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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이별하듯 한 주를 살았다

EAST-TIGER 2020. 2. 1. 04:33

새해는 완전히 지나갔다. 
새해 인사를 두 번 해야 하는 한국식 전통문화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지만, 
몇 년 만에 새해 떡국을 먹으면서 그 문화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교회 사역을 하고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몇 년간 나의 새해는 세상의 거의 모든 숫자가 한 번 바뀌어지는 날이었고, 
신이 여전히 이 땅 가운데 나의 삶을 허락하신다는 증거였다. 
물론 이 두 가지는 아직도 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도 교수님을 만나서 짧게 대화를 나눴고, 
2월 말에 그동안 쓴 논문 중 일부를 토대로 다시 대화를 나눌 것이다. 
세 달 전에 교회 사역을 시작했다는 말을 했더니, 
교수님은 약간 관심을 가지며 몇 가지 질문들을 내게 했다. 
그 대답들은 교수님이 듣기에 납득이 가는 것들이었지만, 
너무 솔직한 면들이 있어서 내게는 조금 부끄러운 것들이었다. 

지난 토요일에 있었던 선교부 기도회는 즐겁고 따뜻한 교제였다. 
정 안수집사님과 김 집사님, 황 선생님이 특별히 새해 떡국과 다과를 준비하여 섬기셨고, 
나를 비롯한 참석한 모든 회원들은 충분히 감사할 일이었다. 
중고등부 예배와 달리 특별한 연출과 구성이 없어도 말씀 나눔이 가능했고,
정말 오랜만에 오고 가는 대화들로 말씀을 나누었다. 
나는 이런 예배와 모임을 선호한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주방에서 주일 식사 준비를 하시는 김 권사님과, 성 권사님을 뵈어 문안했고,
그것을 돕는 몇몇 성도들과 만나 역시 문안했다. 
황 선생님이 직접 개인 차로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덕분에 지난번 정 집사님으로부터 받았던  
나는 집에서 남은 떡국 한 그릇을 더 먹었다. 

주일 예배는 쉽지 않았다. 
필요 이상으로 말을 많이 했고 한 번은 준비하지 않은 예시를 들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준비한 영상이 없었으면 몇몇 학생들의 얼굴들은 단호히 "지루해!"라며 나를 보았을 것이다. 
예배 후 훈이가 내게 말했다. 
"이 영상, 제게도 주실 수 있어요?" 
나는 메신저를 통해 기꺼이 그에게 영상 링크 주소를 알려주었다.
"감사합니다. 오늘 전도사님 설교 말씀에 은혜 많이 받았어요 ㅎㅎ"
그의 답장을 보며 오늘 나의 허접함 위에서 일하신 신께 감사했다. 
새해 처음으로 교사, 임원 학생들과의 통합회의를 했다. 
황 선생님이 내게 여분의 떡들을 주셨고 개인 차로 중앙역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덕분에 평소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일찍 집으로 돌아왔지만 에리트레아 난민인 Michaele로부터 도움을 바라는 연락이 왔다. 
사역을 마치고 돌아오면 항상 피곤해서 짧게라도 잠을 자야 했지만,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에리트레아 난민들은 한 건물에 함께 살고 있고, 
그 건물 3층에는 큰 공간이 있어서 거기서 서로 식사를 하거나 행사를 연다.
에리트레아 테와히도 정교회 (Eritrean Orthodox Tewahedo Church)에 속한 이들은,
하얀 옷을 입고 예배를 드리며 찬송을 부른다.  
거기서 Christian을 만났고 우리는 서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내가 오자 식사를 제공했고 Michaele와 인사를 나눴다. 
식사를 거의 다 했을 쯤에 Michaele가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일어나더니 찬송을 불렀다. 
그러자 거기에 있던 모든 에리트레아인들이 일어나 함께 따라 불렀다. 
아이와 어른들이 함께 어우러져 불려지는 찬송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찬송이 끝나고 Michaele는 자기 노트북을 보여주며 W-LAN 연결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번에도 같은 문제로 나를 불렀고 그때도 알려줬던 이유를 오늘도 다시 알려줬다. 

Window10가 설치된 그의 노트북을 보니 최근 서비스가 종료된 Window7가 설치된 내 노트북이 생각났다. 

벌써 10년 정도 쓰고 있다. 

졸음과 피로가 몰려와서 Christian과 에리트레아인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바로 잠이 들었고 새벽 3시 30분쯤 일어났다. 

 

월요일 새벽부터 이번 주는 힘들게 시작되었다.

Lakers의 정신 그 자체인 Kobe Bryant가 자기 딸과 함께 비행사고로 사망했다.

청소년 때부터 그의 경기들과 CF들도 많이 보았고,

전성기 시절에는 MJ에 가장 근접한, 그 이상의 느낌을 주었던 선수였다. 

어머니 생신이 화요일이라서 한국시간에 맞춰서 저녁에 짧게 축하인사를 하려 했으나,

축하인사 이후 어머니의 사랑과 욕심이 가득 담긴 말들을 나는 다 들어야 했다. 

"어머니가 필요한 평안은 죽음이 아닐까?" 오래된 내 생각이다. 

신을 비롯해 그 누구도 늘 치열했던 어머니의 삶을 위로할 수 없다.

교회 중고등부 교사 선생님과 메신저로 대화하는 도중,

"저 교사를 그만하겠습니다.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짧게 "알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쉽지 않았던 분이었고 실제로 몇 번 충돌했다. 

이미 오랫동안 중고등부에서 활동했고 탁월하지는 않지만 재능이 있어 고민을 하다가, 

내가 그녀를 쫓아내듯 아니면 그녀가 나를 떠나듯 끝이 났다. 

누군가 "혹시 붙잡지 않으셨어요?"라고 내게 물었다. 

붙잡을 이유가 생각나지 않아서 그녀의 뜻대로 해준 것이다. 

재능이 있더라도 화합할 수 없다면,

그 재능이 빛나는 곳으로 또 그녀가 원하는 곳으로 보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2-3일 정도 깊게 고민하며 스스로 탄식했다. 

98학번들 중 고마운 마음을 가졌던 몇 안 되는 선배이자 형인, 

(박) 승현 목사가 목요일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동아리연합회 총무와 사무국장을 역임했고 기독교교육과 조교 등을 하다가 사역 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안수받기 전에 우연히 학교 근처에서 만났고 함께 역까지 내려가며 대화를 했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푸근한 웃음과 특유의 순발력을 가진 유쾌한 분이셨고, 

같은 수업을 들었던 적도 있었고 학교 내에서 짧지만 여러 번 대화를 나눴다.  

이럴 때는 한국에 없는 것이 한스럽다. 

장례식장에 가서 꽃을 들고 조의라도 표해야 하는데..

우리 학번 중에 98학번과 친한 사람들이 몇 없다. 

매일 이별하듯 한 주를 살았다.

 

영일 누나가 오랜만에 안부를 전해왔고 짧게 대화를 나눴다. 

중고등부의 새로운 임원으로 은일, 사랑, Josefine이 선발되었고,

나는 선발되지 못한 예나를 위로했다. 

혜민이와 짧게 대화를 나눴다. 

예찬이가 금요일에 생일을 맞이해서 짧게 축하인사를 전했다. 

카드와 선물은 지난 주일에 주었다.

지난 월요일에 (오) 승현이 형이 생일이라 축하인사를 전했다. 

미현이와 오랜만에 대화를 나눴다. 

남 교수님과 삼은이와 구정을 맞아 새해 인사를 또 했다. 

총선을 위한 재외국민투표를 Bonn 분관에 신청했고 승인을 받았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들이다. 

바람소리를 들으며 고민을 했고, 

밀려오는 여러 감정들은 잠으로 상대했다. 

금요일에는 침대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아 계속 없는 잠을 계속 청했다. 

빗소리가 나를 깨우듯 블라인드를 두들겼다. 

몇 편의 영화를 보았고 음악들을 들었다. 

아직도 삶은 내게 주어져 있다. 

 

2020년 1월의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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