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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넓은 미소를 지었다

EAST-TIGER 2019. 12. 28. 07:36

독일에 온 이후 가장 분주한 성탄절 전후였다. 

여러 날들 중에 한 날처럼 보냈던 지난 몇 년간의 성탄절은,

올해 11월부터 뭔가 달라질 것을 예정하더니, 

12월 중순부터 완전히 달라졌다. 

40장 정도 되는 크리스마스 카드들을 썼고, 

Freude 부부를 제외한 가족, Goodwin, Weinheimer 가정들에 첫 카드를 우편으로 보냈다.  

매년 교회 중고등부에서는 "마니또"를 하여 선물교환이 이루어진다. 

정말 오랜만에 크리스마스 선물들을 사러 시내에 몇 번 나갔고, 

적당한 선물들을 구입하여 카드와 함께 준비했다. 

성탄절 교회 행사들을 위해 회의에 참석하고 또 중고등부 역시 행사 준비를 했다. 

어쩌다 보니 사역 후 첫 행사였다.  

 

성 권사님이 중고등부를 위해 많은 수의 라면박스를 선물하셨고, 

내 마음이 감동하여 성 권사님께 전화를 하여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권사님은 내 얼굴을 아셨지만 나는 그때까지 권사님의 얼굴을 몰랐다. 

들리는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넉넉한 마음과 자비로운 성품. 

나는 지난 토요일이 되어서야 권사님의 얼굴을 알 수 있었다.  

어떤 동역자를 만난 기분이었고,

성탄절 예배 후 성 권사님께 크리스마스 카드를 드렸다. 

감격스러운 표정과 함께 눈물을 보이신 권사님 앞에서, 

나는 넓은 미소를 지었다.

 

22일에 박원식 장로님이 소천하셨다. 

주일 예배 후 갑자기 찾아든 비보에,

중고등부 교사로 헌신하는 조 권사님이 식사 도중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휴지를 드렸고 권사님의 말들을 들었다. 

추도 예배는 23일 오후 4시에 박 장로님 자택에서 드려졌다.  

많은 성도들이 모여 애도했고 예배 후 1시간 안에 대부분의 성도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4시간 정도 머물렀고 아내이신 최 권사님과 남아 있던 성도님들로부터,

장로님의 일화들을 들을 수 있었다.  

많은 성도들이 장로님으로부터 또 장로님의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았다. 

6년 전 처음 이 교회에 장로님을 뵈었을 때 우리는 서로 짧은 안부만 주고받았다.

올해 다시 뵈었을 때 장로님은 알츠하이머 투병 중이었다. 

매 예배 때마다 내게 악수를 청했고, 

손을 맞잡았을 때 느껴지는 두툼한 남자의 손과 온기. 

이제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되었다. 

돌아오는 토요일 오후 3시에 환송 예배가 있다. 

 

갑자기 블로그에 여러 댓글들이 등록되었고, 

카카오톡에도 메시지들이 몰려왔다. 

분주한 상황이라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어떤 댓글들은 삭제되었고 다시 새로운 댓글들이 등록되었다. 

이 조용한 블로그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집에 돌아와 댓글들을 읽어보니 누가 쓴 것인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나에 대한 편집증에 아직도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나는 충분히 들었고 또 충분히 대화했으며 이미 몇 번의 계절이 바뀔 정도로 여러 날들이 지났다.

왜 갑자기 다시 내게 이러는 것일까?

내가 외롭거나 누군가가 그립다고 해서 지나간 일들이 현재가 되진 않는다.

둘 중에 한 명이 원치 않는다면 사랑이 될 수 없다.   

분주한 현재 상황들에 대해서도 이해를 구했으나 전혀 먹히지 않았다.

사역 도중에 걸려오는 전화들과 전송되는 메시지 또 댓글들로 인하여 피곤했다.  

어쩔 수 없이 모든 메신저들에서 그 메시지들을 차단해야 했고,

블로그에 등록된 댓글들도 차단 또는 삭제하려고 했으나 잠시 생각한 뒤 그대로 두려고 한다. 

누군가는 그 글들로 나를 오해하더라도, 

나에게는 큰 교훈이자 나의 다음 사랑도 지금 이런 상황에 대해 이해가 필요하다. 

어쨌든 나는 혼자이고 부끄러운 짓들을 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내가 오랫동안 남아있는 것이 좋은 일인지 의문이 든다. 

나는 그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그것이 좋은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어떤 시작과 끝이 분명하고 그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지 않으려고 한다. 

누군가 내 마음을 의심한다면 나는 그 의심에 대해 진실된 말들로 해명한다.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마음을 뜯어다가 아니면 내 삶을 전부 그 앞에 펼쳐놔야 하는 것일까? 

끝없는 욕심과 불필요한 망상은 결국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까지 다 잃게 만든다. 

"You say you want to try again. But I've tried everything but giving in."

 

이 목사님을 오랜만에 만나서 교제를 나눴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내 집에서 식사를 대접했다. 

누군가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오랜만이었다. 

함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신 후 헤어졌다. 

석 목사님과의 교제는 이번 주 토요일 오전에 있다. 

 

이사 온 이후 첫 이발을 했다. 

아침부터 치렁치렁한 장발머리를 날리며 이발소를 찾았다. 

뒷머리는 여전히 빨리 자라고 앞머리와 옆머리는 눈과 귀를 덮었다.

이발은 순식간에 이루어졌고 꽤 솜씨가 좋았다. 

주일에 눈에 띄게 새로워진 머리스타일을 본 형준이가 내게 말했다. 

"짧은 머리가 되니 너무 젊어지셨어요."

 

처음으로 교회 담당 반 학생들, 성일, 은일 형제들과 주일 오후 모임을 가졌다. 

공과가 끝나고 다들 흩어졌지만 함께 할 수 있는 학생들과 모여 간이식당에서 간식을 먹고, 

평소 그들이 잘 가는 카페에 가서 차를 마셨다. 

그들은 평소에는 물어볼 수 없었던 말들을 내게 쏟아냈고,  

나는 말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솔직하게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그들에게 들었던 말은 내게 무척 감동적이었다. 

"전도사님 수고하셨습니다." 

나도 모르게 몸을 돌려 그들을 보며 크게 웃었다. 

 

2시간도 못 자고 성탄절 예배와 행사를 위해 교회로 가야 했다. 

비가 많이 오는 아침이었고 버스와 트램은 다니지 않았다. 

독일에 온 이후 성탄절에 집 근처 교회 외에는 나가본 일이 거의 없기에,

어떻게 차 시간이 진행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번에 알게 되었는데 내가 사는 지역은 성탄절 아침 대략 10시까지는 버스와 트램이 다니지 않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중앙역까지 걸어서 갔고 기차는 예정대로 다녔다. 

가는 도중 크리스마스 카드들과 선물들이 든 종이팩이 찢어졌고 성일이에게 줄 선물이 길바닥에 떨어졌다. 

얼른 주워 중앙역 안에 있는 서점에서 비닐팩을 구입해서 거기로 카드와 선물들을 옮겼다. 

찢어진 종이팩은 버려달라고 점원에게 부탁했다.  

원래 타던 기차를 타지 못하고 조금 늦은 시간에 후속 기차를 탔고, 

Düsseldorf 중앙역에 내리자마자 전속력으로 달려서 교회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니 성도들과 함께 유진이가 있었다. 

가벼운 대화를 했고 함께 중고등부 예배실에 들어섰다. 

예배 준비 이후 행사 준비로 이어졌고, 

예배 이후 행사 준비, 점심 식사로 이어졌다. 

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정민, 주실, 세라, Lisa, 찬영, 재민도 함께 남아 응원했다. 

행사는 잘 끝났고 무엇보다 학생들과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채운이의 미소에는 마음을 평안케 하는 힘이 있다. 

몇몇 사람들과 함께 대화를 나눴고 크고 작은 약속들이 생겼다. 

행사 후 "마니또" 선물교환이 있었다. 

몸은 긴장이 풀려 무척 나른했다. 

 

두 달만에 첫 사례비를 받았다. 

사실 받지 않으려고 했으나 규정상 받아야 한다고 들었다. 

나는 은근히 받지 않으려고 재정부 주변을 피했으나, 

재정 부원들 중 한 분이신 준희 어머님이 재정부에 오라는 말을 전했고, 

두 달치 사례비를 한 번에 받았다. 

집에 와서 보니 통장에서 숫자로만 보던 금액이 봉투에 들어 있었다. 

신께 기도하고 십일조를 분별하고 나머지는 도로 넣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감사한 마음을 또 어디에 전해야 할 것인가?

 

조 권사님과 서 장로님이 부 교역자들을 자택 저녁식사에 초대를 하셨다.

원 목사님과 강 전도사가 자리에서 일어난 후,

셋이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과 서로 간의 생각들을 말했다. 

대화의 부족에서 왔던 오해는 이제 평안과 서로 간의 도움으로 바뀌었다. 

신의 계획은 얼마나 위대하고 섬세한가? 

나는 새롭게 마음을 다졌다. 

 

올해 성탄절은 매년 안부 인사를 하던 사람들 대부분에게 말을 건네지 못했다. 

그들을 위해 새해 인사는 미리 준비해야 할 듯싶다. 

오랜만에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염 집사님을 교회에서 만났고,

나는 집사님을 보자마자 안고 울었다.  

옆에 천 집사님도 그런 저를 보고 눈물을 보이셨다. 

부모님과 안부 인사를 나눴다. 

어머니는 여전히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계신다. 

장미와 정말 오랜만에 안부를 주고받았다. 

김 작가님과 조 작가님에게도 안부를 전했다. 

베를린 김 목사님과 통화를 했고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목사님, 석 목사님과 안부 인사를 주고받았다.

강 집사님과 오랜만에 안부를 주고받았다. 

SLUR 멤버들에게도 안부 인사를 전했다. 

두 분의 이 교수님이 생신을 맞이해서 축하와 안부를 함께 전했다. 

 

성탄절 예배와 행사 이후 집에 돌아오니 너무 피곤했다. 

대충 씻고 잠을 자고 일어나 다음날 정오였다. 

이불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가 나를 밖으로 나갈 수 없게 했다.

2시간 정도 더 이불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선잠에 들었다. 

해야 할 것들이 늘어난 삶의 무게감은 실로 오랜만이다. 

또 새로운 오해와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신은 나와 너를 우리로 만들며 그의 뜻을 이룰 것이다. 

 

Peace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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