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나는 "유학생"으로서.. 본문
3일 동안 제38회 부활절 금식성회에 참석했다.
첫 참석이었고 유럽 전 지역에서 사역하고 있는,
순복음 교단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오랜만에 음향 엔지니어로 헌신했다.
3일 동안 밥 먹고 예배만 드린 성회였다.
전형적이지만 세련된 부흥 강사님을 모시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예배가 하루에 세번 드려졌다.
함께 음향에 헌신할 자들이 부족하여
첫날에는 음향 세팅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후로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부족함을 채우시는
신의 은혜를 수시로 느낄 수 있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중학교 때와 대학교 때 뵈었던 전도사, 목사님들을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너무나 감동적인 조우였다.
또한 예상치 못한 일들에,
나는 성회 내내 그 일들을
고민하고 기뻐하며,
신의 뜻과 인도하심을 위해
기도해야만 했다.
마음에 품은 소원과,
내가 가지고 있는,
이미 알고 있는,
그리고 아직 알지 못하는,
죄의 습관과 약점들에 대해서,
신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신은 내게 잔잔하고
빠르게 "응답"했다.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다시 평온해졌다.
크게 도전을 받았고
동기 부여를 받은 일이 있었는데,
성회에 참석한 몇몇 독일인들을 위하여,
통역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목사님 한 분이랑,
독일 교포 2세 자매가 그 일에 헌신했다.
당연히 나와 근거리에서 함께 헌신했는데,
나는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약간은 부러움과 동기 부여를 느꼈다.
특히 그 자매는 독일어와 영어, 한국어를 비롯한,
몇몇 유럽 지역 언어에 능통했다.
그녀의 직업은 회사원인데,
곧 영국에서 신학을 공부할 것이라 한다.
순간 나는 나 자신을 향해 탄식했다.
결정적인 것은 마지막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곧 한국으로 귀국하시는,
집사님 부부의 차에 의지하여
집으로 가고 있었는데,
그분들과 나눈 대화에서
나는 엄청난 도전과 동기부여를 가지게 되었다.
기독교에 있어서 교회는
분쟁의 장소이자 회복의 장소이다.
교회사는 그것을 증언하고 있고,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교회 내 분쟁이 있기에
신앙 공동체는 흥망과 고뇌의 길에 놓여있고,
교회 내 회복이 있기에
신앙 공동체는 회개와 부흥의 길에 역시 놓여있다.
그래서 나는 교회의 분쟁과 회복,
이 긴장된 간극이 계속될 것이고
이 땅에 교회가 있는 한,
계속되어져야 한다고 본다.
독일에 있는 한인 교회들에서
내가 느낀 짧은 두 가지 결론들은,
신앙 공동체가 자신들이 속한 교회를
자기 자신과 동일화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가 곧 "나" 자신인 것이다.
굉장히 은혜로우면서도
위험한 상태라 할 수 있는데,
간단히 비유를 들자면,
유명 스타와 사생팬의 관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교회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유형인데,
교회의 흥망성쇠가
신앙 공동체의 삶으로 직결되는 것은,
바리새인들과 다를 바가 없는 사고방식이다.
대부분 한 교회에서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한
신자들에게서 찾아 볼 수 있는데,
독일에 있는 한인 교회들은 거의 이 원인으로,
교회가 분쟁과 회복을 거듭하고 있다.
왜 그런지 조금만 생각한다면
지금 이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민 생활을 하는 신앙 공동체에게 있어서,
교회는 곧 "나"일 수밖에 없다.
또 하나는 교포 2세들을
책임질 목회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은 간단하다.
목회자가 현지 언어에 능통하면 된다.
하지만 이 단순한 해결에 다가선 목회자들은 많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교포 2세들은
낯선(?) 한국어를 들으며
부모님과 함께 신앙생활을 한다.
내가 도전을 받은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인데,
교포 2세들을 앞에 두고 한국어로 설교하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유학생들도 있고 한인 교회이니만큼,
독일어나 영어로만 설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목회자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해답은 또한 간단하다.
독일어와 영어에 능통하면 된다.
하지만 그 간단한 해답을 해결한 목회자들은 별로 없다.
그 문제에 따른 결과는 너무 빠르다.
교포 2세들이 독일 교회로 옮기거나,
점점 예배에 잘 참석하지 않고 있다.
나는 아직 여기서 "전도사"라는
호칭이 부끄럽고 부담스럽다.
그리고 지금은 더욱 그렇다.
이제 독일 교포 1세들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그들을 지키고 돌보는 이민 목회의 종말이 온 것이다.
분명 나는 여기서 사역을 하게 될 것 같은데,
나는 이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진정 내가 이 곳에서 "전도사"가 되려면,
언어에 능통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새삼 다시 하게 된다.
나는 "유학생"으로서
먹고 살기 위해서,
조금 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
그 "돈"을 벌기 위한 목회를 하지 않겠다.
그리고 계속해서 교포 2세들을 위한
목회를 고민할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생각이고,
내가 가져야 할 중점적인 고민들 중 하나이다.
아무튼 이번 성회는 잊지 못할 것 같다.
첫 참석이었고 기분 좋은 만남과,
가슴을 뛰게 하는 도전과 동기 부여를 얻었다.
지금 나는 무척 기쁘고,
열정의 에너지는 충만하다.
유학 오기 전부터 생각했지만,
언어에 능통해지는 순간,
내 유학 생활의 50% 이상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신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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