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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의 눈동자] 그래서 조국이다 본문
나는 평소에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
애당초 TV를 잘 보지 않기 때문에 드라마나 연예, 오락 프로그램은 볼 기회가 별로 없다.
어쩌다 TV를 보는 날이면 스포츠나 뉴스 아니면 교양 프로그램들이 전부다.
고상하게 사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내가 TV를 잘 보지 않는 이유는,
굳이 TV를 보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그 날의 이슈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인터넷이 개통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TV를 거의 달고 살았다(여동생과 격하게 싸울정도로..).
특히 그 시절(대략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 중반)에는 드라마를 많이 봤는데,
기억 나는 드라마로는<사랑이 뭐길래>,<일출봉>,<억새바람>,<마지막 승부>,<질투>,
<M>,<파일럿>,<모래시계>.. 등등이다.
그리고 근래(2000년 이후)에 본 드라마는<올인>,<바람의 화원>이 전부다.
개인적으로 드라마의 강력함은 한번 보고 흥미로우면 계속 보게 되고,
다음 시간까지 기다리는 것은 꽤나 큰 정신적 스트레스며,
한 주를 기다리는 것은 엄청난 심적 고통을 준다.
하지만 요새 드라마는 의식적으로 잘 안보게 된다.
이것도 개인적인 이유지만,
그 시절 봤던 드라마들과 지금의 드라마들은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분명 요새 드라마는 비주얼도 좋고, 스케일도 상당히 커졌다.
그러나 스토리가 별로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고,
무엇보다 문화가 시대에 주는 영향력이 많이 감소한 듯 하다.
모든 드라마가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는 시대와 인간이 가진 문제의식을 시청자들로 하여금 느끼게 하고,
그것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거나 의미를 되새기게하며,
혹은 과거의 성찰을 통해 오늘날 사는 사람들과 유기적 소통을 해야 한다고 본다.
이건 드라마 뿐만 아니라, 영화나 문학 등 문화의 역할 중 하나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릴 적 내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고,
성인이 되어 직접 찾아서 다시 보게 된 드라마<여명의 눈동자>를 소개하려 한다.
사실 나는 이 드라마만큼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아직 보지 못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찾아보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수많은 배우들의 명품연기, 90년대 초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스케일,
그리고 주인공들의 삶으로 본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에 대한 조망과 감동 등.
이 드라마는 다시 보아도 명작이고 언젠가 내 자녀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다.
"나 내일 떠나. 버마로 간데. 나 내일 떠나."
"나는요?"
"살아있어. 알겠지? 꼭 살아있으라구. 그 말하려 왔어.
살아서 내 아이를 낳아줘. 그렇게 해줄 수 있겠어?"
"으..응"
"됐어. 그럼 됐어. 꼭 돌아올게. 약속해."
<4부 최대치와 윤여옥의 대사 中>
최대치, 윤여옥, 장하림.
이 세 사람은 1943년에 각자가 처한 일제시대를 살아간다.
최대치는 북경대학 출신으로 친구 동진과 함께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입대하고,
장하림은 동경제대 의학생으로 징병을 면하려 했지만,
일본형사에 의해 학도병으로 입대한다.
윤여옥은 전북 남원 태생으로 아버지 윤홍철은 독립운동가이다.
여옥은 17세에 일본군의 위안부에 강제 징집된다.
최대치는 관동군 15사단 소속으로 중국 남경에 있다가
임팔 작전으로 인하여 버마전선에 투입되고,
패퇴 후 중국 국민당군에게 구출,
같은 조선인 김기문의 도움으로 팔로군 소속으로 활약하고,
해방 후 소련군에 편입되어 북한군 소좌로 공산당원의 길을 걷는다.
장하림은 제731 방역급수부대에서 미다 대위의 당번병으로 복무하면서
일본인들의 잔악한 생체실험을 보고 인간의 존엄과 실존에 대해 고민한다.
그러던 중 미다 대위가 싸이판으로 전출명령이 떨어지고,
연합군을 상대로 세균전을 준비하던 중, 탈영하여 연합군에 가담한다.
해방 후 미 정보국 OSS요원으로 활약하고, 6.25 전쟁 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전투경찰 연대장으로 근무하던 중 빨치산 토벌대를 이끈다.
윤여옥은 중국 남경에 있는 관동군 15사단에서 고통스러운 위안부 생활을 하고,
자살을 결심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다가 운명적으로 최대치를 만난다.
대치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은 여옥은 대치의 아이를 임신하지만
일본군의 임팔작전 때문에 대치와 여옥은 생 이별을 하게 된다.
중국 남경에서 사이판까지 가게 된 여옥은 거기서 하림을 만나게 되고,
하림의 도움으로 대치의 아이를 낳고 미 정보국 OSS요원이 된다.
하림과의 결혼을 앞두고 죽은 줄만 알았던 대치가 살아 돌아오자,
갈등하며 괴로워하던 여옥은 하림과 헤어지고 대치를 따라 나선다.
"버마에서 탈출을 하고 굶어죽기 직전에 한 사람을 만났어. 공산당이었어.
그때 미군한테 구출됐다면, 내가 지금 자네 자리에 있을지도 모르지."
"후회하고 있나?"
"자네는 어떤가? 미국 졸개가 되어있는 것을 후회하고 있나?"
<28부 최대치와 장하림 대사 中>
나는 이 드라마의 최대의 강점은 명품 배우진이라 생각한다.
박상원, 채시라, 최재성, 박근형, 장항선, 고현정, 박인환, 이정길 등등..
지금도 이름만 들으면 "아 그 배우!" 할 정도로
그 당시 최고의 배우들을 한 드라마에서 다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맡은 극중 캐릭터들이 잘 어울려서
매회 이 드라마는 긴장감과 집중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아쉽게도 이후에는 이 배우들을 한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다.
이제는 이들 중 몇몇 배우들만이라도 출연한 드라마와 영화는
곧바로 명품 드라마, 영화가 된다.
김종학 PD와 송지나 작가가 함께 제작한 첫 드라마였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둘을 따라올 자가 없지만,
그 발판이 되었던 것이 이 드라마였고 차기작인<모래시계>역시 명작이 되었다.
지금에서야 어느 정도 평을 할 수 있겠는데,
둘이 제작하는 드라마의 특징은 허구가 사실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마치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이 그 당시에 실제로 존재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태왕사신기>를 뒤늦게 보았는데, 판타지 사극이지만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기발한 상상과 날카로운 해석, 인간과 시대를 보는 눈이 탁월하다.
"네, 살고 싶었어요. 정신대를 처음 끌려갔을 때 나는 17살이었습니다.
정신대가 뭔지 알고 나서도 죽을 수가 없었어요.
살아서 고향에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살아서 고향에, 살아서 우리나라에 돌아가자고
하루에도 몇 번씩 서로를 격려해줬습니다.
우리는 죽을만큼 잘못한 것 없습니다.
우리 정신대는 몸을 팔았지만, 당신들은 나라를 팔았죠? 그래도 살아남았잖아요?
우리도 그랬어요. 우리도 수치스럽고 죽고 싶었지만,
살아남으려고 별짓을 다했어요.
사이판 마지막 날, 일본군들은 우리 조선 정신대를 모조리 죽였어요.
그 사람들은 우리가 모두 죽어 없어지길 바랐어요.
당신들, 조선사람들도 그런가요?"
<32부 윤여옥의 대사 中>
드라마를 보면서 예전 생각이 많이 났다.
그때는 어려서 생각도 단순했는데,
주로 반일, 반공감정으로 보았던 것 같다.
지금 보니 여러 관점에서 드라마를 보게 된다.
인간의 본성, 역사, 이데올로기 등등..
주인공인 장하림, 최대치, 윤여옥.
이 세 사람이 처한 상황 속에서 스스로 변화되는 모습은 생을 향한 의지였다.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살기 원했고, 원치않는 삶을 살면서도 죽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만나는 인간 군상들은 시대가 낳은 인물들이었다.
가족, 친구, 연인, 적, 친일파, 기회주의자,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자, 민주주의자 등등..
애정, 우정, 도덕윤리와 법의 잣대로 보기에는 그들의 관계를 해석하기 어렵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같은 시대를 살면서 나름대로의 생존법을 터득해서 살았을 뿐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어떤 대상 때문에 살기 원한다.
그것이 자기 자신이든, 타인이든, 국가나 사회든..
"여옥이 아직 내 옆에 있나?"
"그래 여깄어."
"자네 얼굴이 잘 안보이는군. 날 보고 있나?"
"보고 있어."
"그래 됐어. 뭔가 얘기를 해주겠나? 세상이 너무 조용해."
"싸이판에서 여옥이를 처음 만났어."
"그래 싸이판이었군."
"그때 여옥이는 임신중이었는데, 대단했어. 아이를 지키겠다고."
"그래, 그랬을꺼야."
"자네 얘기를 많이 했어. 꼭 살아 있을거라고, 살아서 만나야 된다고.
그래서 알지도 못하는 자네를 부러워한 적도 있어"
"난 여옥이한테 아무것도 해준게 없어.
그래서 여옥이 생각만 하면 언제나 여기가 아팠어"
"그렇지 않아. 자네 때문에 여옥이가 산거야. 여옥이한테 살 힘을 준거야, 자네가."
"난 열심히 살았어. 다시 산다해도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거야. 알지?"
"그래."
"자네가 안됐군, 앞으로도 많이 살아야할텐데, 제대로 산다는게 아주 힘들텐데."
"그래, 그럴꺼야."
"자네가 와줘서 고마워. 여옥이 아직 내 옆에 있지?"
"그래."
"그래, 그만쉬고 싶어."
그 해 겨울, 지리산 이름 모를 골짜기에 내가 사랑했던 여인과
내가 결코 미워할 수 없었던 한 친구를 묻었다.
그들은 가고 난 남았다.
남은 자에겐 남겨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희망일 것이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만이 이 무정한 세상을 이겨 나갈 수 있으므로..
<36부 최대치와 장하림의 대사 中>
근래에 함석헌 선생의<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읽었다.
함석헌 선생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고난의 역사' 라고 해석한다.
삼국시대 이후부터 우리나라 역사는 외국의 침략수난과 사대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정점은 일제시대를 거쳐 같은 동포가 서로 싸우는 6.25에 이르렀다.
장하림, 최대치, 윤여옥.
장하림과 최대치를 어떤 이데올로기나 사상으로 해석한다면,
윤여옥은 힘없는 조국과도 같다.
하림과 대치는 여옥을 사랑하고 때로는 함께 있지만,
완전히 가질 수 없는 존재이다.
그리고 떨어져 있으면 그립고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다.
이것이 '고난의 역사' 를 가진 우리나라 역사를
마냥 부끄러워 할 수 없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미워하지만 완전히 미워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해하려는 의지,
낯선 땅 어디선가 한국사람을 만나면 괜히 반가운,
그래서 조국이다.
인간은 매일 두려움을 느낀다.
두려움을 이기고자 스스로 자신을 속여 강한 척을 하거나,
모질게 마음을 먹지만 강자와 약자는 두려움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일제시대에 일본은 자신들의 미쳐버린 이성과 감성을 부정하기 위해 더욱 악랄해졌고,
해방 이후 때의 미국과 소련은 자신들의 이익이 위태롭기에 우리나라를 놓지 못했다.
그들의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장(場)으로 우리나라는 모든 수치와 치욕을 감당했다.
그리고 기적처럼 그 두려움의 찌꺼기를 대부분 제거하고 다시 일어났다.
오직 희망이라는 작은 빛을 쫓으며 그 희망을 큰 빛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였다.
요새는 방송국에서 이런 드라마를 만들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냥 원 드라마 그대로 공중파 방송국에서 다시 재방송한다면,
언론에서는 "폭력, 선정적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다" 등 여러 가지 질타를 할 것 같다.
그만큼 현재의 드라마는 몇 편을 제외하고는 주제가 한쪽으로 기울어졌고,
제작하는 관계자들이 논란의 요소는 될 수 있으면 줄이려고 안밖으로 노력하는 듯 하다.
그러나 평화로운(?) 시대일수록 지나간 역사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지금을 사는 기성 세대들과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언젠가<여명의 눈동자>가 새롭게 제작된다면,
나는 본방사수하며 TV 앞으로 달려가 반드시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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