맹국인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며,

중국, 러시아와 함께 국제 사회에서 "트러블 메이커"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오래 전에 나는 이 영화가 이란에서 만든 영화임을 알고 있었고,

극장에서 개봉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때 나는 이 영화에 대해 큰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호기심은 극장에서 가서 이 영화를 보려는 행동까지 이르지 못했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몇 년이 지난 이제서야 이 영화를 보게 했다. 

이 영화는 내가 본 첫 이란 영화였다.



"신이시여, 마디가 병에서 낫게 도와주세요."


이란과 이라크 간의 전쟁이 잦은 이란의 접경 지역 마을 바네, 

그 마을에는 12살 소년 가장 아윱은 

먼저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에 남겨진 가족들을 돌본다.

무엇보다 아윱과 그의 누나 로진과 여동생 아마네는, 

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형 마디를 위해 수술비를 마련하려 하지만,

마땅한 돈벌이가 없었고 그로 인해 생계마저 어려워진다.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마디가 죽게 된다는 의사의 말에,

아윱은 접경 지역에서 밀수업을 돕는 일꾼이 된다. 

혹한의 추위로 인해 말과 노새들이 술을 마셔야 움직일 수 있는 긴 여정에서,

아윱은 더이상 12살 소년이 아닌, 

생사를 걸고 돈을 벌어야 하는 강인한 인간이 되어야 했다.



"잘 들어, 짐 값을 받기 전에는 일하지마.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야." 


이름도 모르는 배우들이 나와서 슬픈 연기를 한다.

영화 정보를 보니 극중 배역들의 이름과 실제 배우들의 이름이 같다.

그래서 "진짜 그들의 삶에서 일어난 일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심지어 말과 노새, 배경인 자연까지도 실제 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영화인지 실제 생활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이다.

이란계 쿠르드인 감독 바흐만 고바디(Bahman Ghobadi)는 이 영화로,

제53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 카메라상을 비롯한 3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아마 그는 이 영화를 힘들지 않게 만들었을 것 같다.

그에게는 영화가 현실이자 현실이 영화였을 것이다.



"사랑해, 마디. 이제 곧 국경이야"


이라크와 이란은 역사적으로도 원수지간이다. 

바벨론 문명과 페르시아 문명의 충돌은, 

두 나라가 중 한 나라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 될 것이다.

그리고 전쟁의 승패가 확실하지 않는 이상,

그 피해들은 양국의 국민들에게로 돌아간다. 

감독은 이러한 피해들이 무엇인지 영화를 통해 보여준다.

영화는 단순한 스토리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영화 자체가 너무나 사실적이기에, 

별 다른 극적인 연출이나 보조적 장치가 없어도,

장면들을 통해 관객들은 바로 소통이 가능하다. 

그래서 스토리 구조에 대한 집중 보다는,

배우들이 나누는 대화와 그들이 처한 상황에 집중한다.

개인적으로 매우 순수하고 정직한 영화라 생각한다.



"너무 취해서 못 걸어! 술을 너무 마셨어!"


경제가 발전하고 산업과 통신이 고 차원이 되더라도,

인류는 아직 의식주, 불평등 노동, 인권 침해 등,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했다.

원래부터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이라 생각하겠지만,

정치인들을 비롯한 경제 성장의 선두에 있는 기업가들은,

언제나 더 좋은 세상과 더 나은 생활을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세상의 풍경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 풍경 안에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고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동 노동은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공공의 장소에서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거나,

본질적으로 같으나 형태만 달라져 그럴 듯하게 위장될 수는 있겠지만,

아동이 효율적인 인적 자원이라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이것보다 더 앞선 개념으로, 

노예 노동 역시 영원 불변할 가능성이 높다.

명목상으로 노예가 없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노예가 하던 일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 노예가 하던 일을 돈을 받고 하더라도,

고용주가 노동자를 노예와 같게 취급한다면, 

그것 역시 불평등하고 비윤리적인 노동이다.

즉 우리 사회는 발전하고 고도화되었지만,

인간의 기본 생활과 노동에 있어서 사실 변한 것이 별로 없다.


빈곤 국가들이나 개발 도상국들의 국민들이 겪는 어려움과 고통들을,

선진국들의 국민들 역시 겪는다. 

단지 형태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상황들이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할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새로운 노예 해방 운동이 필요하다.

사회 복지가 증진된다고 크게 달라질 것이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이 인간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지는 경제 체제에서는,

언제나 더 큰 자본적 부가 가치를 발휘하는 인적, 물적 자원들만이 우대되고,

여기에 밀린 자원들은 부단히 노력하여 경쟁에서 살아 남던가,

그대로 주저 앉아 자신들의 에너지가 소비되어, 

더이상 자원으로서 가치가 없어지기까지 기다려서,

다른 자원들로 대체되어야 한다.


언제까지 무한 경쟁을 할 것인가?

언제까지 자본이 인간보다 앞서야 하는가?

언제까지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아이들을 어른으로 만들 것인가?

지금은 무한 인간애와 인권 회복이 필요할 시기이다. 

생존에 취한 채 삶의 여유와 개인적 사색을 잃어버린,

이 시대의 보통 사람들을 위해..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