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아무르]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늙고 있다 본문

內 世 上 /Cinemacus

[아무르]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늙고 있다

EAST-TIGER 2012. 12. 31. 22:30


독일 유학 가기 전에 본 마지막 영화가 될 것 같다.

유난히 따뜻했던 하루와 달리 29일은 폭설이 내렸다.

보고 싶었지만 상영하는 극장이 없어서 부평 롯데시네마까지 가야 했다.

토요일 오후 6시 5분에 부평 롯데시네마 9관에서<아무르>를 보았다. 

예상대로 관객들은 거의 없었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영화를 보았다.



"오늘 당신이 유난히 예뻐 보인다는 것을 말했던가?"


음악가인 노 부부는 인생의 황혼기를 여유롭게 보내고 있었다.

남편 조르주는 아내 안느를 끔찍하게 아꼈고, 

제자인 알렉상드르는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었으며,

하나 뿐인 딸 에바는 부모님을 돌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안느는 갑자기 몸의 마비 증세를 느끼고,

결국 반신불수가 되어 급속도로 쇠약해졌다.

이런 모습들을 보는 남편 조르주는 점점 절망과 낙심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나는 안 힘들어."


<퍼니게임>의 미카엘 하네케(Michael Haneke)의 영화를 진짜 오랜만에 보았다.

오랜만에 보아서 그런지 큰 감흥보다는 평범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내 기억 속에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기억이 사라진 것이 아닐까 싶다.

연륜이 느껴지는 노년의 배우들은 너무나 멋진 연기를 보여줬다. 

과장된 연기가 아닌 자연스러움에서 나오는 진한 연기가 돋보였다.


<8명의 여인들>의 이자벨 위페르(Isabelle Huppert)가 출연했다.



"아름다워."

"뭐가?"

"인생이."


영화 자체는 지루한 편이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영화를 보면서 졸기도 했고 

<그대를 사랑합니다>,<해로>등 이미 비슷한 영화들을 보아서 그런지, 

스토리가 어느 정도 예상되는 상황에서 

큰 복선이나 굴곡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전 영화들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감독 특유의 시선과 비유가 특별했다.

거의 집에서 촬영하여 세트가 단조롭지만,

노년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것 같아서 의미 있었다.


흥미롭게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아무런 테마곡이 없이 고요했다.

감독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참 길다.. 인생이."


노인들의 삶을 다룬 영화나 소설, 다큐멘터리들을 볼 때마다, 

예전과 달리 언젠가 그들과 같은 삶을 나도 접하게 될 것임을 느낀다.

그리고 그때 나는 과연 그러한 삶을 

어떻게 받아 들이고 향유할 것인지 고민한다.


힘차게 뛰었던 심장과 몸은 내 의지에 반항할 것이고,

활동적이고 왕성했던 생각과 마음은 

점점 가라앉아 아예 누워 버릴 것인가? 

내 몸과 마음은 어디서부터 늙어지고 썩어질 것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늙고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공통된 현상이다. 

그 누구도 자신이 원해서 나이를 들지 않는다. 

의학이 발달해서 100년 동안 살 수 있다고 해봤자,

약 40년은 노인으로 살아 가야 한다. 

이 얼마나 어이없는 숫자 놀음인가?

우리들의 삶은 마치 유통기한이 있는 우유와 같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굳어지고 말라간다. 

정확한 시간에 흐름에 따라 그렇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인 소망이 있다면,

내가 나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

끌려가듯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고 싶은 장소와 시간에 죽고 싶다.

또한 노년의 삶에 만족했으면 좋겠다. 

그 삶이 내게는 과분하고 행복하다면,

나는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소망들과 달리 영화와 비슷한 삶이라면,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죽음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내 곁에 누군가를 지켜줄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맺어진 관계라면,

비록 그의 손에 내가 죽을지라도 슬퍼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나와 그는 죽음 이후에도 함께 할 테니까.

다만 노녀의 삶이 아름답지 못한 것이 씁쓸할 뿐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