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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 웃음의 해학 속에 담겨져 있는 비극은 관객들의 몫이었다

EAST-TIGER 2020. 7. 20. 05:32

겨울비가 내리던 1월 19일 화요일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를 보았다.
처음 가보는 극장이었는데 좌석이 좁아서 연극을 보는 내내 조금 불편했다.
농촌을 배경으로 가난한 가정의 삶의 애환을 그린 연극이었다.
처음에는 상투적인 스토리로 최루탄 연극인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구성도 좋고 스토리도 감동적이었다.
특히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극 중 상황들은
관객들의 정서와 감정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어이구.. 내 새끼!"


14살 선호는 소아암으로 투병 중이고 어머니는 신체적인 장애, 아버지는 정신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하나뿐인 누나는 물에 빠져 죽었으니 부모와 선호는 서로를 의지하는 마음이 더욱 강하다.
그러나 선호의 병이 깊어질수록 이들을 도왔던 큰 아버지와 이모는
감당할 수 없는 병원비와 생활비에 그들 곁을 떠난다.
선호의 어머니는 그저 선호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쁘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자 홀로 낙심하고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심한다.


"분명히 낫는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했어요!"


연극을 보는 내내 정감 있는 농촌 풍경과 선호 가족의 생활상에 웃음을 지을 수 있었지만,
웃음의 해학 속에 담겨 있는 비극은 관객들의 몫이었다.
분명 웃음이 나오고 재미있는 장면이지만 그것들은 어느새 눈물을 자극하게 만드는 재료가 되어 있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그들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했던 선호 가족의 모습은 그 자체로서 충분한 감동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 연극은 가족의 소중함
즉, 서로의 부족한 면을 채워주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해야 한다는 단순한 명제를 표현했다.
그러나 이 단순한 명제는 가족 유대감이 허물어지는 현대 사회에서
잃지 말아야 소중함이라는 것을 관객들에게 주지시켜준다.


"선호야 손톱 깎자."


작은 방 한 칸에서 선호와 어머니, 아버지가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뛰어넘어
서로 즐겁게 노래 부르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마 가족만이 가능할 것이다.
연극이 종반으로 갈수록 관객들 사이에서 울음소리가 조금씩 들렸고
같이 갔던 친구도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다.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몇 번을 참았다.


연극은 결말을 보여주지 않은 채 끝이 났는데 나 역시 그런 결말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차마 그들의 웃음 속에 스며있는 비극의 끝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새 나도 그들의 행복을 빌고 있었다.


연극이 끝난 후 극장 밖으로 나갔을 때..
내가 좋아하는 비가 내렸고 나는 우산도 없이 대학로를 걸었다.

 

2010.01.30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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