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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1985] 과거는 확실히 털고 가야 한다 본문
연말에 볼만한 영화가 없어서 아쉬웠는데,
정지영 감독의 신작<남영동1985>가 개봉하여 모처럼 영화관을 찾았다.
겨울 바람이 부는 수요일 오후 3시 55분에
2호선 홍대입구 역에 있는 롯데시네마 6관에서 보았다.
관객들은 많은 편이 아니었고 좋은 자리에서 편하게 볼 수 있었다.
CGV와 마찬가지로 롯데시네마 역시 좋은 영화관이라 생각한다.
"여기가 남영동입니까?"
1985년 9월 4일.
청년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김종태는 남영동 대공분실에 잡혀가고,
수사관들에 의해 허위 자백을 받아 내기 위한 고문을 받는다.
솔직한 자술서를 쓰고도 풀려나지 못하는 김종태.
그의 허위 자백을 받기 위해 담당 수사처는 고문 전문가 이두한을 부르고,
이두한은 김종태를 잔인하고 치밀한 방식으로 고문한다.
"당신 차례가 온 것 뿐이야."
전작<부러진 화살>에서 나온 박원상, 문성근이 다시 출연했고,
명계남, 이경영 이천희, 김의성 등이 출연하여 몰입도를 높였다.
박원상은 혼신을 다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아마 본인 스스로도 이렇게까지 연기해 본 적이 없지 않았을까?
전신 노출과 고문 받는 연기는 쉽지 않은데 그는 최선을 다했다.
절친한 친구 사이인 문성근과 명계남은
오랜만에 함께 출연하여 명품 연기를 선보였다.
이미 그 당시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두 사람이기에,
영화에서 각자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가장 잘 이해하고 연기한 것 같다.
서서히 전성기 때의 모습을 회복하는 이경영과,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고 있는 이천희의 연기도 아주 볼만했다.
정지영 감독은 시대극에 있어서 한국 영화계의 거장이라 본다.
앞으로도 시대 의식이 짙게 배여 있는 영화를 기대한다.
"지금부터가 더 중요해!"
故 김근태 국회의원의 수기<남영동>를 각색하여 제작된 영화지만,
왠지 전혀 각색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현장감이 느껴졌다.
세트가 다양한 것이 아니라서 영상 자체는 지루했고,
스토리 라인도 단조로웠지만,
감독은 정확히 하고 싶은 말에만 집중하여 관객들의 시선을 고정시켰다.
영화의 8할 이상이 고문 장면이고 성기 노출이 있어서
영등위에서 받은 '15세 관람가' 판정이 다소 의아스럽다.
또한 모방이 가능한 고문 기술들과 거친 욕설들이,
청소년 관객들에게는 별로 좋은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 같다.
나는 이 영화가 심의 조정을 다시 받아야 한다고 본다.
전체적으로 전작<부러진 화살>보다는 흥행 요소들이 많지 않지만,
작품의 가치에서 볼 때 한국 영화계에 꼭 필요한 시대극이라 생각한다.
"저는 대한민국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수"라 불리는 세력의 실체이다.
물론 "보수"라는 스펙트럼에 여러 가지 유형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암울했던 70-80년대에 나타난 흔히 '빨갱이 신드롬'의 태동은,
반 정부 시위들이나 민주화 운동자들에게
그 당시 주류 "보수"세력은 "빨갱이" 혹은 "종북세력"으로 규정지었다.
그리고 일제 시대에나 자행될 수 있는 혹독한 고문으로,
같은 동포와 국민들을 죽이거나 불구자로 만들었다.
영화에서 스스로 "애국자"니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니 하며,
잔혹한 고문과 무차별적 폭력을 정당화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일제의 잔재를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해방 이후 이념 논리에 따른 주류 "보수"세력의 횡포는,
일제가 항일 운동가들에게 대했던 탄압과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 주적처럼 여겼던 자들을 대하는
태도와 반응 역시 거의 비슷하다.
그들은 체제 유지를 위한 불변의 논리에 반하는 자들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붙잡아 고문하고 죽였으며,
배후 세력을 물어 완전히 제거하려 했다.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던 2000년대 이후에도,
그들과 그들의 후예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활개치며
주류 "보수"세력을 대표하고 있다.
다만 방식은 이전과 같이 고문과 폭력이 아닌,
퇴출, 강압 및 장악이다.
쉬운 말로 밥줄을 끊고 압력을 행사하며 모든 사회적 수단들을 장악한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들을 지금의 현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시대가 어떻게 변할 지는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보수가 아닌 "보수"의 이름을 빌린
일제와 독재 시대의 후예들이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한,
민주 시민들은 늘 불안에 떨거나 언제 찾아 올 지 모르는,
그들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제는 새 시대를 열어야 할 시기가 왔다.
과거는 확실히 털고 가야 한다.
시대가 지났다고 과거의 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진정 처벌할 자는 강력히 처벌하고,
보상 받아야 할 자는 보상 받아야 한다.
그리고 기억해야 할 과거들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용서는 그 다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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